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만고불변 진리를 새삼스레 국가인권위 위원장이 나서 강조해야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안경환 위원장이 임기 전 사퇴하는 자리에서 참다못해 토해내듯 한 고언(苦言)이다. 어떻게 그런 지경이 되었을까를 뒤돌아 본다.

이명박정부 들어서며 목 조르기를 당하기 시작한 게 인권위다. 독립기구인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 했던 인수위 시절은 그렇다 치자. 정부의 공권력 남용에 대한 인권위의 감시는 기본활동 중의 하나다. 그런 활동 때문에 정권의 눈 밖에 났다는 것부터가 비상식적이다. 인권위의 조직을 축소하라는 정부의 일방적 결정은 탈법적이다.

인권위원장이 지난 3월30일 헌법재판소에 대통령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청구를 했다. 행정안전부의 인권위 조직축소 안이 인권위의 독립적 업무권한을 침해했다는 게 그 이유다. 인권위의 위기감과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가의 가치브랜드가 돼야할 인권위의 참담한 모습이다. 이런 인권위 위상이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쳐질지는 자명하다.

“인권이란 이념적 좌도 우도 아니고, 정치적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일용할 양식인 인류보편의 가치라는 믿음을 안고 살았다”고 안위원장은 이임사를 통해 강조했다. 이어 “적어도 인권에 관한한 이 정부는 의제와 의지가 부족하고, 소통의 자세나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유엔총회가 결의를 통해 채택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과 운영의 원칙을 존중하고 국제사회의 우려에 경청하시기 바란다”고도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단 한 차례도 업무 보고를 하지 못했다는 대목에서는 과연 소통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케 한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중도 실용’과 ‘친(親)서민’을 듣는 것은 어찌 됐든 다행스럽다. ‘근원적 처방의 일환’으로 대통령이 재산기부 약속을 이행한 것도 뒤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이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방향타에 대해 평가가 엇갈린다.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담론적 논쟁보다는 실질적 내용이다.

인권위 문제를 그 예로 거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권위 활동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중도 실용의 정신을 해치는 일이다. 또 약자들에 대한 인권보호야말로 친서민의 출발점이다. 인권위가 국민의 기본권을 강조하는데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국민을 섬기는’ 정치가 곧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직자의 처신은 어때야 하는가? 청렴과 도덕성이 먼저인가, 능력이 우선인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 양식이 수용할 수 있는 그 실용적 기준은 무엇인가? 우매(愚昧)한 질문이지만, 명쾌하게 정리되기 어려운 문제인 것 또한 오늘의 현실이다.

현재 우리 사회갈등의 현장에서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는 현상 중의 하나가 기본권 문제이다. 촛불로 일컬어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갈등과 상처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법치주의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시민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국제인권위원회가 촛불에 대한 경찰의 마구잡이 진압을 우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법권 독립문제를 야기한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사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사법부를 둘러싸고 어떻게 권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법조인들은 물론 사회의 지탄에도 신대법관의 사퇴문제는 오리무중이다. 검찰에 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게 됐다.

대통령이 인사쇄신책으로 내놓은 검찰총장 후보자가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도 소위 ‘스폰서 문화’라는 요지경 세상을 드러낸 결과였다. 단순한 도덕성 문제가 아닌 뿌리 깊은 뇌물의 먹이사슬에 얽힌 의혹을 확인케 했다. 위장전입과 증여세법 위반 등의 실정법 위반은 약과인 셈이었다. 공권력의 대표적 수장후보가 이럴진대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공직자의 도덕성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다. 대통령은 거짓말을 한 사람을 검찰총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내정을 즉시 철회했지만 화살은 또 그에게로 향했다. 이번 인사 실패로 대통령은 많은 것을 잃었다. ‘근원적 처방’의 첫 단추가 근원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재산기부 효과와 유럽순방 외교 성과도 폭우 뒤의 잠수교처럼 잠겨버렸다.

인사의 문제는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에 그치지 않는다. 각계의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강행한 백용호 국세청장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경우도 사실 문제는 마찬가지다. 백용호 국세청장은 탈세와 투기의 문제로 말미암아 이미 '탈세청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상태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 되면서 느닷없이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에 임명되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뒤에는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되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또 다시 여러 의혹과 문제를 안고 있는 '측근 인사'를 강행한 것이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은 스스로 인권 현장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던 만큼 수락하지 않았어야 했다. 더욱이 그는 논문 표절의 의혹까지 받고 있다. 나아가 친박연대의 김을동 의원은 '현 정부의 친일 후손 인사, 해도 너무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해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지적했다.

어디 그뿐인가, 급기야 지난 12월 국회에 제출된 미디어 관련법은 그동안 여야간 첨예한 대립 속에 결국 직권상정이란 비상수단을 통해 7개월여만에 국회를 통과하면서 마침표를 찍게 됐다.

어차피 한번은 치르고 넘어가야 할 `홍역'인 미디어법을 물리적 충돌이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국회는 '아비규환' 속에 통과된 미디어법안은 대기업과 신문의 지상파 지분 소유는 10%, IP 텔레비젼의 종합편성채널은 30%, 보도전문채널은 30%까지 `미디어 관련 3법'을 통과시켰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국민 70%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법과 탈법을 동원해서라도 날치기를 감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이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견제가 곧 안정이다. 견제를 통해서 건강한 의회 민주주의가 복원되어야 한다. 무너진 의회 균형의 추를 국민이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우리 국민들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 깨어있는 정신으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독선과 오만에 저항해서 국민의 무서움을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에게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法”이라는 한자어를 보면 물 흘러가는 뜻으로 구성되어 있다. 뜻대로 한다면 법을 만드는 일이나 법을 적용하는 것은 자연이치나 순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지금 정치권은 타협없는 탐욕, 마주보는 열차, 고집과 아집들, 참으로 분통터질 정치권, 언론계, 재벌들이다.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우려는 계속 커지는 가운데 이 나라는 '반독재 민주화'에서 '반민주 독재화'로 치달리는 형국이니 그 책임이 지대하여 이들 역시 역사의 죄인임을 국민 앞에 자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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