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수 산림기술사

소나무, 서어나무, 물푸레나무 우거진 산길을 걷노라면 온 몸을 파고드는 청량감이 오감을 깨운다. 숲속 신선한 공기를 가슴속깊이 호흡하면 내 몸 안에 숨어있는 온갖 불결한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곤 한다. 결핵의 3대 특효약중의 하나인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한 미국의 세균학자 왁스만(S.A. Waksman)은 숲속의 자연치유 기능에 주목하고 나무가 뿜어내는 정유물질에 대한 오랜 연구 끝에 결핵 치료 물질을 발견함으로써 인간의 수명연장에 혁혁한 업적을 남겼다.

나무가 발산하는 정유(精油) 물질이 ‘피톤치드(phytoncide)’이다. 피톤치드란 그리스어인 Phyton(식물)과 라틴어인 cide(죽이다)의 영어식 합성어로 러시아의 과학자인 토킨 박사가 식물에서 발산하는 정유물질이 다른 세균을 죽이는 성질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식물은 대사 과정에서 각종 물질을 발산하는데 그중에서 나무는 테르펜(terpene)을 내뿜는다. 테르펜은 살균, 진정, 소염 등 20가지 이상의 약리작용을 가지고 있으며 테르펜 중에서도 살균작용을 하는 성분이 ‘피톤치드’이다. 숲에서 사는 식물들은 스스로 이동하거나 외부의 영향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필요한 정유 물질을 대기 중에 방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피톤치드’란 “식물이 생산하는 휘발성 물질로 다른 생물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우리가 숲을 통하여 피톤치드를 경험할 때에는 인체에 좋은 영향을 주는 방향성 물질이라는 의미로 쓰여 지고 있다.

사람들은 ‘피톤치드’하면 으레 편백나무만을 이야기한다. 피톤치드를 내뿜는 편백나무에 대한 지나친 사랑이 멀쩡한 소나무숲을 제거하고 그곳에 어린 편백 묘목을 식재하는 우를 범하고 마는 것이다. 충남대학교 산림자원과학팀이 한국산림휴양복지학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숲에서의 피톤치드 생산량은 편백이 아닌 소나무에서 가장 많이 방출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물론 조사 내용이 대외적으로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상식이 뒤집어진 것만으로도 대단히 의미 있는 연구 결과라 하겠다. 전체 임야에서 소나무림이 차지하는 비율이 25%에 달하므로 굳이 편백나무 숲을 찾지 않더라도 주변에 흔하게 널려있는 소나무 숲을 통하여 우리가 얻고자 하는 피톤치드의 효능을 충분히 체감하고도 남는다.

 

사람들이 산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번에 걸쳐 에베레스트 등반 도전에도 실패한 영국의 등반가 조지 밀러리에게 “당신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 하는가”라고 어느 기자가 물었더니 “그곳에 산이 있어 오른다.”라고 대답하였다 한다. 우리가 산을 찾는 이유는 거창한 목적이나 명분이 있어서가 아니다. 숲이 주는 상쾌함이나 청량감이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고 불안한 정서를 회복시키며 복잡다단한 심리를 순화시키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여유와 함께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웰빙(well-being)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등산 인구의 급증은 웰빙의 삶과 그 방향을 같이한다.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는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만 자연과 함께 동화되어 웰빙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무가 주는 커다란 선물이 될 것이다.

숲속 좁다란 등산로 변에는 생강나무, 정금나무, 감태나무 등 관목으로부터 비자나무, 참식나무, 귀룽나무 등 교목에 이르기까지 층층을 이루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서있다. 숲속 생태계는 지의류, 초본류, 하층의 관목, 상층의 교목에 이르기까지 서로 간섭하고 의지하면서 경쟁과 공생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숲을 단순히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숲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넓고 깊게 관여하고 있는지를 간과한 단순한 생각에 기인한다. 숲이 인간에게 끼치는 무형의 가치는 결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그것은 식물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숲속 생태계에서 아무리 작은 풀이나 나무라 할지라도 결코 하찮은 것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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