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잠실체육관에서 태비태권도 세계대회가 열렸다. 태비태권도 창안자인 김현태 사범이 월야중 동창이라서 몇 명이 방문하였다. 엄청난 규모의 대회를 본 후 감동을 안고 양평계곡으로 몰려갔다. 정부진 동창이 북한강 바라보이는 곳에 널따란 별장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열심히 살아온 친구들인지라 떠들썩함 속에서 비워낸 소주가 거의 단 맛이었다.

문득 지척거리에 김주필 박사 거미 박물관이 있었다. 1994년에 거미를 관찰하면서 연구소에서 같이 지내며 휴전선 인근 연천에 갔었다. 물속에 살면서도 배에 물이 묻으면 죽어버리는 놈! '물거미'를 채집하러. 지금은 거미박물관으로 세계의 온갖 기행 보화를 수집해 놓은 자연사 박물관이 되어있었다. 70이 넘은 김주필 박사께 인사를 드렸는데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한눈에 서로를 기억해냈다.

그 15년 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물속에 살면서도 몸에 물이 묻으면 죽어버리는 생물이 있어요. 뭘까?"
"물귀신이요!"
"까르르!"
"생물이라 했는데 장난 안하기!"
"물고기인가요?"
"음, 물고기는 아니고, 뭘로 둘러 싸여 있는데…"
"공기방울로 둘러싸 있는 거 혹시 물거미 아니어요?"
"오, 대단해! 물거미 맞아. 어떻게 알았지?"
"책에서 보았어요."

그렇다. 지금은 어린이 잡지에 소개되어 알고 있는 애들이 있는 것이다.
‘물거미’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때가 1994년이었다. 한 사진작가가 강원도 연천 민통선 군사지역 늪에서갈잎 끝에 올라와 있는 거미를 보고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그 거미가 물속으로 ‘퐁’ 미끄러지더라는 것이다.

끈질기게 기다리며 조사해보니 물속에 살고 있음이 확실했고, 자료를 더 찾아보니 ‘물거미’임을 알게 되었다. 지구상에 오직 한 종만이 존재하는 ‘물거미’는 그보다 먼저 일본에서 발견되었다.

수소문 끝에 연천에 갈 기회를 가졌다. 민통선 가까이 물거미가 있다는 곳에 가니 전쟁 시 포탄에 패인 웅덩이가 곳곳에 있고, 그 사이로 맑은 물이 군데군데 흐르고 있었다.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는 지대였다. 뜰채로 바닥을 긁어 어렵사리 몇 마리를 포획하였다. 애지중지 다섯 마리를 분양받아서 수족관에 넣어 길렀다.

수족관의 형광등 불빛 옆에 먹이통을 두면 초파리가 날아들어 먹이가 되 주었다. 공기방울을 만들어 물풀에 묶어두고 그 안을 들락거리며 생활하는 신기한 모습을 보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고, 생명의 경이로움을 대하는 처연한 아름다움이기도 했다.

그런데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사고를 쳤다.
근무자가 혼자인 섬 분교인지라 뱃길이 막힌 날, 아이들이 물거미를 뜰채로 건져내어 물속에 떨어뜨리는 장난을 친 것이다. 물거미는 먹이를 잡으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물에 들어가는 순간 몸에 난 털 주위에 하얀 기포가 만들어지며 공기방울을 안고 들어간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꾸만 물속에 떨어뜨리니 자세를 잡지 못한 채 떨어지며 호흡기관이 있는 배꼽에 물이 닿게 되어 질식하고 만 것이다.

다시 민통선 안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남쪽지방에서 물거미를 찾아보고자 했다.
물 맑은 화순, 곡성, 보성강 일대 뿐만 아니라 고향 마을인 예덕리 마분정 저수지로부터 무봉제와 지금의 상무대 보트장 인근까지 온통 뒤져보았다.

그러나 천적이라 할 물고기가 살지 않으며, 깊지 않아야 되고, 맑은 물이 사철 스미는 채, 수초가 알맞은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물이 맑으면 산간 저수지 깊은 곳이고, 늪지대인가 싶으면 축산 폐수 흘러들어 악취가 나고, 물이 알맞다 싶으면 농사지대이고…

아이들에게 낚시터에 따라가거나 들에 가면 관심을 가져보라 했더니 물거미를 잡아 오겠다고 물가에 나가기도 해서 위험하기도 하고, 어떤 애는 기어이 물 논에 사는 늑대거미를 잡아와서는 물속에 있는 놈을 잡아왔다고 우기고는 해서 아예 물거미를 잡아보라는 말은 거두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언젠가는 또 다시 잡아다 길러보겠다고 마음 깊숙이 꿈처럼 간직하고 있는 ‘물거미’란 녀석이 서식지의 변화로 인해 살아 남아있을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세계 유일의 단 한 종인 물거미를 비롯한 희귀생물들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일은 미래의 꿈을 가꾸는 일이다.

아이들의 긴 이야기를 쓰는 까닭은 함평의 환경이 농약을 치지 않는 농법으로 하루가 다르게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음이 자랑스러워서다. 사라져 가는 희귀한 생명체들이 청정지역 함평 곳곳에서 살아 있음을 지켜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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