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문학동인들과 신록을 보러 갔다. 4월 신록철 신록구경이다. 꽃이 아니라 첩첩산중 신록을 보러 갔다. 봄볕을 받아서 우렁우렁 광합성을 하고 있는 나무들은 정신없이 바쁘겠지만 그것을 보는 내 마음에는 푸른물이 찰랑댄다. 봄의 마음이다. 온 몸에 통통 푸른피가 돈다. 봄의 몸이다.

화창한 봄날. 봄햇살을 온몸으로 공손하게 받고 있는 산색에 안복을 누린다. 함평의 산은 대부분 올망졸망 야트막한 산이라서 사람의 눈높이와 함께 한다. 산을 보기 위해 산을 우러르지 않아서 편안하다. 한적한 길. 차창 밖으로 눈길을 건네면 봄산은 이제 막 깨어난 푸르름으로 산을 적시고 있다. 초봄이 무르익어가는 산이 좋다. 산의 신록이 좋다. 산벚꽃의 낙화가 시작되면서 산의 신록은 서서히 깨어난다. 산들은 저마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는 푸른 물감을 풀어 채색하는 일에 몰두한다. 이 무렵의 산색을 나는 기다렸다. 해마다 초봄이 오면 고대하고 고대하는 산색이다.

앞산도 뒷산도 첩첩 푸르름을 더해간다. 기상예보에 의하면 초여름의 날씨라고 한다. 봄이 숨을 고르며 절정으로 가고 있는데 초여름의 날씨라니? 우리들이 자연을 만만하게 대접한 결과다. 자연은 자연스럽다. 늘 자연스럽게 순환한다. 말로만 ‘자연보호’, ‘환경보호’, ‘자연은 인간과 하나다’하는데, 이쯤 되면 이런 구호를 외쳐서 해결될 단계가 아니다. 자연에게 인간이 가한 자연스럽지 못한 행위에 대한 응답이다. 이대로는 자연이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자연스럽다. 자연은 받은 대로 주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상기온’이니 ‘이상기후’니 하는 말들은 쓰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은 인간의 기준에서 보아 이상한 것이다. 인간이 인간의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서 자연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다. 자연은 거짓을 모른다. 치장이나 꾸밈을 모른다. 사람처럼 교언영색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한다. 그것이 자연이다.

초여름의 날씨로 접어든다니 생각이 많아진다. 이렇게 되면 봄도 무르익어야 하는데 무르익는 과정이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철이 뚜렷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늦봄과 늦가을이 거의 생략된다. 봄인가 하면 여름이다. 가을인가 하면 겨울이다. 모든 것은 자연이 정한 과정에 따라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진행이 되지 않으면 자연의 순환에 변화가 생긴다. 자연이 스스로 대처하고 치유하기 위한 방편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상황을 만들지만 만물은 거기에 적응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적응해야 한다. 종의 보존을 위해 대응해야 한다.

지금은 인간이 지구를 자신들의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지구를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허가 해준 신은 없다. 동의 해준 삼라만상도 없다. 인간이 인간의 욕망에 따라 그렇게 쓰고 있을 뿐이다. 지구는 지구에 생존하고 있는 모든 생물들이 자신의 생존에 합당하게 사용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 생존권을 제한하는 종이 인간이란 종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종들만 배려를 한다. 배려하다가도 이용가치가 없으면 방치한다. 그러나 그 배려마저도 속내는 수탈과 약탈, 착취를 위한 것에 가깝다.

신록의 절정을 보며 생각한다. 해마다 봄이 오는 것은 만물의 기운생동을 보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몸의 붉은 피를 푸른피로 바꾸라는 것이 아닐까. 자연은 순환한다.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것이다. 자연에서는 삼라만상이 함께한다. 의지하며 배려하며 항꾸네 살아간다. 자연에는 부족한 것도 지나친 것도 없다. 자연의 안목을 가지고 보면 모두가 자연스런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안목으로 보면 다르다. 저마다 생각과 상황에 따라 판단하기에 지나침과 부족이 생긴다. 봄은 ‘보다’의 명사형이다. 우리가 같은 것을 보아도 결국 저마다 아는 만큼만 본다. 그렇기에 제대로 보기위해서는 안목의 단련이 필요하다. 충전이 필요하다. 안목을 단련하고 충전하기 좋은 때가 바로 봄이다. 하늘이 하는 것은 모두 자연스럽다는 인식을 위해서 삶에 파란만장과 파란중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순리를 알면 순해진다. 이목구비가 순해진다. 그러나 순리대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높고, 깊고, 넓은 안목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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