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잔차 전국 여행 5]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속초'의 유래 아시나요?... <대조영> 세트장을 둘러보디

몇 발자국을 더 가니 윤금초 시조 시인의 시도 눈에 띠었다.

땅 끝

- 윤금초

반도 끄트머리

땅끝이라 외진 골짝

뗏목처럼 떠다니는

전설의 돌섬에는


한 십년

내리 가물면

불새가 날아온단다.


갈잎으로, 밤이슬로

사뿐 내린 섬의 새는

흰 갈기, 날개 돋은

한마리 백마였다가


모래톱

은방석 위에

둥지 트는 인어였다.


象牙質 큰 부리에

선지빛 깃털 물고

햇살 무등 타고

미역 바람 길들여 오는,


불잉걸

발겨서 먹는

그 불새는 여자였다.


달무리

해조음

자갈자갈 속삭이다

십년 가뭄 목마름의 피막 가르는 소리

삼천 년에 한 번 피는

우담화 꽃 이울듯

여자의 속 깊은 宮門

날개 터는 소릴 냈다.


몇날 며칠 앓던 바다

파도의 가리마 새로

죽은 도시 그물을 든

낯선 사내 이두박근……


기나긴

적요를 끌고

훠이, 훠이, 날아간 새여

만해마을로 들어가니 아직 여름이 멀어서 인지 한가하다. 항상 시인학교가 열리는 강의실과 식당을 지나 사무실로 올라갔다. 강원도 문인협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상국 시인의 얼굴이나 보고 가고 싶어서였다.

마침 그 분은 자리에 있었고, 시원한 음료수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뒷길을 따라 출발했다.

이곳 만해 마을의 정신은 '무소유와 자연친화 생명사상'이다. 그리고 이곳의 정신을 나타내는 시 한 편이 항상 이 마을과 함께한다.

풍란화 매운 향기
님에게야 견줄손가

이 날에 님 계시면
별도 아니 더 빛날까

불토(佛土)가 이 위 없으니
혼아, 돌아 오소서

- 위당 정인보의 '추모의 글'

신록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온갖 들꽃들은 제각각의 빛을 발하고 이 지상의 조화로움 만발하고 있었다. 잠자리만 한가롭게 돌담 위를 앉았다 떴다 장난을 하고, 봄을 지난 계곡물들은 더욱 불어 찰찰찰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만해마을에서 백담사로 가는 사잇길에는 차들도 거의 오지 않는다. 띄엄띄엄 있는 몇 개의 집들을 지나 한참 달리니 멀리 백담사 입구의 가게들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이제 미시령을 향해 올라가야 하는 시간이다.

뙈약볕 아래에서 오직 페달만 밟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그러다가 라이더 한 명을 만났다. 김포에서 오늘 새벽에 출발해 속초에서 일 박하고, 내일 다시 돌아간단다. 그는 싸이클을 타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그늘에서 잠시 그와 사탕 하나를 나눠먹고 목을 축였다. 이내 그를 보내고, 미시령을 오르는 길은 계속해서 오르막이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그러나 선들선들 부는 바람은 시원해 답답한 차 속에서 에어컨 틀고 앉아 있는 것 보다 훨씬 나았다. 아마 차 안의 사람은 내가 안되 보이기도 하겠지만,

한참을 가니 멀리 터널 하나가 아가리를 벌리고 어서 들어오라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미시령 터널이다. 아마도 모든 라이더들에 터널을 지나가는 것은 고역일 것이다. 또한, 그 안에서는 사고도 많이 난다. 나에게도 터널을 통과하는 것은 특히 힘들다.

갓길도 없는 길을 조그만 깜박이 등하나 켜고 달리다 보며, 질주해 오는 차의 굉음에 금방 넘어질 것 같다. 차들은 금방 내 자전거를 어떻게 해버릴 것처럼 기세 좋게 달려온다. 제발 터널을 만들 때는 사람과 자전거가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도로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넓지 않아도 된다. 일 미터 정도의 여유만 있었으면, 물론 턱이 있어야 되겠지만, 제주도를 일주하면서 저 정도의 자전거 도로만 있으면 시원스레 전국일주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섬찟섬찟, 휘청휘청, 간신히 터널을 빠져 나왔다.

날씨가 흐리더니 마침내 비까지 오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빗속에 내리막길을 달리니 더욱 미끄럽다. 중간쯤 매점이 하나 보였다.

그리고 오른쪽 편으로 빗속에 울산바위가 공룡의 등처럼 눈 앞에 떡 버티고 있었다. 언제가 설악산을 종주하면서 공룡능선을 지날 때, 구름 속에서 선경처럼 아득하게 떠 있던 그 광경이 생각났다. 차가 한 대 들어오더니 비구니 한 분이 내려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신도인 듯한 분과 급히 사진을 찍고 떠났다.

이곳 울산 바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전설이 있는데, <뿌리 깊은 나무>(1983)에서 나온 '한국의 발견' 강원도 속초시 편을 보면 '울산바위' 전설과 함께 '속초 지명의 유래'가 나와 있다.

옛날 조물주가 금강산의 경관을 빼어나게 빚으려고 전국의 잘 생긴 바위는 모두 금강산으로 모이도록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자 경상도 울산에 있었던 이 바위도 그 말을 듣고 길을 떠났는데,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느림보 걸음으로 걷다가 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은 모두 다 만들어진 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바위는 금강산에 가보지도 못하고 현재의 자리에 주저앉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어느 해인가 설악산 유람 길에 나셨던 울산 고을의 원님이 이 울산바위에 얽힌 전설을 듣고 신흥사 스님에게 울산 바위는 우리 고을의 소유인데 신흥사가 차지했으니 그 댓가로 세를 내라고 하여 해마다 받아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턴가 신흥사에 사는 동자승 하나가 꾀를 내어 이제부터는 세를 낼 수 없으니 이 바위를 도로 가져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 그 원님은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억지를 부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자승은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에 많이 자라고 있는 풀(草)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매고 새끼를 불로 태웠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것을 본 울산 원님은 더 이상 울산바위에 대한 세를 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를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를 써서 속초(束草)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는 계조암에서 보면 울산바위가 마치 울(울타리, 담)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울 같은 산 바위'란 뜻으로 '울산바위'라고 불렀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상점 주인 아저씨도 일찍 감치 문을 닫고 손님 한 분의 차를 얻어 타고 사라졌다. 갑자기 나 혼자만 남았다. 비오는 설악산에서 눅눅한 옷을 입고 나 혼자 남았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심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이제 집 떠난 지 며칠 되지도 안 했는데….

다시 반쯤 남은 내리막길을 시원스럽게 내려갔다. 비 오는 급경사 길은 너무나 위험했다.
가끔씩 끼익 끽, 밀리는 바퀴를 보면서 섬뜩섬뜩 해진다.

한 시쯤 되자 속초 시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상당히 변두리인 듯 인가도 드물고 들판뿐이었다. 산모롱이를 돌고 얼마쯤 가자 '대조영 세트장'이라는 간판이 나온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요즘 한창 고대사 문제로 중국과 날카로운 대립의 날을 세우고 있는데, 하고 그 쪽으로 자전거를 돌렸다.

또 나는 <대조영>이라는 프로를 아주 즐겨본다. 그리고 KBS의 역사물은 정평이 나있다. 재미있고 역사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한 편의 역사물 속에는 한나라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녹아있으며, 특히 한 개인들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녹아있어 더욱 재미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인생도 가늠해보며 더욱 재미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과연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 있기나 하는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적은 보람 있는 인생이 될 수 있는가? 하고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거미줄 속으로 걸어가도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데, 천지간(天地間)으로 걸어가도 나는 날마다 걸리고 살기 때문이다.

왼쪽을 보니 기다란 건물과 놀이 시설인 미끄럼틀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벽에는 '워터피아(waterpia)'라는 이니셜이 크게 박혀있다.

오른쪽 편으로는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성곽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입구에는 "가늠할 수 없는 꿈의 크기, 대조영"이라는 글귀가 가슴으로 다가온다. 그 앞에 이르자 앞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있던 한 청년이 다가오더니 전국일주 깃발을 보고 반갑다고 한다. 자기도 속초 자전거 동호회 회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미소를 띠우고 돌아갔다

계속해서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우선 비라고 좀 피하기 위해 매표소 처마 밑으로 자전거를 집어넣었다. 예쁜 아가씨가 단정한 제복을 입고 서 있었다. 지갑을 열어보니 인제에서부터 배고픈 지갑에는 천 원짜리 한 장만 달랑 들어있다.

휑한 기분이 들어 괜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가씨가 빗속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측은했던지 차 한 잔 하려나 물어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가니 따뜻한 녹차 한 잔을 주었다. 차 맛도 좋았지만 아가씨의 따뜻한 마음이 더 가슴 속 깊이 파고들었다. 한화 리조트 씨네라마팀에 있는 차은진님 그날의 온정 정말 감사합니다.

배도 고프고 한 바퀴 둘러보니 워터피아 매표소 쪽에 비를 피할 만한 장소가 있었다. 그쪽으로 이동하여 보니 마침 화장실도 붙어 있었다. 그곳에서 쌀을 씻고 버너 위에 코펠을 얻었다. 금방 뜨거운 김이 올라왔다.

비가 오는 데도 워터피아 안 미끄럼틀은 시끄러웠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웃으며 지나가고 빗속에 관광버스들은 계속해서 들어온다. 뜨거운 밥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사람들은 많은데, 쓸쓸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현금지급기가 보이지 않는다. 간신히 찾아 약간의 돈을 인출하고 대조영 세트장 안으로 들어갔다.

비 오는 세트장 안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드라마에서처럼 큰 감흥으로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세트장은 상당히 넓어 한참을 구경하였다.

이제 사람들도 하나 둘 돌아가고, 새들도 집을 찾아가는 시간, 나도 오늘 하루 쉴 곳을 찾아 시내 쪽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우나를 물어 골목 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우나를 모르고 지나쳤다가 다시 뒤돌아 가니 지하 2층에 사우나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짐을 풀고 잠깐 쉬는데, 같은 복도에 노래방이 있는지 노래 소리가 요란하더니 아주머니 몇 분이 왁자하면서 나온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줌마 한 분이 땅바닥에 누워서 떼를 쓴다. 다른 친구들이 일으켜 세우려고 해도 막무가내다.

두 명의 친구가 내가 앉아있는 의자에 와서 털썩 주저앉으면서, "저 애는 가끔 저래"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한다. 한참을 그렇게 친구와 실갱이를 하던 아주머니는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그래도 정신이 있는지 일어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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