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권진 주필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내가 ‘본방’을 사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10월 24일 jtbc의 ‘뉴스룸’에서 이른바 ‘최순실 PC’ 방송을 한 후부터다. 드라마도 아닌 뉴스를 ‘본방사수’했다. 뉴스가 아니라 드라마였다. 손석희 연출, 손석희 주연의 일일드라마였다. 날마다 저녁 8시가 되면 텔레비전 앞에 앉게 하는 데는 박근혜대통령의 사과문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이지만 대통령에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도, ‘존경’받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하면서 ‘사과드립니다’고 한다. 한 번은 녹화로, 또 한 번은 생방송으로 두 번이나 ‘사과드립니다’고 한다. 한 번은 사양했지만 대통령께서 두 번씩이나 ‘사과드립니다’해서 ‘사과’오기를 기다렸지만 ‘사과’가 오지 않았다. 모든 국민에게 사과를 박스로 드리는 것은 ‘김영란법’에 저촉될 우려도 있어서 무리이지만 준다고 했으니 하나는 주겠지 했다. 그런데 국광 하나도 주지 않았다. 홍옥 하나도 주지 않았다. 후지 하나도 주지 않았다. 이제는 ‘사과드립니다’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두 번은 속았다 해도 세 번이나 속으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국민’에서 ‘물러나라’하기 전에 내가 먼저 물러날 것이다.

각설하고 ‘최순실 PC’라는 판도라 상자가 열리고 난 후 국민들은 이구동성, 이렇게 말한다. ‘부끄럽다’ ‘참담하다’ ‘기막히다’ 그리고 ‘분노한다’고 한다. 분노가 마음의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있다. 곧 폭발할 분노다. 한 번 폭발하고 멈출 분노가 아니다. 분노는 분노가 이끌어 가기에 어디로 갈지는 분노하는 사람도 모른다.

부끄럽다.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후보 박근혜를 찍은 손이 부끄럽다. 따라 다닌 발이 부끄럽다. 대통령으로 인정한 머리가 부끄럽다. 대통령으로 부르는 입이 부끄럽다. 대통령 말씀이라고 들은 귀가 부끄럽다. 대통령이라고 본 눈이 부끄럽다. 이런 대통령이 대표하는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부끄럽다. ‘이러려고 내가 투표 했는가!’

참담하다. 대통령이 국정을 ‘비선실세’에 의지했다는 것이 참담하다. 대통령이 ‘비선실세’의 대변인이었다는 것이 참담하다. 대리인이었다는 것이 참담하다. ‘비선실세’가 최순실이었다는 것이 참담하다. 최순실 일가였다는 것이 참담하다. 최순실 주변 인물이었다는 것이 참담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순실이 ‘듣보잡’이었다는 것이 참담하다. ‘이러려고 내가 국민 했는가!’

기막히다. 헌법을 수호할 대통령이 헌법을 훼손해서 기막히다. 청와대 수석이 사기업 인사에 개입해서 기막히다. 재벌에 ‘삥’ 뜯는데 앞장서서 기막히다. 최순실이 정부인사에 개입해서 기막히다. 무슨 사유인지 청와대를 제집처럼 드나든 것이 기막히다. 딸을 위한 일이라면 온갖 편법을 쓰고, 만들어서 기막히다. 그런데도 최순실을 만났다는 사람도, 안다는 사람도 없으니 기막히다. ‘이러려고 내가 세금 냈는가!’

분노한다. 대통령에게 분노한다. 공과 사를 구별 않는, 공과 사를 섞는 대통령에게 분노한다. 한 통속이 되어서 국민의 눈을 가린, 국민의 귀를 막은 청와대 수석들, 안종범, 우병우에게 분노한다. ‘문고리 삼인방’,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에게 분노한다. 대통령에게 대면보고 한 번 못하는 장관들에게 분노한다. 이런 청와대 뒤에서 박수만 치는 새누리당과 의원들에게 분노한다. 방송과 신문의 온갖 의혹제기에도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검찰에 분노한다. 징허고 징허다. ‘이게, 나라냐!’

그래서 간다고 한다. 광화문 광장. 가서 외친다고 했다. ‘박근혜 하야’, ‘유신체제 종식’. 가서 촛불을 든다고 했다. ‘최순실 콩밥’, ‘민주주의 회복’. 2016년 11월 12일, 밤.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일대에 100만 분노가 모였다. 터졌다. 100만 촛불이 너울거렸다. 이 장엄한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눈시울을 붉혔다. 대한민국은 위대했다. 그간의 부끄러움과 참담함과 기막힘을 명쾌, 통쾌, 유쾌하게 날렸다. 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담대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국민은 ‘떼창’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국민은 권력을 호출했다. 국민은 권력에게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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