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군자는 자리에 있지 아니하고 자리가 군자에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번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지명과 사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며 옛 성현의 말씀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검찰 일신(一新)을 기대하며 파격적으로 발탁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하루만에 낙마했다. 자녀 위장전입, 증여세 탈루 등의 실정법 위반에 국회 위증까지 겹쳤다. “직무수행에는 큰 문제가 없다”던 청와대는 천 후보자가 고가 아파트 구입과 관련해 15억원을 빌려준 기업가와 일본에서 골프 치고도, 청문회에서 거짓말한 것이 들통난 게 결정적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게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한탄했다고 한다. 천 후보자의 전격적인 사의 표명과 수용까지 불과 몇 시간이었지만 후유증은 크고 엄중하다.

“여러 문제점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흠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소박한 생각은 들고 있다”는 여당 대표의 언급은 후폭풍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소박한 수준이다. 불의와 불법에 맞서 검찰조직을 통할해야 할 검찰총장의 권위는 뿌리째 흔들렸다. 검찰총장은 희화의 대상이 됐다. “광장동은 서울 교외다” “6성급 워커힐호텔은 조그만 교외다” “차를 빌려 탈 만큼 검소한 부인을 맞았다” “초가집에 살면서 형에게 기와집을 사라고 5억원을 빌려준 착한 동생을 뒀다” “기업인 박모 씨는 기부천사다” 등등. 순식간에 ‘호랑이는 풀을 뜯지 않는다’는 검사의 기개(氣槪)는 전설이 됐다. 곁불을 쬐러 어슬렁거리는 야수로 추락한 현실에 검사들은 자괴감에 떨었다. 추락한 권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3기수나 건너뛴 파격인사로 천 후보자의 선배와 동기 8명이 옷을 벗어 상명하복의 검찰조직은 전례가 없는 지휘부 공백 사태를 빚고 있다. 등 떠밀려 나갔던 인사들이 다시 컴백해야 할 판이다. 투전판 운칠기삼처럼 운으로 된 검찰총장의 영(令)이 제대로 서겠는가.

오죽하면 검찰 내부에서조차 청문회 내용에 실망감이 표출되는 상황에서 총장에 임명되더라도 부정부패 척결을 최대 기치로 내걸고 있는 검찰을 제대로 지휘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했겠는가. 일선 검사들조차 창피하다는 반응을 보인 천 후보자가 어떻게 지명됐는지, MB정권의 공직자 검증 시스템이 한심하다. 인사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한두 번은 실수라고 하지만, 국민들의 가슴에 상실감의 대못을 치는 부적절한 인사를 골라서 뽑는 게 상습적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인사가 만사(萬事)라 했는데 이런 엉성한 시스템을 고수하는 한 사고는 계속 터질 수밖에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인사 때마다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도는데 그 자체가 아직도 인재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첫 내각 구성 때부터 지명하는 고위급 인사마다 의혹과 문제 제기가 그치지 않았다.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및 중복게재, 탈세 및 체납, 자녀와 본인의 이중국적 및 국적포기, 허위경력,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 한 가지뿐 아니라 의혹 투성인 종합선물세트 인사들만을 골라서 잘도 등장시켰었다.

이번 사태는 정권의 공안몰이와 맞물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권은 사시 기수가 3기 내려간 천 후보자의 발탁을 검찰 쇄신이라고 주장하지만 포장일 뿐이다. 우리는 ‘공안통’인 그의 내정이 서울중앙지검장 재직때 용산 참사와 MBC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정권과 코드를 맞춘 데 대한 보은이요, 앞으로도 악역을 맡아달라는 주문으로 평가한 바 있다. 그런 마당에 사전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을 리 만무하다.

또한 인사에서도 변화를 보였다. 예상을 깬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와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는 MB식 파격 인사의 신호탄으로 비쳤다. 공석인 두 권력기관의 수장을 임명하면서 '서열 파괴', '외부 수혈', '충청권 우대'라는 핵심 키워드를 내세운 깜짝 인사를 단행함으로써 인적 쇄신의 요구를 상당 부분 잠재우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중요한건 두 사람 모두 충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내년 지방선거까지 감안한 지역안배 차원의 포커스를 맞춘 인사였다.

이 대통령은 이번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되풀이돼온 국정 운영의 폐해를 되돌아봐야 한다. 권력 안위만을 염두에 둔 채 충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무리수 인사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검증 시스템 정비도 서두를 일이다. 이 대통령은 ‘근원적 처방’의 한 방편으로 총리를 포함한 중폭 이상의 개각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독선적 국정운영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없다면 제2의, 제3의 천성관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최소한 고위 공직자라면 자신에게 그런 자리가 왔을 때 스스로를 명경지수(明鏡止水)에 비춰보며 과연 스스로 나아갈 자리인지를 냉엄하게 돌이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아무리 영예로운 자리라 할 지라도 사양하는 모습도 아름다울 것이다. 천 내정자는 24년 공직에 오점을 남기고 평생의 직장이었던 검찰조직에 상처를 남겼으며 통치자에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겨 주고 떠났다.

이명박 대통령도 천성관 내정자의 내정을 취소하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사회특권층의 도덕적 의무)에 반하는 것은 곤란하다‘라며 ”고위 공직자를 지향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처신이 모범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위 공직자라면 노블리수 오블리주 중에서도 무한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이것이 바로, 자리가 군자에 있어야 한다는 성현의 가르침일 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중도.실용' `친(親)서민' `국민소통 강화' 등의 행보와도 맥이 닿아 있다는 지적으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MB의 국정운영 변화를 엿보게 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번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지명과 사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고위공직자들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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