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대 총선의 특징은 수도권의 새누리 심판과 호남의 더민주 심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수도권에 불어 닥친 새누리 심판 바람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최소 과반의석 확보를 기정사실화했던 정부여당으로서는 말 그대로 패닉에 빠지기에 충분한 결과였다.

경제 성적표는 낙제점인데 반북 분위기를 조성해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총선을 앞두고 선거개입 논란을 낳으면서까지 계속된 대통령의 지방 방문은 불통과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지만 결과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의 불통과 무능력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으로 나타났다. 투표는 정부여당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심판이었고 그 결과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조성됐다. 야당의 분열로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여당은 결국 자기 꾀에 넘어가고 만 것인데 새누리에게 주어진 옵션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과연 두 야당에게 새누리의 설득이 먹힐까 싶은데 어찌됐든 정권말기 대통령의 레임덕은 가속화될 듯 보인다.

새누리가 심판을 당하면서 수도권에서는 예상외로 더민주가 대약진을 펼쳤다. 당초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야권분열로 표 갈림이 예상됐지만 수도권의 유권자들은 전략적 투표에 나섬으로써 투표로 무능한 야권을 통합시켜주었다. 지역구는 더민주에게, 비례대표는 국민의당에게 표를 공평하게 나눠준 것은 두 야당에게 싸우면 공멸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보다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이 그만큼 더 절박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해서 수도권의 야당 표, 특히 더민주를 제1당으로 만들어준 표는 야당에 대한 절대적 지지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철회할 수 있는 한시적 지지임을 보여주었다. 반쪽짜리 지지다.

20대 총선의 더욱 극적인 장면은 호남에서 연출되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어느 정도 예상은 됐지만 더민주가 절멸에 가까운 수치로 초토화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호남에서 나타난 선거결과를 두고 여러 해석들이 오가지만 더민주의 와해를 한두개의 원인으로 환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친노패권에 대한 반발, 반문정서, 호남홀대론, 종편보도의 영향 등등 무수히 열거되는 원인들은 그 하나하나가 지엽적 요소일 뿐이다. 진단은 포괄적으로 나와야 하며 그러므로 해법 또한 총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항간에서는 호남민심이 칼을 빼들어 살짝 보여주기만 해야 하는데 상대를 완전히 베어 죽여버렸다는 조소의 얘기도 나오지만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야당이 보여준 무기력함에 대한 누적된 실망과 좌절이 이번 총선에 반영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정치인 문재인은 비록 현재 대선 여론조사 1위 후보이긴 하지만 모호한 행보보다는 확실하게 한 템포 쉬어가는 전략을 선택해 재신임의 기회를 노리는 게 호남에서 신뢰를 쌓는 길이 될 것이다.

20대 총선 최대 수혜자로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를 뽑는 데 주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국회에서 캐스팅보드 역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수권정당을 목표로 하고 안철수 대표의 최종 목표가 대통령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청와대와 새누리는 후반기 안정된 국정운영을 위해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국민의당의 협조를 얻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호남의원이 다수인 국민의당이 정부여당의 편에 서기는 정서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선명한 야당본색을 보여주기에는 제1당인 더민주의 힘이 버겁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당 안팎에서 야권통합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 것이나 더민주의 예비대선후보와 일대일 구도에서 최종 야권통합 대선후보가 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 안철수 대표로서는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치킨게임에 나설 것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들에게 주입된 학습효과(통합거부)는 더민주를 압박하는 기제로서 일정부분 안철수 대표에게 정치적 자산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나 최종 결과는 속단하기 이르다.

각각 무거운 과제를 떠안고 출발대에 서게 되는 3당이 어떤 모습으로 국회를 운영해나갈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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