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선고 사흘 만에 청와대 관저를 떠나 삼성동 사저에 도착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드러낸 입장은 우리 국민을 아연실색케 했다. 헌재 결정에 대한 명백한 불복 선언이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헌법 질서에 대한 존중 의지가 없다는 헌재의 파면사유를 다시 한번 증명한 꼴이 됐다.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92%에 달하는 절대다수 국민에 대한 정면도전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국민에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한줌의 광적 지지자를 택한 것을 보면 우리 국민이 참 불행한 지도자를 가졌었다는 수치심이 들기도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가장 많이 사용한 말 중 하나가 ‘법치’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법치’의 결여에 기인하는 것마냥 그는 기회만 되면 법에 의한 지배를 강조했다. 2014년 전교조의 법외노조 판결 때도,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때도, 그리고 2015년 대한민국 총궐기대회를 불법 폭력집회로 규정할 때도 박 전 대통령은 엄격한 법적용을 주장했다.

이제는 유명해진 얘기지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도 박 전 대통령은 “헌재 판결에 겸허히 승복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고, 헌재의 세종시 수도이전 위헌결정에 대해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곧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이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초지일관 법치를 강조했던 박 전 대통령이 이번 헌재의 재판관 전원일치 파면선고에 대해 불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모든 국민에게 해당하는 말로서, 당연히 박 전 대통령 본인도 포함된다. 비록 결과가 본인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법치의 기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부정해버린다면 무법천지가 되고 만다.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전직 대통령부터 헌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과연 일반 국민에게 법을 준수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박 전 대통령이 자연인으로 돌아가자 마자 ‘사저 라인업’을 구성한 것은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 일부 친박계 의원이 역할을 나눠 서청원·최경환 의원이 총괄 업무를, 윤상현·조원진·이우현 의원이 정무, 김진태 의원이 법률, 박대출 의원이 수행 업무를 맡아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정치재개 선언으로 보고 있다. 즉 박 전 대통령이 이들 사저 라인업을 통해 향후 검찰수사에 대응하고 조기 대선 국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춘추전국시대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는 “법은 신분이 높은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론분열을 조장하고 장기화하는 것은 정치인의 도리가 아니다. 국민들은 지금 박 전 대통령에게 사회지도층의 신분에 걸맞는 높은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는 상식적인 행동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파면을 돌아보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1961년부터 저격으로 사망한 79년 10월까지 오랜 시간을 청와대에서 보내며 특권의식이 몸에 배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은 비극적 가족사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서 일부에서는 탄핵으로 물러난 전직 대통령에게 ‘너무 야박하지 굴지 말자’는 동정론이 나오고 있고 또 여당의 친박세력을 중심으로 벌써부터 불구속 수사 얘기도 흘러 나온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그가 법을 존중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한 얘기다. 법치를 부정하는 전직 대통령에게 베풀 관용이란 없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검찰은 구속수사도 해야 한다. 법은 더 준엄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것이 우리사회가 법치의 가치를 되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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