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불도저 대통령이다. 이명박 정권이 항로를 틀었다. 방향타는 그대로인데 깃발만 바꿔 달았는지, 뱃머리를 진짜 좌현으로 약간 틀었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대통령이 정권 중반기 국정쇄신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 대통령이 서민중심 및 중도 실용 정책을 펴겠다는 구상을 밝힌 뒤 곧바로 그 실천에 나섰다. 서민생활배려 등을 지시하며 전격적으로 ‘떡볶이’집을 방문했다. 기존의 국정운영 기조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 일련의 지시는 청와대 참모진, 정부관료, 여당 지도부조차 따라가기 힘든 숨가쁜 행보였다. 대통령이 방미에 앞서 언급했던 ‘근원적 처방’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셈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이 어째 썰렁하기만 하다. 서민 대통령 표방 이후 도대체 달라진 게 뭐냐? 비정규직들에 대한 법적 보호망을 야금야금 허물고,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은 계속 이어가는 것이 서민을 중시하는 정책인가? 조중동 방송과 재벌 방송을 가능케 하는 미디어법을 강행하고, 정부 요직에 자신의 측근만을 등용하는 인사를 고집하는 것이 중도 실용 정책인가? 경제는 물론 노동, 교육, 환경 등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국정 운영의 기본방향을 수정한 구석이 있는가?

전혀 정책의 변화가 없으니 답답한 것이다. 오히려 부자의 세금은 줄고 서민들의 세금은 늘고 있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의 박주현 소장에 따르면 앞으로 4년 간 부자들은 90조 정도의 감세 혜택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결국 큰 고깃덩어리는 소리 소문 없이 부자들에게 안긴 뒤, 남은 부스러기 몇 점 서민들에게 쪼개어 주면서 서민중심 정책을 편다고 요란을 떨고 있다고 밖에는 보기 어렵다. 부자들에겐 푸짐한 고기와 떡을, 서민들에겐 따뜻한 립 서비스를? 그러니 국민적 비판에 몰려 있는 최근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궁여지책에서 나온 이미지 조작용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한 개 쯤은 과감하게 양보하고 내려놓았어야 했다. 미디어법이나 4대강 정비사업, 부자 감세 정책을 포기한다든가 혹은 용산참사 유족에게 사과를 한다던가 했다면 조금은 수준 있는 쇼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대통령은 끝까지 조삼모사(朝三暮四) 수준도 안 되는 언어의 유희로 일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자정권'이란 딱지가 붙는 것이 못내 서운 할 것이다. 좌파정권보다 더 많은 예산을 서민복지에 쏟아붓는 진정성을 국민이 알아주지 않는 것도 못내 야속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은 허름한 차림으로 장터에 나가 '서민경제'의 깃발을 들었고, 그걸로 좌와 우를 아우르겠다고 만방에 고했다. 이른바 중도강화론이다.

이런 상징적 행보도 중요하지만 중도정치의 핵심은 '적과의 동침'이다. 필요하다면 적진에서도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수 입맛에 맞지 않는 정책도 빌려다 쓰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인사와 '정책 혼합(mix)'으로부터 중도의 정체성이 나온다. 무조건 믹스하면 줏대 없다는 소리를 듣기 안성맞춤이므로 효율성이 높아지는 정책 영역을 선별하면 좋을 것이다. 원래 중도실용론은 기민한 기회포착 능력, 카멜레온적 변형력, 부드러운 협상력과 실천 능력을 생명으로 하기에 양극단에서 날을 세우고 있는 것보다 더 힘들고 버거운 것이 정치노선인 이다

우리사회 정치적 양극화의 악순환 구조는 정말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권을 이념정권이라 비판하며, 이념적 대립이 아니라 실용으로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면서 집권했다. 그러나 집권 초부터 특권층 정부가 돼 대다수의 국민들은 등을 돌렸다.

정부는 국민여론에 귀를 막은 채 이념세력의 공세 탓으로 돌렸다. 실용을 내세우고 집권했지만, 오히려 이념대립을 더 증폭시킨 정권이 됐다. 이념대립을 넘어 국민여론을 무시하는 정권이 돼 민주주의 위기 논란까지 불러왔다.

이런 과오에 대한 반성이라면, 중도실용은 적절한 진단이다. 당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다수를 껴안는 대통령의 중도실용은 국정운영 방식과 정책방향 모두에 적용된다. 우선 국정운영 방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비판여론을 수용하는 관용의 자세, 낮은 자세의 국정운영이 절대 필요하다.

자신의 임기 중에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선언 역시 이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운하 포기 선언으로 달라진 게 무엇인가? 대운하 사업 규모를 훨씬 넘어서는 4대강 사업은 변함 없이 추진될 것이고, 한반도의 생태계를 허무는 거대한 콘크리트 보의 설치와 토사 준설 공사가 예정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결론은 이명박 대통령의 원래 구상대로 척척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 동안 심하게 농락당하고 속은 기분이다. 설명이 어떻든 국민들이 평가하는 것은 이 대통령이 후속 조치로 보여줄 정치 행보와 정책 들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우선 국정 주체인 여권 내부의 결속을 다져야 한다. 야권에 대해서도 쉼 없이 설득하고 포용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또 서민들이 실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민생 정책을 과단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힘이 있을 때 과감히 당적을 버리고 초당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국민들은 야당의 대안 없는 ‘생떼’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지만 결국 국정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독주하며 이끌었던 기업CEO가 아니라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민주적 지도자가 돼야 한다. 이점에서 중도 실용이 현실화되려면, 국민의 비판여론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 또 야당의 주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사실 자수성가한 서민 출신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었기에 그동안 잃어버린 서민 이미지와 개혁 이미지가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747 공약’은 이미 물 건너 간지 오래고, 서민중심의 중도 실용 정책은 아무런 알맹이 없는 빈 쭉정이임이 드러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제 앞으로 어떤 카드를 내놓을 작정인가? 자꾸 불신을 쌓아서 어쩔 셈인가? 정녕 ‘양치기 대통령’이 될 셈인가? 더 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고 달콤한 사탕발림의 정치를 청산하길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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