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국상을 두 차례나 치렀다. 옛 선비들 같으면 웬 변고냐고 머리를 풀고 미음을 끊을 일이지만, 21세기 한국의 정가는 서거정국 이후의 계산에 벌써부터 분주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워낙 외길 코드를 지닌 분이었기에 서거 이후의 정치 방정식도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아직은 그 가능성이 반반이긴 하지만, 친노 신당 창당쪽으로 쉽게 가닥이 잡혔다.

그러나 DJ의 경우는 좀 복잡하다. 매사에 신중하던 그분의 캐릭터가 서거 정국 이후의 변화 국면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여러 가지 셈법이 동원되고 있다. 우선 여당은 화합 유훈을 강조하고 있다. 장외에 나가있는 야당이 속히 국회로 돌아와 대화정치에 나서라는 것이 DJ의 메시지라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DJ 앞에는 꼭 의회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까닭이다.

야당인 민주당은 포스트 DJ 국면에 깊은 관심이 있어 보인다. DJ를 국부로 여길 정도로 당의 큰 바위 얼굴이자 대 주주였으니 당연한 이치다. 그 지분을 누가 물려받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DJ가 빠져나간 공백부터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빈자리에 이 공백이 겹쳐 민주당은 지금 아노미 상태나 다를 바가 없다.

지역 정가도 고심 중이다. 특히 DJ의 그늘에 놓여있던 호남 정가는 그 고민이 자못 심각하다. 무엇보다 누가 과연 포스트 DJ의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말들이 분분하다.

최근 미국의 네셔널프레스 클럽(NPC)은 DJ서거로 무산된 대표연설을 정동영 의원에게 대신하게 함으로써 일단 DY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그러나 DY는 지금 무소속 신분이다. 민주당에서도 쉽게 복당을 허용할 기미가 아니다. 이런 판에 DY가 제도권 정치 속에서 포스트 DJ의 신분으로 떠오르기에는 걸림돌이 수두룩하다.

시선을 민주당 내로 옮겨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뚜렷한 주자가 없다. 이렇다보니 며칠 전 민주당의 박주선 최고위원은 ‘포스트 DJ는 민주당이다’는 집단 계승론을 폈다. 논리는 그럴 듯 하지만 ‘내가 아닐 바에야 너도 아니다’는 으름장에 다를 바 없다.

그래도 민주당은 DJ 서거정국의 정치적 수혜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안간 힘을 다 하는 모습이다. 얼마 전에는 민주당의 주류 핵심 의원들이 DJ 생가가 있는 하의도를 방문해 유훈 실천을 다짐했다. 먼 곳까지 발품을 판 정성이 갸륵하지만 왠지 가벼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무슨 이벤트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 정신을 계승하자는 일에 굳이 생가 체험여행까지 해야 할 일인가.

민주당은 매 국면마다 이런 식으로 쓸데없는 일에 전력을 소비한다. 목소리만 높이지 의제 선점에도 실패하고, 대안도 창출하지 못한 채 그때마다 손에 쥐는 것이 없다. 용산참사, 미디어법 등등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마무리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여권의 잡은 실정에 전직 두 대통령의 서거 등 호기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20%대 초반에 묶여있다.

소수여당이라는 핑계를 대지만 DJ가 평민당을 이끌던 시절을 떠올려보라. 호남에 갇힌 소수 야당이었지만 얼마나 당당하게 정국을 주도해갔었는가. 획기적인 체질 개선이 없다면 민주당은 이처럼 지리멸렬한 상황이 계속돼 정권탈환은 요원한 꿈이 될 가능성이 짙다. 포스트 DJ가 참으로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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