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각에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 사퇴에 이어 신재민, 이재훈 장관 후보도 사퇴했다. 야당들이 밝혔듯이 사필귀정이다. 임명을 강행했더라면 우리 사회에 엄청난 고통을 가져올 게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인사 청문회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상류층의 풀어진 도덕성과 미흡한 준법정신에 절망했다. 도덕적인 흠결이 명백한데도 발탁한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사태가 이렇게 된 데 대해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 후보자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구렁이 담 넘어가 듯 한다. 매번 철저한 반성과 사과가 없으니 잘못이 반복된다.

인사는 만사(萬事)다. 회사건 나라건 모든 일의 근본이다. 그러나 잘못하면 인사는 망사(亡事) 된다. 이번 인사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힘들게 쌓아가고 있는 고위공직자의 임용 기준을 허물어뜨리는 망사였다.

우리나라엔 정말 온전한 인물이 없는 것인가? 총리와 장관 임명 때마다 국민들은 ‘사람이 그렇게도 없느냐’고 되묻는다. 인재가 많기로 유명한 대한민국에 왜 사람이 없겠는가. 입맛에 맞춰 고르다보니 온전한 사람이 다 제외된 탓이다.

인사가 망사가 되지 않으려면 인사권자가 확고한 인사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충성 바치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른바 친정체제를 강화하려하려하면 좋은 인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권리는 빠짐없이 챙기면서 책임과 의무는 소홀히 하는 상류층 삶의 방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재산·납세·병역·전과 등 도덕성은 고위공직자 선정의 필요조건이다. 그것이 민심이요 국민의 뜻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성에 하자가 있다면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도덕적 흠결이 감추어져 있을 때는 모르지만 만천하에 드러날 경우에는 피해갈 수가 없다.

그래서 고위공직에 오르려는 사람은 평소부터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자기절제와 희생이 필요하다.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편법과 특권을 누린 자가 장관이아 총리가 되었을 때 하게 될 횡포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중국 역사 속에서 인사와 발탁을 잘해서 성공한 유방의 인사 철학은 배울만하다. 진시황이 죽자 중국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이때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승자가 된다. 사실 유방은 술과 여색을 밝히고 오만하며 약점 투성이 인물이었다. 반면 항우는 젊고 잘생긴데다 무술도 남달랐다. 그런데 유방은 자기의 부족한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항우는 자신이 잘났다고 느껴서 남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방은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를 기용했으나 항우는 초나라 명문 출신으로 신하를 믿지 않았다. 인재들은 하나둘씩 항우의 곁을 떠났다. 결국 능력 있는 인재를 과감히 등용하고 믿고 맡긴 유방이 천하를 얻은 것이다. 일본의 역사소설가인 시바 료타로는 이 같은 유방의 인품을 ‘허(虛)의 인격’이라고 불렀다. 그릇이 비어야 채울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인재 발탁은 춘추시대 제나라의 환공이 관중을 재상에 기용한 것이다. 관중은 환공을 화살로 쏴 죽이려 했던 인물이다. 이런 원수를 재상에 기용한 것이다. 환공은 나중에 관중의 보필 덕에 이른바 춘추오패의 첫 패권을 차지한다. 그는 인재를 알고도 기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패업에 방해가 되며, 기용하고도 소중하게 쓰지 않는 것도 패업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

인사가 만사라는 얘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가. 인재를 발탁하는 인사원칙이나 시스템의 문제 이전에 인사권자의 인사철학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면 사회 발전은 요원하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기용하는 것이 관용이고 포용은 아니다. 그것은 원칙의 무시이고 포기일 뿐이다. 이미 알려진 과오나 흠결을 자의적 판단에 따라 덮으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민선 5기 출범과 함께 새로운 인재를 발탁해 새 진영을 갖추고 있다. 이번 정부 개각에서 보여준 ‘입맛 발탁’이 지방정부에서도 심각하다. 지방자치야말로 걸출한 인재를 제때 발굴해서 적재적소에 기용해야 성공한다. 입맛에 따라 아무나 앉혀놓으면 허송세월한다.

복잡한 21세기는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도지사나 혼자 모든 일을 할 수가 없다. 리더 보다 능력 있고 리더를 대신할 사람이 꼭 필요한 것이다. 자신을 대신할 사람이 누군가, 마음을 비우고 열정을 다해 찾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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