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는 ‘풀님’입니다.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왜 없겠습니까 만, 아름다운 지구별이 초록녹색인 것은 아마도 ‘풀님’ 들이 계셔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서, 또 산과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수많은 꽃 되고 씨앗 맺는 ‘풀님’ 들의 아름다움에 반해 제가 감히 아내에게 모셔준 이름입니다.

‘풀님’ 하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불러 보면 픗픗하고 싱그럽고 상쾌한 느낌이 온 가슴으로 전해져오고, 어딘지 모르는 살픗한 떨림(운율, 가락)이 느껴져 오지 않습니까? 이렇듯 ‘풀님’ 은 제 아내이자 벗님입니다.
‘풀님’으로 모시는 제 아내 이야기를 한 까닭은 아내자랑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농사에서도 ‘풀님’이 아내이며 벗님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제 농사에서 ‘풀님’은 농작물의 아내이며 벗님 이십니다 벼님,

밀님 보리님 콩님 옥수수님 고추님 배추님 호박님 가지님 토란님 수수님 등의 아내이며 벗님이시지요. 세상에서는 ‘풀님’을 웬수(원수)로 보고 있더군요. 아내이자 벗님이 아닌 웬수, 보기만 해도 진 저리 나는 웬수로 보고 그 웬수를 없애기 위해 눈만 뜨면 호미로 뽑고 로타리치고 비닐벌칭을 하고, 독하디 독한 제초제를 뿌려대더군요.

호미로 뽑는 것이야 워낙 소박한 제초작업이니까 말해 무엇하겠습니까만, 로타리 치는 것 비닐벌칭하는 것 더구나 농약통을 짊어지고 봄부터 늦여름 또는 초가을까지 뿌려대는 제초제에 이르러서는 ‘풀님’을 웬수로 보는 가장 적나라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과연 사람이 ‘풀님’을 이길 수 있을까요? 저는 절 때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길 수도 없앨 수도 없는 풀님을 한사코 없애 버릴려고 하는 농사에는 사물을 둘로 나누어 보는 생각(이분법적사고)이 밑바탕에 알게 모르게 철저히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눌 수 없는 것을 쪼개고 나누다보니 한쪽은 사랑하고 또 그 한쪽을 미워하는 삶의 틀이 만들어 질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농부가 농작물을 사랑하면 반대로 농작물의 자람과 열매 맺음을 방해하며 거름기(비료)를 빼앗아가는 잡초는 미움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농작물은 늘 보살펴주고 가꾸어주는 사랑의 대상이 되고 잡초는 당연히 제거되고 없애야 되는 미움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삶의 틀 속에서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것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잡초를 없애는 방법, 즉 화학적으로 독하게 만들어진 농약이 필요하게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농약회사는 농부의 삶과 생각을 끊임없이 대자연속에서 쪼개고 나누어지도록 충동질하고, 그 바탕위에서 농약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농사틀을 만들고,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농약을 끊임없이 파는 것이지요.

농사 박사를 농약 박사로 만드는 것이 농약회사나 거대자본의....
사훈! 이러면 너무 지나친 말이 될까요. 이야기가 곁길로 흘렀내요. 저는 잡초(雜草)라는 말뜻(개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잡(雜)자(字)가 어떤 것을 깔보고 낮추고 업신여기는 뜻이 아니라 여러 가지, 틀리게 보이는 것, 또는 섞임과 어울림(조화)이라고 본다면 굳이 마다할 까닭이 없겠습니다만, 저는 세상에서 쓰는 잡놈, 잡년, 잡새끼, 잡목(雜木), 잡초(雜草)등의 깔보고 낮추고 업신여기는 뜻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는 말입니다 그래서 ‘풀님’이라고 부릅니다.

산풀, 강풀, 들풀, 아생초, 잡초들 어떤 이름도 다 좋습니다만, 저는 그 모든 것의 모둠 꼴로서 ‘풀님’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말씀이지요.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농작물(農作物)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은 모두 풀님이 아니겠습니까?

‘풀님’ 이라고 ‘온통’ 으로 보아 버리면 무엇이 농작물이고 무엇이 해롭고 쓸데없는 잡초(雜草)가 되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원래 잡초는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요즘 사람의 실용성이나 이익에 따라 잡초라는 것을 효소 만들고, 반찬 만들어 먹고, 쌈 싸먹을 수 있고 어찌고 하니까 잡초는 없다고 하는데, 제 이야기는 그런 실용성이나 이익이 들어가 있지 않는 원래의 ‘풀님’ 세계에는 농작물이니 잡초니 하는 것이 애시 당초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잣대로 보는 쓸모있음(流用)과 쓸모없음(無用)이 풀님 세계에 는 본래부터 계시지 않았다는 말씀이지요.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설사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지라도 제 삶의 철학, 농사에 대한 가치관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확실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제 농사와 삶에서 풀님은 아내이자 벗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늘 노력하고 애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풀님농사’를 하는가? 그렇습니다. 제 농사는 ‘풀님농사’입니다. 예전에 동네 어르신께서 “‘허허’ 자네 인자본께 풀 농새지었등만!” 하셨는데, 정말 딱 맞는 말씀이셨지요.

밭농사를 예로 들러 보겠습니다. 씨(앗)를 심기 앞서 씨 심을 자리에 있는 풀을 밑둥까지 싹싹 잘 베어 그 자리에 골고루 깔아 줍니다. 모자라면 다른 곳에 있는 풀을 베어서 깔라주면 됩니다.

맨 흙이 안 보이도록 두툼하게 깔아주고 (씨앗의 종류에 따라 얇게 깔 수도 있고 두텁게 깔 수도 있습니다만, 대체로 두텁게 골고루 깔아주면 됩니다) 줄 맞춰 심습니다.

씨앗 싹과 풀이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낫으로 벨 수 있는 길이가 되면 풀을 베어 그 자리에 깔아 줍니다. 한꺼번에 베어 줄 수도 있지만, 한 고랑 베어주고 건너뛰어 그다음 고랑 베어주고, 조금 있다가 베지 않은 고랑 풀 베어서 깔아주고, 저는 이방식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두세번 하면 그해 밭농사는 끝납니다. 정말 간단하지요? 아무리 베어도 끊임없이 올라오는 풀님이야말로 무한한 자연의 비료, 자연의 선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 농사는 ‘풀님농사’랍니다. 하하하!!!

아름다우신 풀님 당신이 계셔 지구별이 초록이고 녹색입니다.
고마우신 풀님 당신이 계셔 밀님, 보리님, 호박님, 수수님, 고추님,
배추님, 모든님이 거름삼고 벗님삼아 해충에도 쓰러지지 않고 잘도 크십니다.

보금자리 풀님 당신이 계셔 온갖 벌레님들 기고 날고
숨으며 짝짓기, 술래잡기, 소꼽장난 하십니다.
아내여, 벗님이여, 어머니여!
당신의 이름 ‘풀님’ 이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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