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 중에서. 피노체트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시민들을 잡아들이자 망명을 거부하고 체육관에 잡혀온 빅토르 하라는 군인들에게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9월 11일 화요일,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산티아고와 이스터섬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국영 라디오 방송의 디제이는 산티아고의 비소식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더욱 이상하게도 창 밖은 여느 때처럼 화창하다. 

화창한 아침인데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니 대체 무슨 소리일까? 이때 도로 위에 탱크를 앞세운 군인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지금 아옌데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대통령궁 '라 모네다'로 향하고 있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라디오에서 반복되어 흘러나오는 이 시적인 문장이 나중에 피노체트 군부의 쿠데타 암호로 밝혀지기 전에 군중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온다.

쿠데타 소식을 전해들은 노동자와 시민들은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쳤고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무기를 들었다. 1973년 9월 11일, 산티아고의 아침은 그렇게 거짓말처럼 시작되었다. 

산티아고의 공기를 가득 채운 허구는 군인들의 총성으로 깨졌다. 군부의 망명 제안을 거부한 아옌데 대통령은 최후의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참모들과 함께 소총을 들었다. 

탱크와 전투기까지 동원된 군부의 참혹한 공격은 세 시간 동안 계속 되었는데 같은 시각, 대통령궁 건너편 호텔에서는 부르주아들이 모여 빨갱이의 최후에 환호하며 파티를 열고 있었다.

"남위 18도에서 56도까지 길게 뻗어 내려간 칠레의 남북 길이는 4,329킬로미터에 이르지만 안데스 산맥으로 나뉘어진 동서의 폭은 175킬로미터에 불과하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 극지방까지 길게 늘어뜨러진 이 나라엔 구리를 비롯한 풍부한 지하광물이 있었고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 된다."

결정적 이유는 구리광산의 국유화였다. 제국의 자본가들에 맞서 자원을 국유화하고 사회주의 정책을 펼쳤던 아옌데 정권이 미CIA의 지원을 등에 업은 피노체트 군부에 의해 무너지는 순간은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비극의 한 특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악명 높은 군부의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체육관에 잡혀온 수많은 정객, 지식인, 예술가, 그리고 이름모를 시민들은 즉결심판을 통해 처형당했는데 그 수가 3만여명에 이르렀다. 

체육관에는 망명을 거부하고 붙잡혀온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도 있었다. 총구에 아랑곳 않고 '우리 승리하리라(venceremos)'를 선창하던 그는 곧 군인들에게 끌려가 참혹한 최후를 맞이한다. 

병상에서 하라의 죽음을 전해듣고 울분을 토했던 시인 파블로 네루다도 며칠 후 죽음을 맞이한다.
1973년 9월 11일, 산티아고에 내린 비는 민중의 피였다. 피노체트가 금지한 네루다의 장례식에 참석한 민중들은 세 개의 이름을 외쳤다.

네루다여!
아옌데여!
칠레 민중이여!

 

음악듣기►►► https://youtu.be/en8yqVxu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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