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기록적인 무더위를 견디는 대한민국 국민들 마음의 수은주를 더 붉게 만든 ‘성주 사드배치’. 한민족 대명절의 하나인 한가위 밥상에 근심거리로 올려진 ‘경주 지진’. 마음이 놓이는 대책이나 대안 없이 주장만 난무해서 어지럽다. 토론이 없다. 토론을 해야 한다. 모두가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는데도 공론장에서 현안에 대한 토론다운 토론은 없다. 그래서 지켜보는 국민은 가려운 곳이 많다.

술자리에서 보면 말을 못하는 사람이 없다. 찜질방에서 보면 말을 못하는 사람이 없다. 다들 말을 잘한다. 그런데 토론의 장이 쉽게 열리지 않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이런 질문을 하면서 과연 나는 토론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자문을 한다. 결론은 아니다 쪽으로 손을 든다. 술집이나 찜질방의 언어가 주고받는 언어인가? 아니다. 일방통행의 언어다. 모두가 자기 말만 한다. 듣거나 말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듣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만 있다. 다 말하는 사람이다.

이걸 옮긴 것이 우리들 사랑방 풍경이니 토론의 장이 쉽게 성립이 되지 않는다. 실지로 방송토론도 그렇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만, 주장만 한다. 토론회에 나온 유명명사들이 그렇게 하니까 방송을 통해 토론을 보아온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토론인가 할 수도 있다. 물론 방송토론의 속사정도 이해는 한다. 토론에 나온 분들이 대개가 자신들이 속한 정당이나 단체를 대표해서 나온다. 그러므로 당리당략, 단체의 의견을 대변해야 하기에 상대의 의견이 타당해도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토론은 나의 주장과 남의 주장의 장단점을 수용하여 서로가 공감하는 결론을 얻기 위한 말의 주고받음이다. 이런 것이 과정에 담겨지지 않으면 그것은 토론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토론에서는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관계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것 보다 주로 들어주는 사람이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큼 들어주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나도 말을 좀 하는 쪽에 속한다. 그러나 요즘은 듣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조용히 듣고 있으면 내게 언짢은 일이 있는지 묻는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그것도 나의 이미지인가 하여 웃고 만다. 듣는 것이 좋다. 내가 말을 많이 할 때는 몰랐는데 조용히 듣고 있으면 여러 생각이 오간다. 사람들은 다들 말하기에 목말라 있다. 그만큼 자기들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경청해야만 상대가 경청하는 말을 할 수 있다.

토론을 하면서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상대방의 말에 흥분해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토론에서 평정심의 유지는 토론의 질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상대방의 말에 흥분을 하면 우선 나의 판단이 흐려진다. 냉철하게 사리를 분별하고 기어를 넣고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에 과부하가 걸리기 십상이다. 토론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격렬한 논쟁을 하면 재미가 있다. 그러나 토론하는 사람은 평정심을 유지해야한다. 말은 격렬하다 해도, 다시 말해 말의 속도와 쓰는 용어가 과격해도 마음은 과격을 피해야 한다. 토론에서 의도적으로 상대를 흥분하게 하는 토론자도 있다. 이런 상대방의 전략에 말려들면 할 말 못하게 된다. 좌충우돌, 횡설수설하게 된다. 판이 기운다. 토론에 임하는 토론자는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해서 이런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아주 중요한 토론장에 나갔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다. 남 앞에서 말을 잘한다고 해서 토론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토론은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 당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가을이 왔다. 기록적인 무더위를 지나서 온 가을이기에 등을 두르려 주며 포옹을 한다. 지난여름은 막막했지만 풍성한 가을이다. 들판의 벼들을 보면 굽은 허리가 저절로 펴진다. 가만히 있어도 이마의 주름살이 지워진다. 움츠렸던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그것도 잠시, 풍년가 한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막막한 소식이다. 풍년농사 해 놓으니 정부와 새누리당에서는 ‘쌀 과잉생산’이라 한다. 그 대책으로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 일부 해제까지 들먹인다. 또 주장이다. 일방적인 주장이다. 정책은 완장 벗고, 계급장 떼어놓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서 정해야만 따르는 것이다.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갑질은 그만, 토론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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