삶의 극한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갈등 화해를 코메디로 승화한 영화

 

1941년 유고의 베오그라드는 독일의 침공으로 나라 전체는 혼란에 빠지고 국민들은 독일에 저항하며 전의를 불태운다. 블랙키(Petar Popara Crni: 라자르 리스토프스키 분)와 마르코(Marko: 미키 마노즐로빅 분)는 지하에서 무기를 제조 밀매하며 많은 부를 챙기나 전쟁으로 지하생활을 시작한 빨치산 가족들은 마르코와 블랙키를 전쟁 영웅으로 착각한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굳힌 블랙키는 여배우 나탈리아(Natalija: 미르야나 조코빅 분)를 강제로 데려다 결혼식을 하지만 곧 독일군 장교인 프란츠(Franz: 어른스트 스토츠너 분)에게 그녀를 빼앗긴다. 평소부터 나탈리아에 흑심을 품은 마르코는 블랙키를 구출하여 지하세계에 은신시키고 나탈리아와 결혼 생활을 즐기는 한편 전쟁이 끝나고 티토 정부가 들어서자 내각에 입각하여 전쟁 영웅 대접을 받는다.

마르코는 자신의 지위를 고수하기 위해 지하세계의 블랙키를 비롯 모든 사람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게 되고 지하세계는 점점 지상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생활 체계를 구축하며 전쟁 준비를 계속한다. 그런 생활이 지속 되던 중 침팬지의 실수로 대포가 발사되며 지상세계와 연결 통로가 생기고 이들은 진실을 깨닫게 된다. 무려 50년만의 일이다. 한편 마르코의 동생 이반(Ivan: 스라브코 스티막 분)은 형의 농간에 의해 자기와 친구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복수를 결심한다.

집시풍 음악을 연주하는 브라스 밴드와 함께 시끌벅적하게 시작되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지하 공간은 지상 세계와 격리된 또 하나의 세계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에서 사람들은 두더지처럼 살지만, 학교와 식당, 빵집과 감옥, 심지어는 세 가지 신을 모시는 성전까지 갖추고 자기들만의 독자적 사회를 이룬다.

그러나 이 지하 세계의 벽시계는 거꾸로 돌아간다. 일상의 질서를 따라 진행되는 지상의 현실과 다른 초현실의 지하 세계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이 창조한 공간이다. 이 공간 안에서 쉴새없이 울려대는 나팔 소리와 격렬한 움직임이 감독 자신을 포함한, 시간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갈 데 없는 정열이 혼돈 그 자체임을 드러낸다.

에밀 쿠스트리차는 <언더그라운드>를 만들며 전쟁에 관해 중간 입장을 고수한다. 그는 전쟁을 한 측면에서만 바라보기를 거부한다. 교활하고 현실적인 마르코가 지상형 인간과 세계관을 대변한다면, 다혈질이지만 순진한 블랙키는 지하형 인간과 세계관을 대변한다. 나탈리아는 이 두 부류 사이를 왕래하며 살아남기 위해 늘 힘 앞에 굴복하는데, 국토(대지)의 상징처럼 보인다.

이처럼 각양각색인 인간들의 서로 다른 세계관을 통해 에밀 쿠스트리차는 유고가 서둘러 통과한 역사의 미궁을 되돌아본다. 그리하여 역사란 것이 빛 바랜 색으로 그려진 지하 세계의 조작된 거짓말과 다를 바 없음을 폭로한다.

쿠스트리차는 문화사 안에서 권력에 의해 형성된 지식(정보) 체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적인 이미지와 초현실을 뒤섞고 폭발하는 사운드를 끊임없이 들려준다. 그는 세계의 진정한 모습을 혼돈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영상의 카오스는 정리된 세계가 아니라 마치 천지창조 순간들에 가깝다. 그의 연출은 자신의 정치적인 인식을 표명하는 수단으로 지하 세계의 열광을 제도화한다. 따라서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들과 무신론적 발언으로 가득한 이 작품은 대중의 기호에 부합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술에 취한 듯한 일종의 자비심과 따뜻한 환상이 뒤범벅된 무정부주의자의 블랙 코미디 <언더그라운드>는 그러나 <집시의 시간>보다 예술적 기교나 깊이에서 더 우수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혼돈스런 인간의 삶과 뒤죽박죽이 된 발칸 반도의 현실을 반영한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마르코와 나탈리아가 탄 휠체어가 화염에 휩싸여 십자가 상을 맴돈다.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는 시를 영상화한 듯한 이 라스트는 쿠스트리차의 마지막 절규이다.

저작권자 © 함평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