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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아, 네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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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11  13: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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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날. 2017년 일출을 맞이하지 못한 마음을 덜어내고자 산행을 했다. 기산 정상에 올라가서, 산마루를 타고 곤봉 정상에서 함평초교 앞으로 내려오는 산행이었다. 일행도 없이 혼자서, 앞 뒤 등산객 없이 호젓이 걸었다. 걷다보니 내 인생의 굽이굽이가 산등성이 따라 스쳐가고, 하늘의 뜬구름처럼 여러 생각도 오고 갔다. 촛불이, 탄핵이, 바다 속의 ‘세월호’가 가고 ‘세월’이 왔다. ‘세월, 세월호’, ‘세월호, 세월’. 그래, ‘세월’이다. 세월아 네월아, ‘세월’이다.

세월은 강물 같다. ‘세월은 흐르는 강물 같다.’ 앞 강물은 뒷 강물에게 자리를 내주며 흘러간다. 앞 강물은 멈칫거리다가 쓸려가고, 버티다가 밀려간다. 뒷 강물은 앞 강물을 따라간다. 앞 강물이 낸 길을 따라 간다. 그러나 이것은 한 곳에 서서 강물을 보는 내 마음의 물결일 뿐, 강물은 그저 흐를 뿐이다. 우렁우렁 흘러 갈 뿐이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다.

세월은 화살 같다. ‘세월은 쏜 화살 같다.’ 망설임 없이, 머뭇거림 없이 오직 과녁만 향해 가는 화살이다. 비가 오면 비를 가르고, 눈이 오면 눈을 뚫으며 날아가는 화살이다. 한 번 쏜 화살은 잡을 수 없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잡을 수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정작 세월은 토끼 걸음인지, 거북이 걸음인지 모른다. 세월은 백 미터 달리기를 하는지, 마라톤을 하는지 모른다. 그저 앞으로 갈 뿐이다. 해찰하지 않고, 쉬지 않고 갈 뿐이다.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다.

장사 없다. ‘세월에 장사 없다.’ 세월과 겨루면 한라장사, 백두장사도 무릎을 꿇는다. 칼장사, 총장사도 숨을 죽인다. 세월을 이기는 권세도 없다. 부귀도 없다. 세월을 이기는 빛도 없다. 어둠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무상이다. 세상사 다 한 시절이다. 인생사 ‘삐까번쩍’도 찰나다. 세월 앞에선 겸손해져야 한다. 겸허해져야 한다. 세월은 시나브로 무너지게 한다. 녹슬게 한다. 잃게 한다. 무엇보다 세월은 사람이 사람을 잊게 한다.

속아 산다. ‘세월에 속아 산다.’ 이구동성으로 말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세월은 억울하다. 세월은 사람들과 ‘무엇을’ 약속한 적이 없다. ‘어떻게’ 계약한 적이 없다. 마이크 잡고 선언과, 선동도 한 적이 없다. 차를 마시며 담소, 담화를 나눈 적도 없다. 세월은 그 많은 세월 동안 오로지 묵언수행, 침묵으로 일관했다. 세월은 가만히 있는데, 제 갈 길을 갈 뿐인데 세월을 가지고 말이 많다. 세월이 간다. 온다. 빠르다. 지겹다. 속였다. 말들이 많다. 세월은 귀가 아플 것이다. 그래도 세월은 말이 없다. 세월을 듣기만 한다. 그래, 그래. 큰 귀를 기울여 듣기만 한다.

분노에도, 슬픔에도 약이다. 절망에도, 희망에도 약이다. ‘세월이 약’이다. 인생을 다스리는 약방문이다. 인생에서 산전수전에 공중전을 경험한 분들의 추천 약방문이다. 무슨 약이란 말인가? 당장 수를 내야만 되는 일을 앞에 두고도 세월이 약이란다. 세월이 만병을 고치는 약이란다. 또 세월타령이다. 세월타령에 눈을 치켜떴었다. 고개를 돌렸었다. 그러나 쉰 줄을 넘어 예순 줄에 다가선 지금은 가만두는 편이 늘어난다. 그래, 세월이 약이다.

세월은 치우침이 없다. 사사로움이 없다. 세월은 천진난만하다. 천진무구하다. 그런데 우리들은 세월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했다. ‘찰떡쑥떡’했다. 무슨, 무슨 ‘딱지’를 붙이면서 세월을 농락했다. 능멸했다. 그냥 오는 세월이라고, 그냥 가는 세월이라고 세월에게 함부로 했다. 무람없이 했다. 우리들은 우리 편의에 따라서 임시방편용, 대피용, 핑계용으로 사용해 왔다. 세월은 해결사가 아니다. 세월은 동네북이 아니다. 반성해야 한다. 이런 무례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 한다. 용서를 구해야 한다. 세월에 대해서 예의를 지켜야만 세월과 동행할 수 있다.

세월아, 네월아. 오는 세월이 좋은 세월이었으면 한다. 올 한해가 살 맛 나는 세월이었으면 한다. 그러나 좋은 세월, 살 맛 나는 세월은 그냥 오지 않는다. <논어> ‘양화편’을 보면 ‘날이 가고 달이 간다. 세월은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日月逝矣 歲不我與).’고 했다. 내가 원하는 세월을 위해서는 그런 세월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세월은 막을 수 없다. 잡을 수 없다. 도연명은 ‘잡시(雜詩)’에서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歲月不待人).’고 했다. 그렇다.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가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오는 세월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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