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이 실시된 지 보름여가 지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예식장과 장례식장에서는 화환을 반환하는 해프닝이 있는가 하면, 지인들과 식당에 가고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을 때도 혹시 위법이 아닐까 고민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국민들의 혼란을 반영한 듯 인터넷에는 ‘김영란법 총정리’ ‘김영란법 십계명’ ‘3-5-10법칙’ 등이 돌아다니지만 이 법에는 7가지 예외조항이 있고 또 금품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8가지 조항도 있어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제는 김영란법이 너무 포괄적이라는 데 있다. 우선 김영란법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법을 저지르게 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법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법 시행 초기에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일단 무조건 몸사리고 보자’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고 또 이렇다보니 부작용 사례들도 늘어 김영란법을 피하기 위해 축의금 명의를 빌리는 등 여러 꼼수까지 등장하고 있다.

공정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제정된 청탁금지법의 취지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이 투명하고 청렴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될 지는 더 지켜봐야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또 부정부패를 근절하자고 만든 법이지만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골프장은 차치하고라도 주요 도시의 횟집 등 식당가는 예약률이 예년의 반토막 수준에도 못 미쳐 문을 닫게 생겼다고 막막함을 토로하는 식당들이 늘고 있다.

경조사 화환과 꽃배달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꽃집과 화훼농장은 직격탄을 맞았고 축산·수산·임산 등 그 피해가 주로 지역농가들에 집중되면서 경기불황에 이은 소비심리 위축으로 서민경제가 이중고에 빠져들고 있다.

문제는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관행을 뿌리뽑겠다고 법을 만들었지만 정작 문제가 됐던 ‘밀실청탁’을 잡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밀실청탁은 잡지 못한 채 애꿎은 서민들만 잡을 공산이 크다.

직무관련성과 관련해서는 권익위와 관련기관들의 해석이 엇박자를 내고 있어 입법 초기부터 혼선을 빚고 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애매한 상황들이 많아 총체적 혼란상황이다. 그렇다보니 사례집 하나 만들지 못한 권익위에 대한 비판이 목소리가 크다. 특히 스승의날에 제자가 스승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것은 권익위가 내놓은 해석이 국민 정서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보여준다.

이 법은 부정청탁을 받은 사람과 한 사람 모두가 적용되기 때문에 적용 대상자는 사실상 전 국민인 셈이다. 또 청탁금지법이지만 포괄적으로 해석할 경우 폭넓게 적용될 여지가 많은 것도 문제다. 그런 만큼 악용사례 가능성이 높다.

투명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였지만 신고남발로 인해 오히려 불신사회를 조장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증빙서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동료나 주변인을 신고하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

김영란법은 누구나 신고 가능하고 큰 액수의 포상금까지 받을 수 있기에 오용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포상금 최대 2억원, 보상금 최대 30억원까지 벌 수 있는 것으로 홍보하는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학원까지 성행하고 있으며, 수강생들은 공익신고요원이란 이름으로 식당, 골프장, 예식장, 장례식장, 행사장 등 현장을 돌며 증거수집에 나서는 살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투명성의 강요는 감시사회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베를린예술대학 한병철 교수는 “투명사회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새로운 통제사회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가 불신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투명에 대한 욕구가 점점 높아져 자초한 면이 크다.

김영란법은 그 동안 온정주의를 통해 비리가 체화된 나쁜 사회풍조를 척결한다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경직된 법적용과 투명성에 대한 과도한 요구는 우리사회를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불신으로 이끌고 갈 위험성이 크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투명성이 가진 그러한 전체주의적 본질을 다시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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