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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차 전국 일주1>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덕소에서 첫날밤을 자다.
윤재훈/시인  |  webmaster@n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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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8.18  15: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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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덕소에서 첫날밤을 자다.

   
 
   
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모르는

그것이 가슴을 뛰게 한다.

어차피 인생이란

'불확실성의 모듬'이 아닌가.

자전거 안장에 가방 하나, 배낭 한 개,

이것이 이번 전국일주의 채비였다. 이제 지도를 따라 무작정 달릴 것이다.

답답한 차안은 싫다.

에어컨 바람은 더욱 싫다.

파란 하늘을 지붕 삼고

대자연을 뜨락 삼아
천하를 주유해 본다.

김삿갓처럼 흥이 도도해진다.

내 삿갓

김병연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 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짐을 싸가지고 내려왔는데, 너무나 무거워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의 여행에서 '짐이 업(業)이 되는 경우' 많았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길 위에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할 요량이었는데, 문득 짐 때문에 고생했던 지리산 종주길이 생각이 났다. 아파트 정자에 앉아 삼분의 일 정도 짐을 빼고 다시 행장을 옭아매었다. 자, 이제 앞만 보고 출발이다.

일요일(5월 13일)이라 중량천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걷거나, 달리는 사람, 인라인이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 낚시꾼들도 무더기 무더기로 앉아있었다. 새까만 물빛 속에 거품을 풀고 흘러가는 강물 저 거품 속에서 잡은 물고기들을 과연 먹을 수 있을는지, 경제의 논리 아래 자연을 잃어버린, 그 나마 빛바랜 자연이라도 누리려고 하는 우리 인간들이 땡볕 아래에서 더욱 측은하게 보였다.

자전거를 대여하는 아주머니가 파이팅을 외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일요일이라 운동하는 사람들도 더욱 많았다. 군데군데 난장에서는 이른 장사꾼들이 나와 뭣인가를 팔고, 벌써 낮술에 취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늦봄의 열기 따라 불쑥불쑥 높아지고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달렸다.

스쳐가는 바람이 너무나 자유로웠다. 도봉구, 창동을 지나 한참을 달리니 중량교가 나왔다.서울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많아진다. 중량교에 오르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서울 시내였다. 그런데 그만 길을 잘못 들었다. 도로 아래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 지붕위로는 비가 세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 판자며 장판들이 얼기설기 놓여있었다. 집이 좁아서인지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이 너저분하게 지붕 위로 올라와 있고, 간혹 에어컨들도 있었다.

무당집의 댓가지에 달린 깃발만이 바람이 부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펄럭거렸다. 주위에 빌딩 숲에 둘러싸여 더욱 초라한 집들. 그 앞으로 흘러간 빛바랜 세월들. 이런 사진들이 나의 피사체로 들기 위해서 일부러 길을 잘못 들었나 잠깐 생각했었다. 한 사내가 비틀거리며 오더니, 몸이 불편한지 길가에 뭔가를 게워내고 지나갔다.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내리막길을 시원스레 내려갔다.

봉고차가 옆으로 지나가면서 아주머니 한 분이 파이팅을 외쳤다. 서울 시내를 벗어나기에는 아직도 한참이 남은 것 같다. 멀리 망우리 고개 팻말이 보였다. 그 고개 밑, 먼 옛날 주막이 있었음직한 슈퍼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 서울의 뒤편 ⓒ 윤재훈
   

주막에서

천상병

골목에서 골목으로
저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 순하기 마련인가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
골목 어귀에서 서툰 걸음인 양
밤은 깊어가는데
할머니 등 뒤에
고향의 뒷산이 솟고
그 산에는
철도 아닌 한겨울의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산 너머
쓸쓸한 성황당 꼭대기,
그 꼭대기 위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기들은 매우 즐거운 모양이다
한없이 즐거운 모양이다.

TV에서는 여수 힛도에 산다는 현장 예술가 최병수씨에 대해서 나왔다. 그가 말하길 꿩 먹고 알 먹으면 멸종이란다. 맞는 말이다.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을 잘 나타내는 말인 것 같아 잠깐 눈길이 갔다.

수많은 차들이 지나가는데 갑자기 허전해져 왔다. 어디 한 군데 마음 둘 데가 없는 듯 망연자실해져 왔다. 작은 은행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니 바람이라도 지나가는 모양이었다. 한 잔술에 취해 들꽃처럼 망연히 지나가는 차들만 바라보았다. 이제는 꽃 다져버린 개나리 줄기가 길가를 따라 길게 늘어져서, 자전거에 내 몸에 감겨왔다.

신록이 짙은 고개를 따라 오르니 여기가 말로만 듣던 망우리 공동묘지인 모양이었다. 이따금 한두 사람이 지나갈 뿐, 거리는 한적하고 조용했다. 한참동안 내리막을 따라 시원하게 달리니 삼거리가 나오고 검문소를 만났다.

왼쪽으로 가면 춘천, 남양주이고, 오른쪽은 양평, 덕소였다. 오른쪽을 따라 달리니 드디어 한강이 보였다. 양정역(국철)에서 길을 물었다. 의정부를 출발해 서울을 지나, 구리, 남양주를 거쳐 왔으니, 벌써 네 개의 시군을 거쳐 온 모양이다. 이제부터는 계속 한강을 끼고 달릴 수 있어 좋았다.

시원한 강바람이 오늘 쌓인 피로를 풀어주었다. 오후에 출발했는데, 벌써 밤이 되어버렸다. 거리가 캄캄하였다. 멀리 허름한 불을 켜놓은 찐빵집 하나가 수줍은 색시처럼 서있었다. 거기에서 약간의 허기를 때우고 물을 보충하고 나니, 바로 옆에 고수부지가 있으니 거기서 자고 가라고 주인 아저씨가 알려주었다.

주유소를 끼고 돌아가니 과연 넓은 공터가 펼쳐졌다. 하나 둘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 중이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덕소'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멀리 아파트 몇 채가 보였다. 여기서 운동하는 분들은 모두 저 마을에 사시는 분들이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8시 45분이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강가에 앉아서 늦은 식사준비를 했다. 그나마 가로등이라도 있어 나그네의 시름을 달래 주었다. 집에서 정성스럽게 싸준 김밥 3줄과 방금 산 진빵으로 요기를 했다. 비닐 속에 든 오징어 볶음은 정말 맛이 있었다. 그 정이 오롯하게 배여 나왔다.

하류 쪽에서는 오늘 무슨 행사가 있는지 계속해서 폭죽이 터졌다.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하게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 같아 자세히 보니 낚시꾼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은 더욱 적막해져 오는데, 나도 그 어둠 속에서 같이 저물고 있었다.



   
  ▲ 밤, 길 위에 서서 ⓒ 윤재훈
   

적막한 바닷가

송수권

더러는 비워놓고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밀물을 쳐보내듯이
갈밭머리 해 어스름녘
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먼 산 바래서서
아, 우리들의 적막한 마음도
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는
또는 바삐바삐 서녘 하늘을 깨워가는
갈바람 소리에
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
마지막 이 바닷가에서
캄캄하게 저물 일이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사람들이 내 자전거에 있는 깃발을 보고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아주머니 두 분이 지나가다가 땅 위에 친 텐트를 보고 춥겠다고 하며 시멘트 위에라도 치라고 했다. 돈 벌러 온 듯한 동남아 외국인 한 사람이 경계 섞인 눈으로 보고 지나갔다.

며칠 전 자전거를 살 때 주인 아저씨(바이크 셀러)가 자전거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 가방 끈에 묶고 잠을 청했다. 휴대폰 시각은 벌써 자정이 훨씬 지나 있었다. 내일 여정에 행복한 꿈을 꾸며 강가의 바람은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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