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위대한 다큐멘터리 감독 로버트 플래허티의 1922년 기념비적인 다큐멘터리 ‘북극의 나누크’ 후반부에는 당시 많은 서구인들이 궁금해했을 에스키모 이누이트족의 잠자리 모습이 나온다.

이글루 속에서 나누크 가족은 상의를 탈의한 채 큰 가죽이불 하나로 온 가족이 몸을 덮는다. 영하 온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이글루가 녹아내리기 때문에 불을 지피지도 못한다. 좁은 이글루 속 나누크 가족의 잠자리 모습은 좁은 공간에 비해 너무도 자연스럽게 촬영돼 이상할 정도였는데, 사실 이 장면은 이글루의 한쪽면을 뜯어내고 촬영한 결과였다.

이 영화 이후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감독의 현실개입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는데, 거기서 나온 결론은 이렇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현실에 대한 관찰(촬영) 자체가 현실에 대한 개입이 된다는 사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현실은 변형된다는 것이다.

최근 덴마크에서의 최순실 딸 정유라의 경찰체포에 있어 JTBC기자의 개입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논란은 언론윤리에 대해 다시금 화두를 던지는 듯 했다. 포문을 연 것은 메디아티 이사 박상현 씨였다.

박 이사는 JTBC기자가 정유라 씨를 경찰에 신고한 사실에 문제제기를 하며 “기자는 사건을 보도할 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보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관찰자로 남았어야 했고, 신고를 했다면 그 이후는 보도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JTBC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박상현 씨의 글이 포털사이트 다음에 오르자 댓글이 1만 여개가 달리며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반응은 박 씨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들도 둘로 나뉘어 입장을 개진했다.

변상욱 CBS 대기자는 “전두환 정권 때 양심선언하고 경찰에 쫓기는 군 내부 고발자를 CBS사무실에 숨겨주고 박노해 시인 정체와 은신처를 취재하고도 특종을 포기했다”며 “사건에 개입되지 않는 순수 취재는 탁상논란일 뿐”이라고 지적했으며 “언론이 침묵과 왜곡으로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건 역사 개입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김형민 SBS PD는 “JTBC 기자가 함정을 파서 정유라를 끌어들였다거나 정유라를 협박했다면 명백한 취재 윤리의 문제이겠지만, 취재를 거부하는 용의자, 자금 세탁에 그 이름이 쓰였고 외환 도피의 혐의도 있으며 그 외 중대 범죄의 혐의자 내지 참고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를 자신의 ‘취재’를 위해 방치했다면 그것도 아주 엄중한 ‘취재 윤리’ 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휴머니즘 없는 프로페셔널만큼 위험한 건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박은하 경향신문 기자는 “JTBC는 경찰과 한 팀을 이뤄 수사에 가담한 셈이다. 두 권력 기관이 팀을 이룬 건 사실 섬뜩하고 쇼킹한 일”이라고 밝히며 “JTBC의 이번 보도가 선의에 기반 했고 비윤리적이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으며 통쾌한 결과를 가져왔더라도 논쟁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상식적인 판단에 비추어 본다면 이번 논란을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경찰에 신고했으면 취재하면 안 된다’ 원칙은 실제 보도윤리에 존재하지 않으며, 만일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JTBC 기자가 경찰에 신고한 행위는 비판을 받을 정도의 사안도 아니었으며, 기존에도 신고와 취재가 병행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어 왔다. JTBC에만 엄밀한 잣대를 대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만일 ‘신고를 했다면 그 이후는 보도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명제를 언론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면 최순실 스캔들의 출발점인 최순실의 태블릿 PC 보도도 나와서는 안되는 것이 된다.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를 보도하기 전에 이미 경찰에 신고하고 넘겼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광장의 촛불도 없었을 것이고 당연히 대통령 국회탄핵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언론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다.

보도 행위 자체는 현실에 대한 변화와 개입을 내포한다. 그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기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위적으로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키지 않는 한 말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언론윤리다. 그것은 진실과 국민의 알권리를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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