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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랗게 파랗게 또는 푸르게 푸르게
최권진주필  |  kjch@hp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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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06  16: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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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걷는 길섶. 이쪽저쪽에서 푸릇푸릇 나오는 새싹들. 가로수 가지마다 조막손을 뻗으며 파릇파릇 나오는 새잎들. 연두의 향연이다. 봄의 연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되어가고 있다. 연두의 물결 앞에 서면 내 몸의 피는 찰랑찰랑 온몸운동을 한다. 내 머리는 비릿비릿한 내음이 진동한다고 예하기관에 긴급전달을 한다. 몸과 마음이 아득해 지는 순간이다.

내가 연두라고 쓰고 있지만 이 색깔 규정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연노랑, 연녹색, 연초록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호출하는 색깔말은 달라도 내가 느끼는 감각은 동일하다. 새봄의 새싹과 새잎이 막 나오는 때의 색감을 온전하게 표현하기에는 내가 가꾸는 언어와 색채감으론 지난한 일이다. 이런 경우에 오롯하게 쓸 말이 없다. 그저 황홀한 색감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봄물이 오른다. 아기가 엄마의 젖을 먹으려고 혀를 내밀 듯이 내미는 새싹과 새잎들. 연두는 아기의 색이다. 녹색의 아기색이다. 나는 파릇파릇한, 푸릇푸릇한 이 색감을 좋아한다.

그래도 나는 파릇파릇한 파랗다와 푸릇푸릇한 푸르다를 딱 구별해서 말하라하면 엉거주춤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파랗다’는 “밝고 선명하게 푸르다”로 풀어놓고 예시는 “파란 하늘”로 들고 있다. ‘푸르다’는 “맑은 하늘이나 깊은 바다의 빛깔과 같다”고 하며 예시는 “푸른 가을 하늘”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의 풀이로 보면 ‘파란하늘’도 맞고 ‘푸른 하늘’도 맞다. 이는 날마다 하늘을 보며 산과 들과 바다를 일상 터전으로 살아온 세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색채구분을 해온 세대에게는 별 거부감이 없다. 청색과 녹색의 모호한 경계가 용인이 되었다. 하지만 크레용과 물감을 사용하며 색채를 구분한 세대가 대세인 지금은 일상생활의 색채감각으로는 구별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4.13 총선이 코앞이다.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다. 현재 선거에 임하는 주요 정당의 색깔을 보면 새누리당은 빨간색, 더불어민주당은 파란색, 국민의당은 녹색, 정의당은 노란색을 쓰고 있다. 새누리당의 빨강과 정의당의 노랑은 구분이 명확하다. 그러나 전통적인 색채감각에서 보면 ‘호남의 적통’을 서로가 자처하며 ‘호남의 맹주’ 자리를 놓고 선거전을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파란색과 국민의 당 녹색은 구분이 모호하다.

구분이 모호한 두 당, 초록은 동색이지만 청록은 동색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당은 호남의 지도 색깔을 자기 당의 색깔로 건곤일색하기 위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파랗게 파랗게, 국민의 당은 푸르게 푸르게 만들고자 한다. 청색과 녹색을 구분하기 위해 사전을 참고하여 내 나름대로 해본 분류는 이렇다. 청색계열 파람류의 형용사는 파르께, 파르대대, 파르댕댕, 파르무레, 파르스레, 파르족족하다 등이다. 녹색계열 푸름류의 형용사는 푸르께, 푸르데데, 푸르뎅뎅, 푸르므레, 푸르스레, 푸르스름, 푸르죽죽, 푸르통통하다 등이다.

우리나라 창작 동요의 효시인 윤극영(1903~1988)이 작사한 <반달>이란 동요의 노랫말을 보면 도입부에 “푸른 하늘 은하수”란 가사가 나온다. 요즘세대의 색감으로 보면 하늘은 `푸른' 것이 아니라 `파란'것이다. 또한 어효선(1925~2004)이 작사한 <파란마음 하얀마음>이란 동요의 노랫말을 보면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가 나온다. 나뭇잎은 `파란'것이 아니라 `푸른'것이다. “산도 들도 나무도 ‘푸른’ 잎으로/‘푸르게 푸르게’ 덮인 속에서”라고 해야 정확한 쓰임이 될 것이다. 건널목에서 하루 종일 기다려도 신호등에 청색은 들어오지 않는다. 녹색이 들어올 뿐이다.

파랗게 파랗게 또는 푸르게 푸르게……. 우리는 청록을 변별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블루오션’이란 말을 쓰지만 그린오션이란 말은 쓰지 않고 있다. ‘녹색산업’이라는 말은 쓰고 있지만 청색산업이란 말은 쓰지 않고 있다. 우리는 산도 `청산'이라고 한다. 녹산이란 말은 없다. 우리세대가 산중에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마음의 산이 `청산'이다. 우리들의 청산에는 공통적으로 오두막 한 채, 책 몇 권, 남새밭이 있다. 이제 나는 이 산을 ‘청산’이라 불러야 할까? ‘녹산’이라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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