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달, 오월이 간다. 해마다 내 심장에 더운 푸른피가 차오르는 오월이 간다. 또 오월을 보내면서 두 거인을 생각한다. 드물게 말하기와 글쓰기의 달인이었던 두 분이다. "지도자는 자기의 생각을 조리 있게, 쉽고 간결하게 말하고 글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고 했던 김대중. "연설문을 직접 쓰지 못하면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고 했던 노무현. 삼가 두 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말을 할 때 쉬운 언어로 말하라고 한다. 말을 듣는 대상에 맞는 눈높이로 말하라고 한다. 그런데 쉬운 언어, 눈높이 언어의 선택이 말처럼 쉽지 않다. ‘한 말씀'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전문용어로 말하는 것보다 쉬운 언어로 말하는 것이 어렵다. 길게 말하는 것 보다 짧게 말하는 것이 어렵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쉬운 낱말로 쓰자. 짧게 쓰자. 나도 이렇게 다짐하며 글쓰기를 한다. 하지만 단문으로 벽돌을 쌓듯이, 천을 짜듯이 한문장 한문장 더해서 겨우 엉성한 문단을 만든다.

이런 일화가 있다고 한다. 레닌이 마르크스에게 6장이나 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면서 추신으로 쓴 말이 ‘바빠서 6장을 쓴다고 했다’ 한다. 이해가 잘 되지 않은 마르크스가 답신을 보내자 ‘요약할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했으니 부탁한다’는 내용을 보내왔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짧게 말하기와 짧게 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짭게’는 내용의 빈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고 숙고의 통해 핵심만 표현한다는 것이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말하기와 관련해 우리가 두고 쓰는 말이다.

지난 17일 광주 출신 소설가 한강(46)이 영국 런던에서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이 상은 스웨덴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최근 외국 문예지들이 연이어 한국문학을 특집으로 꾸몄다고 한다. 이런 시기에 한강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수상하면서 한국문학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게 되었으며, 독자들은 한강의 다른 작품까지 구매하고 있다. 더불어 ‘글쟁이’들은 그의 시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절제된 문체에 주목하고 있다.

글을 쓰다보면 절제된 단문 위주로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얼마나 힘에 부치는 일인지를 온몸으로 절감하게 된다. 풀어진 나사를 조인다. 벌어진 틈에 못을 박는다. 쓸 말이 많았는데 쓰고 보니 몇 문장이다. 단락을 이루기도 막막하다. 과다한 수식어와 부적합한 형용사를 보내고 나니 그렇다. 고무줄처럼 탄력이 넘치는 문장은 기본적으로 단문이다. 또한 동사가 많은 문장이다. 이런 문장은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시는 몇 개의 낱말만으로 행을 만들기도 하지만, 성찰 없이 행을 꾸려서는 좋은 시를 쓸 수 없다. 시인이라면 품고 있는 대동소이한 하나의 꿈이 있다. 많은 사람이 애송하는 시를 쓰는 것이다. 단 몇 행으로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시, 깊은 울림을 주는 시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염원의 성취는 쉽지 않다. 대한민국은 ‘시인공화국’이라 할 정도로 많은 시인이 있다. 저마다 창작의지를 불태우며 매진하지만 그런 시는 드물다. 단 몇 줄로 인생을 말한다는 것은 크나큰 오만이다. 하지만 그런 오만스런 예술이 태생적으로 언어를 절약해서 써야하는 시다. 천형을 받은 시시포스가 시인이다.

글쓰기나 말하기나 요점은 같다. 단련이 된 사람이 아니면 어려운 것이 쉽게 말하기요, 말살 쇠살에 하지 않고 짧게 쓰는 것이다. 나는 어린이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말하기와 글쓰기 모두 그러하다. 오늘날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이뤄지고 있는 문자나 댓글, 덧글로 글쓰기는 거의 ‘놀이수준’이 되었다. 그렇기에 조리 있게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시대를 이끌어 가는 리더들이 갖춰야할 ‘필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어젠다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세력을 결집하는 게 정치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어젠다를 만들고 끊임없이 던져서 국민에게 생각이라도 해봐 달라고 해야 한다."고 노무현은 말했다. 리더의 말하기와 글쓰기는 성찰과 경청을 바탕으로 한다. 공감을 위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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