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수 산림기술사

산림공원사업소

강력한 북극한파가 북미대륙을 휩쓸면서 미국 동부 연안이 온통 폭설과 얼음속에 갇혀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시베리아 한파의 영향으로 폭설이 내리고 수은주가 곤두박질치는 등 한겨울 동장군의 맹위를 실감하고 있다. 아직도 음지에는 채 녹지 않은 눈덩이들이 남아있고 새벽녘 한기는 뼈를 시리게 하지만 구례에서는 이달 말부터 고로쇠 약수를 채취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봄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아무리 많은 폭설이 내리거나 한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쳐도 식물은 정확히 흐르는 시간을 인지하고 눈속에서도 꽃을 피우며 영하의 날씨에도 땅속의 수분을 흡수하여 지상부로 올려 보낸다. 해마다 2월이 되면 남녁에서 들려오는 봄소식 중에서도 매화나 복수초의 꽃소식보다 고로쇠 약수채취 소식이 더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군불로 뜨겁게 달구어진 온돌방에서 친구들이나 정다운 이웃들과 함께 모여 밤새 정담을 나누며 마시던 고로쇠 약수와 겨울밤의 추억들이 속속들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과 나무이다. 단풍나무과 나무는 대부분 달콤한 수액을 생산하지만 그 중에서도 고로쇠나무가 가장 크게 자라며 가장 많은 수액을 생산한다. 북미에 분포하는 설탕단풍나무(Acer saccharum) 는 그 분포면적이 우리나라 고로쇠나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많을 뿐만 아니라 고로쇠수액보다 휠씬 높은 당분을 포함하고 있어 일찍부터 가공식품으로 개발하여 이용되고 있다. 캐나다의 국기 한가운데에는 단풍나무잎이 그려져 있으며 단풍나무 수액을 이용하여 만든 시럽(메이플시럽)이나 과자는 캐나다를 상징하는 가공식품으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쉽게도 캐나다의 설탕단풍나무를 우리나라에 옮겨 심으면 기후나 토양 등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수액의 양이나 맛이 원산지의 단풍나무와는 많이 차이가 나게 된다. 마치 지리산의 고로쇠나무를 함평으로 옮겨 놓으면 나무의 생장은 왕성할지 몰라도 고로쇠 수액의 양이나 풍미는 전혀 달라지는 이치와 같다. 아쉽게도 함평지역에서는 고로쇠나무가 잘 생육하거나 수액을 생산할 수 있는 적합한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고로쇠 수액은 해발고가 최소 500m 이상된 산림에서 밤낮의 일교차가 10도 이상일 때 가장 많이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연 건강음료를 제공하는 고로쇠나무

사람들은 흔히 고로쇠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은 나무가 오래전부터 수목 내부에 저장하고 있는 글자 그대로 약수화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겨울이 끝나기 전 봄의 기운이 서서히 태동하게 되면 땅속은 지상보다 훨씬 일찍 그 기운을 감지하고 봄을 맞을 채비를 서두르게 된다. 나무의 땅속 뿌리털은 봄철 잎을 틔우기 위한 수단으로 부지런히 수분을 흡수하여 줄기를 통해 지상부로 올려 보내고 지난해에 저장해둔 양분과 함께 잎눈을 틔울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고로쇠 수액은 봄맞이를 준비하는 나무의 수액이동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일이며 수목의 생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결코 권장할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수액을 인위적으로 채취한다 하더라도 수목의 생장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수액의 채취 행위가 수목보호에 있어서 크게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수액채취 과정에서 나무의 직경을 무시한 많은 천공이나 상처부위를 방치하여 부패균이 침입함으로써 2차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경계하여야 할 부분이다.

처음 함평에 왔을 때 이곳에서도 고로쇠수액을 채취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십여 년 가까이 함평의 산야를 둘러보았지만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광경이나 자연적으로 분포하는 고로쇠나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수액을 채취하는 나무는 고로쇠나무, 자작나무, 거제수나무, 층층나무 등이 대표적인데 함평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수종이 층층나무이므로 아마도 층층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층층나무 수액은 3월 초․중순경에 주로 채취하며 성분은 고로쇠 수액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맛은 고로쇠 수액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중풍, 간질환, 위장병 등에 효과가 있어 최근에는 층층나무 수액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크게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고로쇠나무에 대하여는 몇 개의 구전이 전해오고 있다. 신라 화랑과 화살 맞은 고로쇠나무 이야기, 도선국사와 고로쇠나무 이야기 등 고로쇠 수액과 관련한 몇 개의 이야기들은 전설처럼 이어져 내려와 그것이 마치 사실인양 대중에 회자되고 있다. 고로쇠 수액은 칼슘과 칼륨, 망간과 철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맛이 좋고 흡수가 빨라 천연 이온 음료로서의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 특히 해변과 가까이 거주하는 사람들은 고로쇠 수액을 다량 음용함으로써 몸속에 축적되어 있는 염분을 배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바닷가 사람들하고는 궁합이 잘 맞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니 긴긴 겨울밤, 군불로 달구어진 뜨거운 아랫목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마시는 고로쇠 약수의 청량감과 흥취를 느껴보는 것도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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