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권진주필

해마다 6월이 되면 생각난다. 문득 생각나는 숫자가 있다. ‘6.29’다. ‘6월항쟁’세대, 87년 체제를 경험한 사람이면 누구나 벼락처럼 각인된 숫자다. ‘6.29선언’은 1987년 6월 항쟁 직후인 6월 29일에 민주정의당 대표이자 실질적인 당의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이며 발표한 특별선언이다. 지금의 헌법은 그때의 산물이다. 벌써 30년이 되었다. ‘6.29’는 내게 노태우를 불러내고, 광화문 앞 6월의 함성을 들려주고 나서 다시 한 사람을 불러낸다. 함평출신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이다. 일강이 순국한 날이 ‘6.29’, 6월 29일이다.

그의 고향인 신광면 함정리 구봉산 자락에 2003년에 일강김철기념관이 세워졌고, 2009년에는 그 옆에 잇대어 상해임시정부 청사를 재현한 독립운동 역사관이 들어서며 외양적인 선양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허전하다. 일강에 대해 ‘6.29’ 제향 한번으로 끝나는 그에 대한 기림이 허전하다. 일강의 삶과 일생을 고향에서조차 제향 한 번으로 기리고 기념해도 되는 것일까?

지난 5월 18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제창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며 생각했다. ‘가짜’는 힘이 세구나. ‘거짓’은 오래도 살구나. ‘진실’은 빛을 쬐어야만 드러나는 구나며 자탄했다. 어처구니없지만 지금도 5.18이 북한의 사주 공작이라고 전파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인터넷이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을 통한 ‘가짜뉴스’가 횡행한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동안은 물론이고 그 이후 오래도록 우리 함평도 ‘가짜뉴스’에 시달려다. ‘거짓’에 시달렸다. `삼성삼평' 연좌에 묶여 `인심이 고약하고, 근거 없는 밀고와 투서가 빈번한' 지역으로 낙인이 찍혔었다. 그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은근했다. 은밀했다. 쉬쉬했다. 뜬구름이 되어 날아 다녔다. 계속해서 낙인이 찍히자 백약이 무효했다. 오래 전에 ‘가짜뉴스’로 판명이 났지만 `삼성삼평'이란 말은 무덤에 들지 못하고 지금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

단언하자면 `삼성삼평'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을 위한 하나의 프레임이다. 삼성은 장성‧ 곡성‧보성으로 비교적 산세가 험준해서 군사적으로 방어에 유리하며 게릴라전의 요충지다. 이에 반해서 삼평은 함평‧남평‧창평으로 곡창지대를 끼고 있어서 군사적으로 보면 식량과 식료품의 전달 창고다. 일제가 한말 이 지역의 의병을 진압한 기록인 `전남폭도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괴'가 우리 함평의 심남일 장군과 김태원 장군이다. 현재 심남일 장군의 기념비는 광주공원에 있고 김태원 장군의 동상비는 광주 농성동 대로변에 있다. 추정해보면 의병활동이 빈번했던 '삼성삼평'에는 일제의 밀정과 정탐꾼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만든 유언비어 `가짜뉴스'가 `삼성삼평'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하면, 바로 떠오르는 분이 백범 김구다. 이에 빗대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이지만 편의를 위해 전남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전용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한 송재 서재필을 말한다. 일강 김철은 그토록 염원하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중국 항주에서 1934년 향년 48세로 순국했다. 그렇기에 상해 임시정부의 청사를 본인 이름으로 계약을 했을 정도로 임정을 이끌던 중추인물이지만 우리국민은 물론 우리 지역민에게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상해임시정부는 1930년 11월 제2차 개각에서 주석겸법무장에 이동녕, 재무장에 김구, 내무장에 조완구, 외무장에 조소앙, 군무장에 김철을 선출했다. 1932년 항주에서 개최한 국무회의에선 군무장에 김구, 재무장에 김철을 임명했다. 일강은 1886년생이고 백범은 1876년생으로 백범이 10년 연상이다. 그러나 일강은 백범과 같은 급의 각료로 활동했고, 서로의 직위를 맞바꾼 재무장과 군무장의 후임자가 되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라고 보기에는 `삼성삼평'이란 ‘가짜뉴스’가 일제의 조선 강점을 위한 자중지란 프레임이라는 확신은 또 있다. 바로 보성‧장성‧곡성의 `삼성' 출신이 송재 서재필이며, 함평‧남평‧창평의 `삼평'출신이 일강 김철이다.

함평의 민선4기 말 추진되다 무산된 가칭 `일강김철기념사업회' 설립을 다시 추진했으면 한다. 만시지탄이나 내가 처음 단체의 필요성을 말했기에 다시 거론하는 것이다. 함평인이라면 일강의 삶은 기념해야 하며 일강의 얼은 이어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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