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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정체성의 실체는?
윤승병 논설위원  |  webmaster@n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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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8.07  15: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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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다시한번 건강한 중도 실용의 통합적 소신을 강조했다. 새로운 시대로 가야 할 시점에서 끝없이 국민들끼리의 투쟁으로 소요와 혼란은 안된다는 것일테고 이제는 대통령으로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따라서 “중도 강화”는 그냥 붙여본 또 하나의 상표명이나 다름없을 정치적 슬로건일지도 모른다.

남,남(南,南)갈등이 더 나쁘다는 지적을 했다. 동감한다. 그렇다면 말로만 하지 말고 무엇보다 당,정,청이 분열을 획책하는 자들과의 고리를 끊는 것부터 필요하다. 냉전체제는 이미 허물어졌고 이제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러시아나 중국까지도 국민의 생활과 국익을 위해 자유 시장경제적으로 개방 된 시대에 낡아빠진 망상속의 좌익이고 우익이고의 개념보다는 그들은 현실 이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도론이란 극좌도 안 되고 극우도 안 된다는 의미의 매우 타협적이고도 실용적인 노선이다. 합리적이고 민생 우선적이면 되는 것이지 정부정책에는 좌도 우도 없다는 설명이다. 안보위협과 경제불황, 미래불확실성에 시달리는 현시점의 국민에게 중도론은 매우 불안정한 노선이며 어필하지 못하는 노선이다. 나의 중도와 너의 중도가 다르며 중도노선에 바탕해서는 미래의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간 MB정권이 탄생한 이후 표방해온 정책노선 용어들을 보면 유사한 점이 있다. 통치의 이념이나 가치관, 철학, 역사관과 같은 추상적인 리더십 개념에는 별 흥미가 없어 보인다. 그는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표를 모으는 정치를 해본 경험이 많지 않다. 이러한 엘리트 CEO 대통령의 약점은 바로 정권 정체성의 결여로 나타나기 쉽다.

왜 정권은 확실한 정체성을 필요로 하는가?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들은 장기적으로는 하나의 중심축을 기반으로 움직여야 파워를 발휘하며 예측이 가능하다. 확실한 비전이란 바로 정체성의 결정체이다. 모든 정책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고 명분과 가치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이 수많은 정책을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는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힘이 바로 정체성이다. 좋은 정체성은 대통령과 집권세력들을 더 편하게 하며 더 당당하게 만든다. 그들의 잠재력을 통제하지 않고 해방시킨다. 좋은 정체성은 새롭게 창조되어야 하며 양분 선상에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정체성은 가치관과 의지, 가능성 극대화의 문제가 결부된다. 모든 조직체도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하며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정권에 있어 이 정체성 문제는 바로 리더-대통령의 문제로 직결된다. 정권 정체성의 정점에는 최후의 책임자, 대통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로지 대통령의 몫이다.

과거는 추억의 서랍속에 넣고 닫아 둘 필요가 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혹은 누군가의 사주에 속아 넘어가서 과거의 이념적 기억을 시도때도 없이 꺼집어 내어 그 낡아빠진 틀 속에 오늘의 모든 걸 입맛대로 다 구겨 집어 넣고자 아우성 쳐 대는 행위는, 과거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빙의(憑依)라도 된 유령들이나, 아니면 나이와 상관없이 하루라도 투쟁하지 않으면 금단현상으로 견딜 수 없는 병적인 분열주의자들의 퇴행증상 일 수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굳이 명명한다면 글로벌리즘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수출 중심 경제성장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내수 기반 확충이 강조되는데 그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등, 형평, 위화감, 부자와 서민’ 같은 이념적이거나 갈등지향적인 인식이 이런 신성장동력의 창출과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이 숙제야말로 좌우 이념의 잣대를 넘어서서 대통령이 강조한 중도실용 차원에서 풀어야 할 일이지만 정부 안에서조차 정책 컨센서스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서민과 약자를 위하는 길은 이들에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와 힘을 주는 데 있다. 경쟁원리 자체를 왜곡하거나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는 어떤 정부도 이들의 밝은 장래를 보장할 수 없다. 생의 한 가운데에서 심장이 힘차게 뛰고 살아있는 자들은 음습한 과거로가 아니라 새로운 날을 향해 앞으로 가야 한다. 세상은 이미 그렇게 달려가고 있다.

크고 강한 쪽을 눌러 작고 약한 쪽의 마음을 사려는 '수(數)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으로는 나라 전체의 파이를 키우기 어렵고, 오히려 지속 가능한 발전동력을 약화시키기 쉽다. 그 결과로 더 고통 받을 쪽이 누군지는 자명하다.

MB 정부는 출범 때 '선진 일류국가'를 국가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구체화할 5대 국정지표에 '활기찬 시장경제'와 '인재대국'을 포함시켰다. 요즘의 여러 정책 행보가 과연 이에 부합하는지, 청와대부터 성찰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통령이 강조한 '근원적 처방'은 어디까지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안에서 나와야 성공하는 대통령으로 국민과 정부가 함께 웃을 수 있고 박수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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