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축제·국화축제 주전시관 꽃조형물 호평

화훼류 50여종 재배, 매년 30여만개 출하

‘광복70주년 나라꽃 큰자치’, 무궁화분재 최우수상

‘현장이 곧 학교’ 시행착오 겪으며 기술습득

해마다 수십만의 관광객이 전국에서 몰려드는 함평의 대표축제인 봄철 나비축제와 가을철 국화축제에는 공무원을 비롯한 수많은 지역민들의 보이지 않는 땀이 배어있지만 여기에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함평군 나산면 월봉길의 아랑농장 정천수 대표가 그 주인공.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던 시인 김춘수의 싯구처럼 정 대표가 손을 대면 어떠한 꽃들도 하나의 예술이 되고 하나의 작품이 된다. 마법을 부리는 마이더스의 손 같다. 시즌마다 바뀌는 주제로 꽃조형물을 전시해오고 있는 축제장 내 나비전시관과 국화전시관은 그의 구슬땀으로 매년 관람객들과 전문가들에게 큰 호평을 받아오고 있다.

 

산림청에서 주관하는 나라꽃 분재전시회에도 매해 작품을 출품하고 있는 정 대표는 지난해 8월 전국에서 1,300여점이 출품돼 치열한 경쟁을 펼친 ‘광복70주년 기념 나라꽃 무궁화 큰자치’ 우수분화 품평회에서 전국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반도를 형상화한 그의 무궁화 분재작품이 균형미, 조화미, 자연미, 생육상태 등에서 고르게 최다득점을 획득한 것이다. 지난해 대상을 비롯해 같은 대회에서 도최우수상을 이미 3회 수상한 경력이 있을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이 분야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 대표는 이 모든 것을 현장을 누비며 독학으로 배웠다. 젊어서 어려운 가정형편에 무슨 기술을 정식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그에게 ‘현장이 곧 학교’ 였다. 현장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씩 기술을 터득해 간 것이다.

정 대표는 81년에 군대를 제대하고 고향인 나산면으로 돌아와 ‘새마을청년부(4-H본부의 전신)’ 활동을 하며 농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축산자금을 받아서 소를 키워볼까 했는데 군청 담당자가 반대하는 바람에 경종자금으로 벼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해서 83년도에는 농민후계자가 되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꽃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화훼를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농가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정 대표는 도전정신으로 화훼재배에 무작정 뛰어들게 된다. 그리고 이때 그에게 첫 번째 성공을 안겨준 대나무 분재도 시작하게 되는데 대나무 분재 품목 하나로 농장전체를 유지할 만큼 당시 큰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이웃농가들에 기술을 전수해주자 금새 과잉생산이 되었고 그에 따라 가격이 급락해 더 이상 채산성이 맞지 않아 결국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하락과 인건비 상승, 거기에 몇몇 소비처로 제한된 수요의 한계 등이 더해지면서 더 이상 경제성을 맞추기 힘들게 된 것.

게다가 의욕적으로 나섰던 꽃재배도 주변에 자문을 구할 화훼농장이 별로 없었던 데다가 재배경험과 기술력마저 부족해 실패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또 이때만 해도 화훼농가에 대한 정부지원이란 게 전무했던 시절이라 실패는 고스란히 개인 채무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당시로서는 꽤 큰 돈이었던 3억원까지 빚을 지게 된다.

 

실패원인을 분석해보니 유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재배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 대표는 그 돌파구로서 화훼유통을 시작하게 된다. 정 대표가 가격 거품없이 순수하게 영업을 하자 서울양재동 화훼공판장에 금새 소문이 돌아 꽃가게와 소매업자들이 전부 정 대표에게 몰려들었다. 그렇게 해서 매장의 매출만으로 3년 만에 3억원의 빚을 다 갚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IMF 시기를 지나면서 정 대표는 그럭저럭 잘 운영되던 사업체를 접고 다시 고향인 함평 나산면으로 발길을 돌린다. 장사를 계속 하다보니 이윤에 죽고사는 장사꾼들의 생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농사꾼으로 돌아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정부에서 보조를 받고 화훼용 비닐하우스를 크게 짓게 되는데 또 빚을 지게 된다. 막상 투자를 하다보니 이번엔 운영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어깨보증’이라고 부르던 농가들간의 상호 연대보증도 발목을 잡았다.

화훼를 시작한지 30여년이 넘었지만 정 대표는 그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지금껏 특유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극복해왔다. 현재 화훼류 약 50여종 재배에 매년 30여만개 이상을 출하하고 있는 정 대표의 아랑농장은 전남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히는 화훼농장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정 대표는 함평의 전국적인 두 축제 뿐만아니라 국제대회장과 도시농업박람회, 해남 명량대첩축제, 영암 왕인문화축제, 영광 단오제, 신안 튤립축제 등 크고 작은 지자체 축제들에 다양한 꽃들을 출하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정 대표는 지금도 직접 트럭을 몰고 현장까지 배달할 만큼 강한 책임감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몇 해전, 영암 왕인문화축제 때는 축제를 앞두고 심어놓은 꽃들이 서리에 맞을까봐 정 대표가 한밤에 현장에 나가 꽃들을 천막으로 덮어주고 있었던 적이 있는데 영암군의 공무원이 우연히 그 모습을 보고 정 대표의 책임감과 성실성을 높이 사게 돼 그 이후 몇몇 어려움 속에서도 화훼납품을 계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부 축제장과 행사장의 경우 납품 뿐만아니라 직접 꽃조형물 세팅까지 하므로 생산과 유통과 소비까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통합 플랫폼이 아닐 수 없다. 순수하게 실력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한 것이다. 정 대표에 따르면 실제 재배와 납품과 행사장 세팅을 통해 직접 꽃을 소모하는 구조니까 화훼출하에도 도움이 돼 판매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정 대표는 그 동안 꽃조형물 제작 실력을 인정받아 지난 해까지 약 10여년간 서울 롯데월드 조경을 위탁관리해 왔으며 산림조합박람회도 매년 꽃조형물을 세팅해오고 있다. 그리고 지난 해 가을엔 서울 시청앞 국화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실력이 곧 경쟁력이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주관하는 고양국제꽃박람회의 경우, 꽃탑 하나에만 1억원 이상의 예산이 세워질 정도의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반면 함평군의 경우 축제장 주 전시관 세팅에 들어가는 꽃값이 약 6천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평가를 들어보면 고양시는 돈을 많이 썼지만 너무 단순하다는 게 중론이고 오히려 함평군의 꽃조형물 전시가 아기자기하면서 볼거리가 더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대표는 35여년을 꾸준히 4-H활동을 해오면서 4-H의 기본철학인 ‘지(智)·덕(德)·노(勞)·체(體)’를 겸비한 전인적 인간상의 자세로 살아왔다. 함평4-H본부 부회장으로서, 4-H교육농장의 대표로서 정 대표는 작년에는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위기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직업활동체험, 봉사활동체험, 성공멘토 강연 등의 도움을 주기 위해 함평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MOU(업무협약)를 체결하기도 했다.

평생 꽃과 함께 지내온 정 대표의 철학은 꽃처럼 화려하지만 단순하다. “꽃은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못 키웁니다. 꽃들마다 성질이 다 달라요. 마음을 열고 또 마음을 비우고 길게 가야지 한 순간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예요. 끈기가 필요합니다.”

꽃에 대한 얘기지만 꼭 사람에 대한 얘기 같다.

“함평이 나비천지, 국화천지가 됐으니 이제는 사람천지가 돼야죠!”

꽃들이 내뿜는 향기 속에서 그가 꿈꾸는 사람천지 세상이 한 걸음 더 다가오는 것 같다.

저작권자 © 함평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