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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길 위의 시체… 생과 사를 생각하다.
윤재훈/시인  |  webmaster@n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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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9.04  15: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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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을 지나 강원도 홍천까지

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릴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 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릴 들으려 했오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때 우리 이젠 새벽 강을 보러 떠나요
과거로 되돌아가듯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처음처럼 신선한 새벽이 있오
흘러가도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 거요

-정태춘, 북한강에서

북한강을 머리맡에 두고 4시쯤 잠을 깼다. 일인용 텐트 안은 너무나 비좁았다. 어디 줄 하나 걸 때가 없어 느슨하게 쳐진 텐트는 지붕이 반쯤 접혀져 한없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몸에서는 한기(寒氣)가 들었다. 아직까지 땅에서 올라오는 지기(地氣)는 무작정 나선 혈기(血氣)를 싸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뒤척이다가 더는 누워있지 못하고 5시경에 일어났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운동을 하고, 북한강의 한기가 안개와 섞여 싸하게 밀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갈대밭인가 녹색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일단 추위를 가실 요량으로 라면을 끊이는데, 새벽 운동 나온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고 간다. 무에 이리 일찍 길을 떠났느냐고, 아직 여름도 멀었는데 벌써 캠핑을 왔느냐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수런거리는 갈대밭 옆에서, 어젯밤 남은 김밥 하나와 찐빵 한 개, 라면으로 허겁지겁 허기를 때웠다.

흘러가는 새벽강이 평화롭게 보였다. 그 강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으니 노자의 <도덕경>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맞아 도올 선생이 목소리를 높였던 그 상선약수

이 세상 모든 실개천들이 모여서 커다란 대해를 이루는 물, 그 물의 출신은 고귀하다. 하늘에서 생겨 떨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출신이나 고향을 내세워 다투거나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가장 낮은 데로 임한다. 이 세상 모든 더러운 것을 자기 몸으로 다 씻고 내려가면서도 결코 불평한다거나, 자기 공을 알아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철저하게 음덕(陰德)을 쌓는 것이다.

그러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나무뿌리들 아래 에서는 잠깐 쉬었다 가기도 한다. 산모롱이를 돌아갈 때는 느긋하게 그 몸을 휘어 서편제 가락으로 돌아가고, 동네 아이들을 만나며 그 몸도 한 번 부드럽게 만져주고 간다. 일에 지친 농부의 발가락도 살짝 한 번 간질이고 동네 숲을 만드는 당산 나무의 뿌리도 촉촉하게 적시고 간다.

그러다 대양(大洋)을 만나면 자기의 출신과 학벌을 따지지 않고 사해(四海) 속에서 하나의 동포가 된다. 자기의 “에고(ego)”를 철저하게 깨부수는 것이다. 동그란 그릇에 담기면 동그란 물, 네모 그릇에 담기면 네모 물.

휴대폰을 켜니 7시 30분이다. 자 이제 출발이다. 한참을 강을 끼고 달리니 정말 좋았다. 재작년에 한강 1300리를 도보로 걸었는데 그 때 생각이 났다. 그 때는 이 길이 아닌 저 위에 찻길로 지나간 것 같았다. 그때 길 가에서 개복숭아를 따 먹고, 하수오(何首烏)를 불어 날리던 기억이 생생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곳, 두물머리

한참을 달리니 그 아름답던 강길은 이제 없어지고 생존경쟁의 국도와 몸을 합치고 있었다. 팔당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에서 얼마 가지 않으면 양수리(兩水里)가 있다. 두 물줄기가 합쳐져 하나의 몸이 되는 곳, 하나는 금강산에서 시작하여 휴전선 밑을 지나온 북한강이고, 또 하나는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흘러온 남한강이다. 그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진다고 하여 두물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강(漢江, 一江))이 된다.

나는 이 년 전에 그 남한강 길을 따라 1300리를 걸었다. 이 두물머리는 TV 드라마나 영화에도 많이 등장했으면, 갓 결혼한 신랑 신부들도 사진을 찍기 위해서 많이 온다. 그 가운데는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 세 그루가 사이좋게 서 있으며 아침 안개가 특히 황홀하다. 그리고 1999년 4월부터는 황포돛단배 2척을 복원시켜 놓아 그 볼거리를 더하고 있다.

이제 찻길로 올라서야 한다. 이제부터는 정말 위험한 길이 될 것이다. 이 길을 도보 여행 할 때도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차들이 쌩쌩거리며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자전거가 휘청거린다. 그런데 산 너머 산이라고 계속해서 터널이 나온다. 터널 안에는 그야말로 약간 있던 갓길마저 없었다. 그 안에서 차들이 굉음을 내면서 따라오는 소리는 정말 섬찟하여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가 두려웠다.

오면서 보았던 갓길에서의 수많은 잠자리, 나비, 산짐승들의 주검들. 얼마 전 일본에서는 자전거 타기로 유명한 80세 먹은 노인이 전국일주를 하다 완주를 눈앞에 두고 그만 터널 안에서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하여 돌아가셨는데, 일본 열도가 시끄럽다고 했다.

계속해서 6개의 터널을 지난 것 같다. 그리고 끝이 잘 보이지 않은 양서대교와 용담대교도 지났다. 그때 뙤약볕 아래에서 한강 일주를 하던 생각이 나 용담대교에서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강을 바라 보았다. 그러자 그때 쓴 <용담대교>라는 시 한 편이 수면 위의 연꽃처럼, 포르릉 솟아 올랐다. 어떤 구도자의 자세를 표현해 보고 싶었는데 늘 생각만이 앞선다.

풍덩,

돌멩이 하나 주워
물 속으로 던진다

수만 년 전
우주의 지각 때,
간신히 물 밖으로 빠져나온
돌일지도 모르는데.

이제 저 돌은,
수만 년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님, 이 지구가 끝나는 날까지
영원히…

먹황새 한 마리                                                                                                                                             
수면을 차고 떠오른다

-용담 대교에서, -죄(罪)

벌써 배가 고프다.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이다. 날씨가 꾸물거리는 것도 어째 신산스럽다. 길가 아래쪽을 보니 버스 정류장이 보여 비도 피하고 밥도 해먹을 요량으로 갔는데, 정류장 아래쪽으로 너무나 바람이 세게 들어와 불을 필 수가 없었다. 다시 짐을 챙겨 굴다리를 끼고 돌아가니 마을이 하나 나온다.

빈집인 듯하여 들어가 보니 텃밭에 할머니 한 분이 동상처럼 엎드려 호미로 뭔가를 꼼지락거리고 있다. 다시 나오면서 보니 거리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고 새로 짓고 있는 건물 한 채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조용하다. 일단은 짐을 풀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벽을 보니 명태가 한 마리 걸려있다.

   
  ▲ 빈집에서   ⓒ 윤재훈
   
누군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들어와 명함을 건넨다. 아마 네가 주인인 줄 알고 명함을 주는 데 보니 문을 달아주는 창호업자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 갔다. 갑자기 집안 소식이 궁금하여 의정부로 전화를 거니 지금 경기도는 비가 오고 있다고 했다. 옆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따뜻한 밥에 소주를 한 잔 먹고 나니 잊혀진 옛 여인처럼 잠이 솔솔 찾아왔다. 비를 피한다는 핑계로 나도 모르게 한숨 꼬박 자고 논을 쳐다보니 이제 막 모내기를 끝낸 논에 작은 물방울들이 일고 있었다. 자전거를 처마 밑에 집어넣고 기다렸지만 금방 날이 갤 것 같지도 않아 출발을 결심했다.

그런데 가방을 만지니 축축했다. 아마 내가 깜박 잔 사이에 소나기라도 내린 모양이었다. 계속 내리는 비의 양도 적고 하여 비옷을 입고 출발했다. 한참 타고 가니 휴게소가 하나 나타났다. 그냥 지나칠 요량으로 가다가 비를 피해야 할 것 같아 핸들을 바꿔 들어가니 <용머리 휴게소>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옆에 주유소가 있어 자전거를 세우고 휴게소 쪽으로 가니 깃발을 안에서 보고 있었는지 매점 아줌마가 금방 나왔다. 그리고 전국일주를 하느냐고 친절하게 다가 오더니, 커피 한 잔 할 거냐고 물었다. 너무 고마워 예, 하고 대답을 하니 금방 가지고 나왔다.

비 오는 휴게소에서 음료수 회사가 준 것 같은 빨간 탁자와 의자에 앉아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면서 차를 마셨다. 아까 매점 안에서 산 과자를 같이 나누어 먹으면서. 한참을 이야기 하고 나니 비가 서서히 개기 시작했다. 주유소에 맡겨둔 자전거를 찾아 다시 안장에 오르니 배가 고파왔다. 자전거 여행은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 아마도 에너지 소비가 그만큼 많은 모양이다.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세상의 번잡스러움을 알다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가 났다. 별일 아니겠지 하고 계속 가는데 그 소리는 여전히 따라왔다. 이상하여 자전거를 세우고 여기저기 확인해 보니짐받이에 실은 자전거 가방이 양쪽으로 쳐져 바퀴에 닳아가고 있었다. 한쪽은 벌써 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찔레꽃 뿌리로 담근 술병도 반쯤 닳아 있었다.

더 이상 가기가 곤란할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니 그 시골 찻길에 애견센터가 있고 포장마차 비슷한 간이매점도 있었다. 그리고 애견센터 옆 공터에는 나무들이 쌓여있었다. 약간 썩었지만 그래도 쓸만한 나무를 골라 톱을 빌리기 위해 애견 센터 마당으로 가니 더 좋은 나무가 있었다.

주인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니 쓰라고 하여 그럴듯하게 안장을 만들고 가방을 실으니 깨끗한 모양이 정말 여행자 자전거 같았다. 배도 고프고 슬슬 막걸리 생각도 간절했다. 옆에 포장마차 같은 곳에 들어가니 할머니 혼자 무엇인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메뉴판을 보니 마땅한 것이 없고 경비도 절감해야 하기 때문에 토스트를 시키려고 하니 2000원이나 되었다. 할머니에게 비싸다고 했더니 그런 소리 처음 들었다고 하면서, 가운데 계란을 넣어 큼직한 토스트를 가지고 나오는데, 과연 2000원을 받을 만했다. 끝까지 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말한 나의 행동을 후회하며 물을 보충하고 출발했다.

이제 길은 강원도로 접어들었다. 갑자기 사위(四圍)가 조용해져 왔다. 경기도 길에서는 그렇게도 복잡하고 시끄럽더니, 주위가 조용해지자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그제야 내 주위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이모니온(daimonion 양심)의 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이 조용해지고 나니 비로소 세상사의 번잡스러움을 알 것 같았다. 길 위 들꽃들도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시멘트 속의 애기똥풀꽃   ⓒ 윤재훈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 위에는 수많은 짐승들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잠자리, 나비, 뱀, 족제비…

   
  ▲ 따뜻한 아스팔트를 찾아나오다가 변을 당한 새끼뱀  ⓒ 윤재훈
   
생명들의 사라짐과 스러짐. 생(生)과 사(死)의 거리가 단 1미터도 되지 않는다. 사람과 다른 뭇 생명들과 공존이 되지 않은 이 문명 속에서는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착각 하면서, 애당초 다른 생명체데 대한 배려는 없다. 그들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그런 생각도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자연을 파괴의 대상으로만 인식할 뿐 그러니 고개를 들어 눈을 둘러보면 곳곳이 얼굴을 찌푸리게 만든다.

드디어 홍천 읍내에 도착했다. 주위는 이미 어둑해져 오고 잠자리 찾는 것이 급했다. 산 밑에 큼직한 주차장이 있어 들어가니 예술회관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차가 한 대 두 대 들어오더니 아주머니들이 급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산 밑쪽에서 자기로 하고 예술회관 안으로 들어가니 합창 연습이 한창이었다. 물을 보충하고 있는데 관리자인 듯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줘서 마시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며 둘째 날의 밤도 깊어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9시가 넘었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주위는 깜깜했고 그런 상황에서 텐트를 치려고 하는데 노끈하나 묶기도 곤란했다. 대충 치고 안으로 들어가 자려고 하니 도저히 비좁아서 잘 수가 없었다.

집에서도 방이 답답해 항상 응접실에서 잤는데 갑자기 처량한 생각까지 몰려와 짐을 꾸렸다. 앞으로는 찜질방에서 자야 할 것 같았다. 강을 건너 시내로 갔다. 슈퍼에 앉아 페트병 맥주 한 병을 다 마셨는데도 속이 가시지 않아 한 병을 더 마시고 홍천 사우나로 갔다. 시골이라 몹시 허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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