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였다. 첫 여름방학을 맞아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여름방학을 보람 있고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여름방학 계획표를 짰다. 평소 수학이 약한 점을 고려하여 수학의 복습과 심화학습 계획을 세웠고, 영어는 1학년 단어를 다 외우기로 계획을 세웠으며, 세계문학전집 15권을 읽기로 계획을 세우는 등 욕심을 부렸다.

24시간 시간표를 8절지에 그려서 칸을 나누고 색칠까지 하여 벽에다 붙이고 위에는 ‘정신일도하사불성’이라는 좌우명도 써서 붙여 놓고 여름 방학을 맞았다. 그런데 방학이 시작되는 날, 친구의 놀러가자는 말에 같이 놀면서 하루를 놀아버렸다. 묘하게도 하루를 놀았는데 계획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 하루는 괜찮아’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위로가 되었다.

이튿날은 ‘오늘까지만 놀아야지’하는 엉뚱한 마음이 생기면서 놀고 말았다. 3일째 되는 날은 공부를 계획대로 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오전까지만 놀자’하고, 오전에 놀고 오후부터 공부를 시작하는데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잡념이 생기더니 방학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1주일을 더 놀다가 해도 늦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루다가 방학이 끝나기 3일 전에 숙제를 대충하고 학교에 갔다. 방학 내내 숙제는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도 치밀한 계획을 세웠으나 지키지 못했고, 고3 때는 더 야무진 계획을 세웠으나 실천을 못하고 말았다. 대학 때나 대학원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른다섯 개 정도의 방학을 허송세월로 보내버린 것이다.

나는 지금처럼 하는 방학 숙제를 절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방학숙제가 어린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꼭 해야 한다면 교과서 공부보다는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숙제를 안내하고 싶다. 방학 중에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숙제는 간판 글씨 조사나 상표 모으기 등이 좋을 것 같다. 6학년 담임 때, 충장로에 가서 간판 글씨를 조사하고 상표를 모아 오자는 숙제를 냈더니 아이들이 즐겁게 했던 기억이 새롭다.

다음으로 여행을 권하고 싶다. 우리 남도에는 문화유적도 많고, 가볼만한 곳이 너무 많다. 우리 주위에는 외국으로만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새로운 세계로 영혼을 안내한다.

언어능력이나 정보활용능력, 그리고 평생 독서력을 높이는 과제를 내줄 수 있고, 기초·기본학력 향상을 돕는 숙제를 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한자는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어린이가 하고 싶다고 할 때의 이야기이다.

거듭 말하지만 방학 때만이라도 마음껏 놀게 하자. 숙제를 내주지 말자.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자. 어린이는 놀면서 더 배운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세계적인 인재를 기르려면 외우기도 중요하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된다는 것도 알아두자. 우리 조상들은 서당에서 3년 만에 시를 읊었다.

어린이는 2천 번을 실패한 후에야 일어선다고 한다. 어느 한 분야에서 제일이 되려면 최소 7천 5백 시간이나 1만 시간을 연습해야 된다고 한다. 김연아는 그냥 된 것이 아니라 다섯 살 때부터 연습한 결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 거저 되는 것은 더욱 없다. 차분히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동안 교육개혁을 하면서 지속적이지 못했거나 실패한 것들도 있었다. 그것은 성공으로 가기 위한 과정의 한 부분이었다. 국가의 시책을 수용하고 실천하면서 문제점을 스스로 해결해 가는 어른스러움도 보여주자. 외신에 의하면 프랑스는 350억유로 규모의 공공투자 정책을 발표했는데 110억유로를 투자해 5-10개 세계 수준대학을 육성하고, 7억 5000만유로를 들여 문화자산 디지털화 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국립도서관이 예산지원의 대가로 독점적 유통권을 넘겨주는 방안이 구글사와 협상 중이었는데 국부의 유출을 우려한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부럽기는 하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 미래지향적 새 교육과정을 만들고 우수 교원을 양성하여 세계 제일의 어린이를 기를 수 있다. 그러기 위하여 지겨운 문제풀이식 숙제 없이 방학을 어떻게 보람 있고 알차게 보내게 할 수 있을까부터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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