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253리의 자전거 전국일주<5월 12부터 7. 16일까지, 65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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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의 두 바퀴의 여행'을 시작하며

▲잔차 여정

[약 4253리의 자전거 전국일주] <5월 12부터 7. 16일까지, 65일간>

자연은 길을 거스르지 않고
그 풍경을 따라 길을 낸다.

그러나 인간의 길은,
오직 직선만을 지향한다.

온통 자연에 역행할 뿐이다.
20여 년 이상 녹색의 기운이 좋아 산을 돌아다녔다.

아무리 속상해 있다가도 산의 초입에 들어서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점점 신심이 편안해져 몸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몸이 자연이니 그 품에 안기면 가장 편안해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도 무자비하게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그러다가 한강 1300리를 걸었고, 섬진강 530리도 걸었다.
그러나 길을 걸을수록 마음속의 의문들은 풀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욱 아득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영원히 풀리지 않을 인간 존재에 대한 갈증일 것이다.
나는 바닷가가 고향이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턴가 갑자기 이 땅의 해안가 모습들이 궁금했고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국토 여기저기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과연 우리 국토의 동·서·남해안의 모습은 어떤 것이며, 문화와 풍습 그들의 서정에는 어떤 차이들이 있을까.

그 분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국토의 속살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그 꿈을 꾸었었다.

그러나 그런 여건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여건이 되지는 않았지만 여장을 꾸려 무조건 출발했다.

우리네 삶이 어디 계획한 데로만 살아지는가.

지도책 한 권, 일인용 텐트, 버너와 코펠들을 단단히 뒷짐받이에 묶고, 배낭 하나 매고 아파트를 나섰다.

사람들 몇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갔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대강의 일정은 이러했다.

의정부-설악산 미시령-속초-부산-완도-추자도 일주-제주 일주-완도-강화-의정부.
그리고 약 4253리, 36개의 시·군을 지나 65여일을 무작정 달려왔다.

그 길에서 나는 수많은 들꽃들을 보았으며, 이 국토에 등짝을 붙이고 사는 살가운 이웃들도 수도 없이 만났다.

그리고 한결같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외롭지 않느냐고, 왜 혼자 길을 떠났느냐고…,

배는 고프지 않느냐고 물으며, 국밥을 말아주고, 순대를 썰어 막걸리를 따라주던 재래시장 아줌마. 대게를 삶아주던 풋풋한 아저씨.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20여일 이상 돌·바람·여자를 따라 돌았던 제주도 해변도로의 기억도 내 인생의 여정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기억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섬에 가고 싶다.

낮술을 하다가 점심을 사주시면서, 뒤란으로 돌아가더니 아직 풋기가 가시지 않은 개봉숭아를 검정 비닐 봉투에 싸주시는 할아버지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고, 문을 닫고 나설 때는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그런 인정을 뒤로하고 밤낮으로 그저 페달만 밟았다.

은륜(銀輪)이 돌아갈 때마다 나는 저만큼 가고 있었으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성큼성큼 우리 국토의 흙냄새를 맡으며 집과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달리면 달릴수록 따라오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가는 것 일까?
무엇 때문에 뙈약볕 아래에서 끝임 없이 길 위를 달리는 것일까?

니체는 <길 위에 길이 있다.>고 하였다.
수많은 선인들도 길 위에서 작은 샛길이나마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길 위를 내 땀의 결정으로 달리는 것은, 나에게는 하나의 만행이며, 내 나름의 길 찾기 일지도 모른다.

가끔 그 길 위에서 길을 잃을 때가 많았지만 어차피 우리의 생은 시행착오와 착각의 연속이 아닌가.

저 산줄기를 돌아가면 누구를 만날까?
저 강 끝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그리고 마을 초입, 시멘트 쌓인 골목에도 그 옛날 시골소녀의 웃음처럼 수줍은 꽃들은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이름조차 감히 알 수 없었던 그 많던 들꽃들, 매미 울음소리, 밤새 울어대던 개구리 울음소리.

낮잠처럼 부드럽게 길게 늘어진 들녘에는, 한 마리 학처럼 농부는 뙈약볕 아래에서도 논에 엎드려 있었고, 길게 밭고랑 따라 농부의 아내는 한 마리 오리처럼 엉금엉금 앞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다 지심을 매는 할머니라도 만나면 잠시 조그만 그늘 아래 자전거를 세우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그 분의 얘기를 들었다.

“오늘 내가 이 밭을 다 매고 점심을 먹을 거여.
지가 이기는가 내가 이기는가 한 번 해볼 거여.

작년에도 숨겨 보니까, 저쪽 가로등 아래 있는 것들은 잠을 못자니까 웃자라기만 하던데, 이쪽 것들은 튼실하게 잘 자랐어.”

말 한마디도 정겨워 정이 철철 넘쳐흐르던 사람들,
지나오면서 만났던 이 국토의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달리고 또 달렸다.

   ▲제주 한림 강에서 물놀이 하는 아이들

산 위를 넘어가던 하얀 구름,
벌거숭이가 되어 개울로 뛰어들거나 천렵하던 사람들,

산모롱이 굽은 세월 속에 삭아버린 고목,
모 위를 쓸고 지나가던 달콤한 바람,

벌써 지나온 그 길이 그립다.
스쳐온 사람들이 못내 보고 싶다.

오늘도 그들은 그 길 위에서, 더러는 시장의 좌판에서,
오늘 하루의 삶을 즐겁게 살고 있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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