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권진 주필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헌법재판소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 했다. 재판관 8명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8:0이다. 만장일치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90여일 만이다. ‘촛불’과 ‘태극기’가 광장에서 저마다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탄핵인용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인용된다. 기각된다. 각하된다. 인용되는데 8:0이다. 6:2다. 기각되는데 5:3이다. 법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일까 이 권한대행이 결정요지를 낭독하는 중에도 혹시나 하며 머리를 때렸다. 앞 문장과 뒷문장의 내용을 전환하는 접속사인 ‘그러나’와 ‘그런데’의 반전효과에 설왕설래했다. 심장이 둥둥거렸다.

최순실 게이트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광장에 나온 ‘촛불’이 물었다. ‘이게 나라냐’, ‘이게 민주주의냐’, ‘이게 정의냐’, ‘이게 법치냐’고 물었다. 대답은 유보되었지만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국회의원 234명의 찬성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고 손상된 헌법질서를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탄핵소추”를 했다. 그러자 ‘태극기’가 물었다. ‘이게 나라냐’, ‘이게 민주주의냐’, ‘이게 정의냐’, ‘이게 법치냐’고 물었다. 관점은 다르지만 ‘촛불’의 질문이나 ‘태극기’의 질문은 형식상 판박이다. 이란성 쌍둥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대답했다. ‘촛불’과 ‘태극기’의 질문에 엄정하게 대답했다. 단호하게 대답했다. 명쾌하게 대답했다.

법관은 판결로 대답한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인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들의 대답이다. ‘이게 나라다.’ ‘이게 민주주의다.’ ‘이게 정의다.’ ‘이게 법치다.’ 이것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대한민국이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을 임기 도중에 우리 손으로 파면했다. 박근혜호를 출범시킨 손으로 박근혜호를 침몰시켰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때론 엎기도 한다고 한다(水則載舟水則覆舟). 순자(荀子) 왕제편(王制篇)에 나오는 탁견의 실현이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지만 임기 중에 합법적 절차로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혁명으로 하야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죽어서 내려왔다. 이승만 대통령을 내리는 데는 많은 죽음이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총이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국회가 의결한 탄핵소추 인용판결로 내려왔다. 죽은 사람이 없었다. 피 흘린 사람이 없었다. 구속된 사람이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제도와 법에 의탁했다. 상식과 순리에 따랐다.

그렇기에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인용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서술하는 하나의 분수령이 되어야 한다. 탄핵인용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 특권이 없는 나라, 정의로운 나라, 법 앞에 평등한 나라를 위한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역사는 어떤 역사든 위대하다. 우리의 스승이기에 위대하다. 역사에서 가르침을 얻지 못하는 국가와 국민에겐 예측 가능한 미래가 없다. 지도자에겐 이끌어갈 비전이 없다. ‘촛불’과 ‘태극기’에서 배워야 한다. 나는 묻고 싶다. 어떻게 지켜온 태극기인가. 어떻게 밝힌 촛불인가.

헌법재판소의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파면 결정으로 다음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앞당겨졌다. ‘벚꽃대선’이다. ‘장미대선’이다 하는데 헌법과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해야 한다. 선거일 공고는 선거일 50일 전에 해야 한다. 이런 규정을 고려하면 선거일은 4월 29일부터 5월 9일까지 가능하다. 어느 날에 하든지 대한민국 산천과 땅이 푸르러 가는 시절, ‘신록대선’이다.

다음 대통령은 윤동주 시인이 <서시>에서 노래했듯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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