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들은 안다. 술 한 잔 하자는 약속이 말 그대로 술 한 잔이 아니라는 것을 술꾼들은 다 안다. 술꾼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한다. 이 ‘한 잔’을 말 그대로 한 잔으로 인식하는 술꾼은 없다. 한 잔 하자고 한 것이 어떻게 될 지는 형님도 모르고 아우도 모른다.

처음에는 한 잔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마시다 보면 술을 위한 자리가 된다. 용건은 간단하다. 술 마시기 전에 마치고 용건 없이 술을 마신다. 이것이 우리네 술꾼들 술자리 수순이다. 술문화다. 한 잔하자고 한 자리가 제안한 사람의 기분에 따라 2차가 된다. 3차가 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접대를 받는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으면 다음의 술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술자리는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서 변화가 심하다. 점쟁이도 술자리가 어떻게 될지는 점 칠 수 없다.

술꾼들이 전하는 술 이야기보따리는 크나 가볍다. 아저씨들 군대 이야기 같다. 아줌마들 시댁 이야기 같다. 하지만 술의 유전자는 순수 ․ 정직 ․ 평등이다. 술은 전관예우를 하지 않는다. 갑질을 하지 않는다. 마시면 마시는 만큼 순수하게 취한다. 술을 마시면 대통령도 취하고 이장도 취한다. 사장도 취하고 수위도 취한다. 술 앞에 계급장은 없다. 술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술은 마시는 사람 모두를 취기등등 취하게 만든다. 술은 정직하다. 술을 마시면 형님도 취하고 아우도 취한다. 선배님도 취하고 후배도 취한다. 술이 정직하다는 것은 마시면 누구나 취하게 한다는 것으로 증명이 된다.

이런 술에 대해 칭찬은 칠팔월 가뭄이나 비난은 홍수다. 단언컨대 술은 사람들에게 욕먹을 짓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술을 욕되게 하는 경우는 많았다. 너무나 많아서 다 열거를 할 수 없다. 술을 욕해서는 안 된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 문제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사달을 만드는 것이다. 사달이 나면은 배후로 술을 들먹거리는 것이다. 술이 취해서 그랬다는 것이 두고 쓰는 호소문이다. 우리나라는 술에 대해서 비교적 관용적인 정서다. 이런 정서를 상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술이 욕을 먹는다. 술이 가해자가 된다. 술이 어쨌다는 것인가. 술은 죄가 없다. 주권을 존중해 주자.

변호하지 마라. 강변하지 마라. 횡설수설하지 마라. 그렇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그만이다. 술자리 고민도 없다. 아주 간단하다. 주력 삼십년 내공을 단칼에 벤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된다. 오늘부터 금주하면 그만이다. 정답은 이러하나 일상생활에서는 금주만이 해답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남성들 대부분은 술자리를 통해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학연을 형성한다. 지연을 형성한다. 혈연을 형성한다. 정보를 교환한다. 서먹한 관계를 푼다. 결사를 한다. 어깨동무를 한다. 물론 밥만 먹고도 잘하는 사람이 있다. 부럽다. 술 한 잔 마시지 않고도 대인관계나 정보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많다. 삶의 달인들이다. 인정한다. 나의 술자리 타령은 음주를 위한 변명이다.

주졸이 거든다. 주선이 웃는다. “적당하게 마시면 되지. 왜 술을 끊어? 세상 고비고비 넘어가는데, 세월 가닥가닥 엮어 가는데, 술 같은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주졸다운 말이다. 주선다운 미소다. 술을 마셔라. ‘적당하게’ 마셔라. 권주가가 아니라 금주가다. 술꾼들이 신새벽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쓰는 반성문이 ‘적당하게’다. 주졸은 모르고 주선은 초월했다. 술꾼들의 독법 하나 소개한다. 일상에서는 ‘술’이라고 쓰면 ‘적당하게’라고 읽고, 술상에서는 ‘수울술’이라고 읽는다.

오늘도 예정에 없던 일을 해야만 했다. 어제 밤에 술을 마셨다. 취하게 마셨다. 내 위장은 위대하지만 술은 힘이 세다. 취하게 마시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야만 된다. 해야 되는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하루의 계획이 엉망이 된다. 숙취에 하루가 속수무책이다. 술꾼은 술에게 당당하게 맞장 뜨지만 필패다.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며,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며 시인들의 후원을 받아도 번번이 무릎을 꿇는다. 술 앞에는 장사가 없다. 평생을 술꾼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술 화두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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