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트 부부가 전하는 ‘생명진화의 생생한 현장’

진화의 아이콘 ‘핀치의 부리’ 추적...‘종의 기원’ 입증

 

180여년 전 갈라파고스 군도로 탐사여행을 떠났던 찰스 다윈은 섬들의 다양한 생물과 생태를 면밀히 조사한 후 영국으로 돌아와 오랜 연구 끝에 자연선택과 진화이론을 발표했다.

다윈은 진화란 통상적으로 오랜 시간을 전제로 하여 서서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여겨졌으므로 진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목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프린스턴대 교수인 피터 그랜트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다들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랜트 부부는 1974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갈라파고스를 찾아 그곳에서 진화의 아이콘인 ‘핀치의 부리’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진화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있다.

그랜트 부부는 지난 40여 년 동안 갈라파고스 제도의 작은 섬 대프니메이저에서 다윈핀치와 함께 지내며, 매일 아침 핀치들을 잡아 몸무게를 재고 깃털의 색을 살피고 부리 크기를 측정하며 무엇을 먹는지 누구와 짝짓기를 했는지 모두 기록했다.

섬에 사는 모든 다윈핀치를 전수조사해 그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수십 세대를 따라가며 변화를 추적했던 부부는 2009년, 마침내 다윈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미스터리 중의 미스터리’인 새로운 종이 지구상에 등장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핀치의 부리(The Beak of the Finch)』 20주년 기념판은 다윈의 염원이었던 ‘종의 기원’을 추적하고 그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일생을 바친 과학자들의 헌신과 열정을 기록했다.

저자 조너선 와이너는 그랜트 부부의 연구를 바탕으로 진화를 추적·조사 중인 많은 연구자들을 만나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해 책을 썼다. 진화론을 설명하는 복잡한 과학적·철학적 개념을 지양하고 명료한 산문체로 서술해 일반독자의 눈높이에 맞췄으며, 또한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술해 탐험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진화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핀치의 부리’로 이어진 역동적인 과학사는 진화를 거듭한 지구에서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보지 못했던 것을 생생히 증언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기로도 잡종은 불임이다. 하지만 그랜트 부부가 관찰한 핀치 커플은 이종 간에 교배를 했음에도 그 자손들이 번창하여 다음 세대를 낳았다. 극단적인 환경 스트레스로 인해 유전자 풀이 바뀐 것이다. 그랜트 부부의 이종교배 관찰은 ‘종의 기원’에 풀리지 않는 그 지점, 다윈이 그토록 염원했던 ‘미스터리 중의 미스터리’를 푸는 퍼즐의 한 조각을 맞췄다.

이 책의 초판이 나왔던 1994년만 해도 연구는 미완성이었지만 마침내 2004년, 피터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는 하버드 의대 클리프 타빈 연구팀과 함께 핀치의 부리에 변이를 만드는 유전자(BMP4)를 발견했다. 이 유전자는 자연선택의 압력에 영향을 받아 핀치의 부리에 변이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BMP4 유전자는 사람에게도 비슷한 서열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유전자는 사람의 얼굴을 형성하는 유전자라는 점이다.

두 사람의 연구는 유전자 수준의 미시적인 증거뿐만 아니라 실제 성선택에 의한 종격리를 지켜보는 거시적인 확증으로 이어졌다. 2009년, 그랜트 부부는 대프니메이저에서 변이된 핀치와 변이 이전의 핀치들이 서로 짝짓기를 하지 않는 것을 목격했다. 생식적 종격리를 관찰한 것이다. 이는 곧 종분화를 의미한다. 드디어 ‘새로운 종이 탄생한 것’이다. 강인한 인내로 무장한 그랜트 연구팀의 진화 연구는 40년의 시간을 견디어 마침내 정점을 찍었다.

『핀치의 부리』는 실례를 들어 진화론의 각종 핵심 개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한 최고의 진화론 개념서이자 생물학 현장 연구의 지침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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