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목상고 교장

가르치는 교사와 배우는 학생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지는 교육은 어려운 과정이다. 교과지식과 수업방법에서 전문성이 아무리 뛰어난 교사라도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 모두가 교육과정에서 정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지도하기 어렵다. 모든 학생들은 본성적으로 공부를 잘하고 싶어하지만 학습해야 할 내용이 많아지고 깊이가 더해감에 따라 공부를 잘하기란 점차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기 위해 국가수준에서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고, 사회의 발전에 따라 그리고 학생들의 성취수준을 고려하여 정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있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사들은 교수학습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하여 적용하고 또한 개선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과 실천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기에 교육자들은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교육이 어렵지만 우리 선생님들이 잘 가르치고 우리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한 결과 우리나라는 교육의 질적 수준에 있어서 자타가 공인하는 교육선진국이다. 각국의 교육수준에 관한 비교평가로 2000년부터 3년 단위로 실시되고 있는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2009년까지는 핀란드 다음의 2위, 최근 2012년에는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하여 얻어진 명성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질적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자존심의 원천이지만, 정반대로 학생복지 측면에서는 세계 최하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쟁위주의 교육풍토에서 공부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는 학생들을 행복하게 하고자 행복교육을 교육정책의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심지어 공부 스트레스를 학생 자살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이를 실증이라도 하듯 최근 한국 청소년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학교생활 만족도는 세계 최하 수준이라는 복지포럼 2월호에 게재된 연구 결과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 연구는 유엔아동기금(UNICEF)이 2009년에 29개 부유한 국가의 11세-15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주관적 웰빙 수준과 동일한 척도를 이용하여 2013년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국내 9세-17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아동종합실태조사의 주관적 웰빙 수준을 비교한 것이다. 연구자는 아동복지 전문가 입장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높은 학업 스트레스와 낮은 학교생활 만족도를 개선하기 위해 수업부담 경감, 예체능 수업 확대, 자유학기제 도입, 여가인프라 구축 및 여가시간 확대 등을 정책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근 도입된 몇가지 교육정책들에서 이미 학업 스트레스를 줄이고 학교생활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들이 시행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이러한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 정책들에 대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교육적 측면에서 찬반 논쟁도 나타나고 있다. 초등학교 단계에서 적용된 사례만을 보더라도 일제고사 폐지, 한자병기 도입 반대 등을 들 수 있다.

모든 학생들의 기초학력 보장을 교육정책의 책무로 여겨 2008년부터 초등 6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는 2013년에 폐지되었다. 평가로 인한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 아동들의 교육 행복지수를 높이겠다는 대통령 선거 교육공약의 하나로 채택되었던 만큼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교육의 질적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니까 이제는 아동들이 편하게 공부하게 하고 대신 인성과 창의성 신장에 더 관심을 쏟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폐지 1년도 지나지 않아 교육연구자들은 물론 학교현장의 교육담당자들로부터 초등학생 학력진단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교육부는 금년 3월에 전국단위 진단평가 방식으로 재추진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교육계 내부에서 교육단체 간 찬반 논쟁이 치열했다.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 방안 도입 문제는 교육계는 물론 사회적인 관심거리가 되었으며 그 논쟁의 강도가 점차 더 심해지고 있다. 교육부는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한자를 제시하여 배우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어휘력과 문맥 이해도를 향상시키겠다고 밝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학년이 올라 갈수록 교과서 용어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학생들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찬성 측에서는 한자교육을 통하여 자기주도 학습력 향상은 물론 인성교육 효과도 얻을 수 있고, 이미 팽배해 있는 한자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환영하고 있다.

반면, 초등 한자교육 반대 측에서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가중되고 한자 사교육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며, 이는 나아가 아동들의 행복지수가 낮아질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PISA 결과를 예로 들어 현재의 한글 전용 교과서로 공부하더라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학력을 유지하고 있어서 초등 교과서 한자 도입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교육의 현안이라 할 수 있는 일제고사와 한자병기 관련 논쟁은 각각 교육평가 관점이나 언어교육 관점의 차이가 아니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진다. 한 편은 아동 시기에 좀 힘들더라도 진단평가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고 한자도 잘 배우게 하자고 주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점차 어휘력과 자기주도 학습력이 향상되어 상위단계 학습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되고 나아가 교육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관점이다.

다른 한 편은 우리나라의 학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 확인된 만큼 이제는 아동의 교육복지 증진에 보다 관심을 두어 아동시기에는 평가나 한자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없이 편하고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두 관점의 차이는 아동시기에 편하게 공부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좀 힘들더라도 제대로 공부시키는 것이 좋을까로 대비된다. 두 관점에 대하여 바람직한 것은 아동기라는 특정 시기에 나타나는 효과를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초・중・고 교육 전체, 나아가 평생교육 전반을 놓고 더 나은 것을 선택할 것인가의 차이다.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초등학교 시기에 학력수준을 진단하여 보충해줄 수 있는 평가체제가 필요하고, 학습용어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적당 수준의 한자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초・중학교 단계에서 쉽게 공부한 결과로 기본학력이 부족하고 공부재미를 느끼지 못할뿐더러 사전 등을 활용한 자기주도 학습력을 갖추지 못해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이 안타깝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행복교육을 기치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초 6학년 대상 폐지, 동 평가에서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응시과목수 축소, 중학교 자유학기제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등교시간을 9시로 늦추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은 본질적으로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인정하여 학생복지 측면에서 너무 쉽고 자유로운 교육만을 강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계 최상위 수준의 한국교육은 앞으로도 우리의 자존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쉽게만 공부하도록 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어려운 것도 인내심을 갖고 해결해 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면 더 좋겠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공부에서 스트레스를 찾기보다 배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가르쳐야 하고, 공부가 성취감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가르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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