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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란슬롯붉은 선혈(鮮血)로 정화되는 중세의 푸른 숲.
신애필  |  ohmysad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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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6.21  18: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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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란슬롯>은 브레송 감독의 영화철학이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된 작품이다. 감독 스스로 ‘시네마토그라프’라고 명명했던 그의 영화론은 일반적으로 반(反)스펙타클 혹은 미니멀리즘적 양식들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아서왕의 전설’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중세의 이야기로서 그 자체가 이미 스펙타클을 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독 자신이 평생 천착했던 ‘성과 속 혹은 구원의 문제’에 관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역으로 그에게 가장 적합한 소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는 13세기의 통속연작(vulgate cycle)을 구성하는 산문소설 〈랑슬로 Lancelot〉와 토머스 맬로리가 15세기말에 쓴 산문 〈아서의 죽음 Le Morte d'Arthur〉의 주제, 즉 란슬롯의 귀네비어에 대한 사랑과 그의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 사이의 갈등이라는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해왔다. 신과 인간의 관계, 왕과 신하의 관계, 사랑과 의무의 관계. 그 심연 사이에 기사 란슬롯이 존재한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성배원정이 실패로 돌아간 시점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성배원정에 나섰던 기사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했거나 실종되었고, 원탁의 방은 폐쇄되었다. 텅 빈 원탁을 돌아보며 아서왕은 “이젠 다 죽고 추억만 남았다.”며 한탄한다. 성배원정에서 살아 돌아온 기사들(란슬롯)과 성배원정에 반대했던 기사들(모드레드) 사이에 왕위에 대한 욕망을 둘러싸고 불신과 적의가 충만하다.



이야기는 왕권을 위협받는 아서왕과 란슬롯을 둘러싼 동료들의 숭배와 질투, 그리고 왕비 귀네비어에 대한 란슬롯의 사랑에 관한 것이지만 그 사이를 횡단하는 진정한 문제는 영혼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란슬롯은 귀네비어의 수차례의 유혹에 마침내 굴복하고 말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확신이 없다. 신에 대한 헌신, 왕에 대한 충성, 여인에 대한 사랑, 어느 하나 그를 완전히 사로잡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어야 할 중요한 선택의 매 순간마다 모순된 결정을 내린다. 그는 왕과 함께 할 때면 연인의 사랑을 좇고, 연인과 함께 할 때면 왕에 대한 충성을 다짐한다.

란슬롯은 귀네비어와의 약속을 깨고 아무도 모르게 마상경기에 출전한다. 마상경기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입은 상처로 인해 란슬롯은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는 귀네비어 왕비를 납치함으로써 아서왕을 배신하게 되지만 결국 왕비를 돌려보내고 왕권을 노리는 모드레드일파에 항거해 아서왕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숨진다. (영화에서는 모드레드 일파가 숲속에 잠복시켜둔 궁수들에 의해 아서왕과 란슬롯 일파가 모두 몰살되는 것으로 나온다.)


<호수의 란슬롯>에서 브레송 감독은 전설이 전해주는 모든 신비주의적 요소들을 원천봉쇄 해버림으로써 그것을 철저하게 생(生)의 이야기로 만들어 버린다. 영화에서는 원작에 등장하는 마법사 멀린이나 마녀 모건, 요정 비비안 등 마법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으며 신비의 검(劍) 엑스칼리버에 관한 언급도 없다. 그 대신 영화 내내 관객들을 섬뜩하게 사로잡는 것은 기사들의 철커덩대는 철갑옷의 마찰음이다. 브레송에게 있어서 소리는 이미지와는 다른 곳에서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영화의 초반부, 숲속에서 땔감을 줍는 할머니와 소녀의 대화를 통해 중세 기사들의 운명은 미리 점쳐진다. 할머니가 소녀에게 말한다. “사람보다 그 사람이 오는 소리가 먼저 들리면 그 해에 죽게 된단다.” “그 사람이 탄 말발굽 소리 라도요?” “말발굽 소리라도.” 그리고 잠시 후 길 잃은 란슬롯이 말을 타고 나타나 그들에게 길을 묻는다. 그래서 관객들은 란슬롯이 곧 죽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철갑옷을 입은 모든 기사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기사들은 화면에 나타나기 전에 항상 철커덩거리는 갑옷소리부터 들려준다.


브레송은 이미지와 소리가 상호보완적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에 따라 마치 일종의 릴레이처럼 구사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공기를 가득 채우는 거친 숨소리와 금속성(金屬聲)이 들려온다. 카메라가 줌아웃하면 철갑옷의 두 기사가 칼로 대적하고 있다. 한 기사가 칼을 놓치자 다른 기사가 칼로 그의 목을 벤다. 잘린 목에서 펌프처럼 붉은 피가 솟구쳐 나온다. 그러면 말 탄 기사들이 큰 말발굽 소리를 내며 그 앞을 지나간다.


이미지와 소리에 관한 브레송의 철학이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곳은 마상경기 장면이다. 여기서 나타난 독특한 미장센과 편집은 영화적 경제학과 미학적 즐거움의 황홀한 경지를 보여준다. 아마도 에이젠쉬타인의 ‘오뎃사계단 학살 장면’이후 가장 인상적인 편집이 분명한 이 장면에서 반복적 운율은 소리와 이미지의 ‘릴레이 같은’ 교차편집에 의해 강화된다. 백파이프 신호, 깃발의 게양, 말발굽소리[마상시합], (아더왕과 기사 거웨인의 표정을 보여주는) 관람석의 반응의 순차적인 반복적 배치는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이룬다.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거의 기계주의적인 마상경기 장면에서 관객들은 내러티브를 이해한다기보다는 편집자처럼 그것을 조합해내야 한다. 관람석의 아서왕과 거웨인처럼 관객들도 마상경기에 익명으로 출전한 철갑옷속의 란슬롯을 그 행동과 실력을 통해 추측하게 된다.



영화에서 철갑옷과 정강이쇼트는 익명성을 강화시킴과 동시에 배우들을 엑스트라[모델들]로 전환시킨다. 화면가득 기사들과 말들의 정강이를 보여주는 일련의 쇼트들은 그들의 익명적인 정체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존재에 대한 시각적인 확장을 불러 일으켜 인원과 소품의 열세를 자연스럽게 만회하는 역할을 한다. 기사들의 철커덩대는 소리와 말발굽소리의 반복된 사용 또한 기사들의 운명에 관한 청각적 메타포이면서 동시에 영화적 경제의 소중한 승리이다.



이 영화에 이르러 등장인물의 몰개성은 정점에 다다른다. 기사들을 감싸고 있는 철갑옷은 그것이 비록 깨지기 쉬운 것일지라도 인물(모델)을 보호하기 위한 브레송 최고의 발명품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브레송에 따르면 (배우들이 아니라) 모델들이 발산하는 리얼리티는 철저하게 익명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브레송에게 익명성이란 역사를 이끄는 민중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라기보다는 유일자와 독대하기 위해 요청되는 공평무사일 것이다.

로베르 브레송, Robert Bresson

1901. 9. 25 프랑스 퓌드돔 브로몽라모트~1999. 12. 18 드루에쉬르드루에트.

제2차 세계대전 뒤에 활동한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감독.

 

그의 작품은 순수하고 품격있는 사진적 스타일 속에서 인간심리를 깊이 탐구하고 있다.

화가 겸 사진사로 활동하다가 1934년 첫 영화 〈공적 문제 Les Affaires publiques〉를 만들면서 영화감독이 되었다. 겉으로는 겸손한 체하지만 속마음은 교만한 수도원의 어느 수녀를 다룬 영화 〈타락한 천사들 Les Anges du péché〉(1943)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엄격하고 지적인 태도는 영적인 탐구에도 적합했다.

장 콕토가 대사를 쓴 〈불로뉴 숲의 여인들 Les Dames du Bois de Boulogne〉(1945), 양심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성직자를 묘사한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소설을 영화화해 상을 받은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Le Journal d'un curé de campagne〉(1950), 교도소 탈출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심리를 연구하고 있는 〈저항 Un Condamnéàmort s'est échappé〉(1956) 등 잇따라 발표한 영화들은 갈수록 인간의 내면적 갈등을 문제로 삼았다. 그밖의 작품으로 〈소매치기 Pickpocket〉(1959)·〈잔 다르크의 재판 Le Procès de Jeanne d'Arc〉(1961)·〈발타자르, 위험해 Au hasard, Balthazar〉(1966)·〈무셰트 Mouchette〉(1966)·〈다정한 여인 Une Femme douce〉(1969)·〈몽상가의 4일밤 Quatre nuits d'un rêveur〉(1971)·〈호수의 기사 랜슬롯 Lancelot du Lac〉(1974)·〈어쩌면 악마가 Le Diable probablement〉(1977)·〈돈 L'Argent〉(1983) 등이 있다.

(c)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브레송에게서 한 개인이 익명성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존재적 특이성)은 존재적 각성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한 각성은 화려나 수사나 선(禪)적인 명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특정한 제스처에 의해 행해진다. 그러한 제스처는 반복을 통해 실체화된다. 인물들의 본질적 특성은 말보다는 그들의 신체 일부에 의해 더 잘 드러난다. 화면은 란슬롯과 귀네비어, 그들의 시선, 그들의 손을 순서대로 번갈아가며 반복해 보여준다. 거기에는 두 명의 란슬롯이 존재한다. 갑옷 입은 란슬롯과 갑옷 벗은 란슬롯.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갑옷을 벗어야 하는 란슬롯과 충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갑옷을 입어야 하는 란슬롯.


반복적 제스처는 탈출을 시도하는 사형수가 숟가락으로 문을 긁는 반복동작<사형수 탈옥하다> 혹은 소매치기의 재빠른 손동작<소매치기> 또는 어린 소녀 무셰트가 절망적으로 연못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반복된 자살 시도(무셰트)처럼 항상 구원에 관한 것이다. 브레송에게 있어서 반복적 제스처는 존재적 충만함을 드러내는 고유한 방식인데, 보다 정확히 반복적 제스처는 구원의 메시지라기보다는 구원의 매개체일 것이다.

영화의 끝은 다시 익명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란슬롯은 다른 많은 철갑옷의 기사들처럼 누가누군지 서로 분간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아무런 영웅적 비장미도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예정된 운명처럼 쓰러져간다. 누군가 지적했다시피 철갑옷은 처음부터 그들의 무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숲 속을 가로지르는 기수 없는 말(기의 없는 기표)은 운명의 여로에 내던져진 당나귀 발타자르의 도플갱어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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