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처리한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와 잘 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의 대부분은 이와 같은 거래 혹은 계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계약 당사자 사이에 수많은 주인-대리인 관계가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환자와 의사, 주주와 CEO, 소송 의뢰인과 변호사, 국민과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장 혹은 지방의회 의원, 국민 혹은 주민과 공무원 등등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와 같은 관계가 성립된다. 일반적으로 재화나 서비스가 필요하여 의뢰하는 사람(수요자)이 주인이고,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사람(공급자)이 대리인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주인-대리인(Principal-Agent)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대리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현대에 와서는 입법, 사법, 행정,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등 모든 공공기관을 대리인의 입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인-대리인(主人-代理人) 관계는 필연코 문제가 발생한다. 두 당사자가 서로 상이한 이익을 탐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상황이 대리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주인이 손해를 보게 되는데 이를 대리손실(agent loss)이라 한다. 이러한 손실이 발생하는 원인을 찾아 손실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주인-대리인 이론의 핵심이다. 지방자치와 관련하여 이러한 대리손실이 발생하는 원인과 이러한 손실을 줄이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 정보 소유의 문제이다. 주인과 대리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존재할 경우 정보를 많이 가진 쪽에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정보를 이용해 보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정보는 주인보다 전문가인 대리인 쪽이 많이 가지며 주인도 모르는 정보를 대리인이 감출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경우 일반 주민보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지방의원 혹은 이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이 더 많은 고급정보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유용한 정보는 일부러 공개를 미루거나 사후에 소극적으로 공개하는 등 공개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정보를 왜곡하거나 조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리인이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여 주인을 현혹시킬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주인이 바라는 것과 대리인이 선호하는 것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주인은 대리인이 주인의 목적이나 선호를 충실히 반영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대리인은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게 된다. 지방자치의 경우 주민의 통제나 감시가 느슨한 틈새를 이용하여 대리인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기에 영합하여 방만한 사업을 벌일 수도 있다. 이에 필요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는 등 어려운 지방재정에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선거에 의하여 취임하는 대리인이 차기 선거를 의식하여 벌이는 행동들은 눈여겨 봐야할 문제일 것이다.

셋째, 기준에 미달하는 대리인을 선택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한다. 주인은 대리인을 선택할 때 대리인이 위임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하여 ‘선택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현장에서 볼 때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 출마한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잘 못된 정보 등으로 인하여 ‘역선택 현상’이 발생하게 되며, 이로 인하여 선출된 대리인들은 전체의 이익보다는 사익이나 추종자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들 수 있다. 대리인은 업무를 수행할 때 수탁자로서 필요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그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이 대리인의 행동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관찰하거나 감시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기회주의적 속성을 드러내고 도덕적으로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대리인들의 비리와 부패는 도덕적 해이(道德的 解弛)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매년 실시하는 공공기관에 대한 청렴도 측정, 공직자 행동강령 실천, 급기야 지난해 시행된 김영란 법은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극단의 통제 장치인 것이다.

우리는 주인을 무시한 대리인의 수많은 횡포를 접하며 살고 있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주인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광장의 성난 민심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태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리인은 자신의 행동을 왜곡하고 조작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당한 정책행위라고 주장한다. 주인의 소홀한 감시를 틈타 자신들만의 목적달성을 위해 주인들의 ‘선택의 오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도덕적 해이를 일삼아 왔던 것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인, 행정인 등 공공기관의 대리인들은 금번 대통령 탄핵사태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주인을 위한 정보는 적극적으로 공개하여 공유하고, 오로지 주인의 이익에 맞는 일만 추진하고, 부패와 비리에 가담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무심한 듯 말 없는 주인들은 현명하게 행동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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