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지금까지 44명의 대통령이 있었는데 이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고, 다른 하나는 단임으로 끝난 대통령이다.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국민들로부터 불신임을 받았다는 것, 즉, 실패한 대통령인 것이다.

미국 대통령의 가장 큰 꿈은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터 대통령은 재선을 이루지 못했을 때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에 재선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지금까지 44명의 대통령 중 중임을 한 사람은 불과 18명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면 어떡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를 할까 노심초사한다.

자연히 국민을 두려워하고 임기 마지막까지 국민의 뜻에 맞는 정치를 하게 된다.

이런 장점 때문에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는 모든 나라들은 거의 ‘중임제’를 택하고 있다.

그것이 대통령중심제의 글로벌 스탠다드이다.

중임제의 가장 큰 장점은 초임 대통령으로 하여금 첫 임기의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임된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지 않을까? 아무래도 초선 대통령보다는 못하겠지만 이들은 정치력의 원숙함으로 그것을 보완한다.

레이건 대통령의 경우 이란-콘트라 사건이 있었고 클린턴의 경우 르윈스키 스캔들이 있었지만 둘 다 원숙하게 그 위기를 다 넘겼고 통치를 잘해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대통령 단임제’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제도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단점은 한마디로 대통령을 ‘오만’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대통령으로 만들기 쉽다는 것이다.

단임제 대통령은 재임 중 아무리 인기가 없었어도, 국민이 아무리 그를 미워하고 저주해도 그에게는 5년의 임기가 보장되어 있고 그의 업적에 대한 어떠한 심판도 없다.

퇴임 후에는 전임 대통령으로 모든 예우와 대접을 다 받는다.

그러니 국민을 별로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이것은 ‘너희들이 아무리 짖어도 나는 내 갈 길을 간다’라는 태도, 즉 ‘막가파’ 대통령을 만들게 된다.

전두환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만약 노태우 대통령이 재선의 희망이 있었다면 그렇게 노골적으로 돈을 몇 천억 원씩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김영삼 대통령에게 재선의 꿈이 있었다면 아들 문제에 대해 그토록 고집을 피우지 않았을 것이고 말년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만약 재선에 대한 꿈이 있었다면 ‘아들 문제’가 선거에서 불거질 가능성을 생각하고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오만과 방심은 대부분 그들을 다 임기 후반에 가서는 지지도 10%대에 불과한 사실상 ‘정치적 파산자’로 만들었다.

노무현의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에게 재선의 꿈이 있었다면 국정 내내 ‘막가파’ 스타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자체 선거에서 사상 유례없는 참패를 당하고도 사과는커녕 ‘선거란 그럴 때가 있는 것이다’라고 태연자약하고, ‘코드 인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들끓어도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안면 몰수하고, 세금 폭탄에 대한 국민의 엄청난 저항과 작통권 이양에 대한 열화와 같은 반발, 악화되는 대미 관계에 대한 크나큰 우려에 대해서도 모두 마이동풍 식으로 일관했었다.

이런 모든 것이 크게 보아 ‘단임제’라는 이상한 제도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단임 대통령제는 ‘막가파’ 대통령을 양산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말미에 단임제의 폐해를 인정하고 4년 연임제를 위한 개헌을 시도하지 않았는가.

이제 우리 국민도 이만큼 당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헌법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바꾸는 것을 심각히 고려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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