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대한민국 제16대 참여정부 대통령 각하! 이제 평안히 잠드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

63세 ‘이순(耳順)’의 나이,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했다. 죽음은 사람과 권력에게 사색의 공간을 던진다. 공자(孔子)의 말씀에 따르면 이순은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의 말을 듣기만 해도 그 이치를 바로 깨닫게 되는 것이 이순의 경지인 것이다.

님이시여! 저 민초들의 긴 행렬이 보이십니까? 당신은,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이 아니라, 恨 많은 세상에서 뛰어내린 것입니다.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저기 사람이......” 사람과 영혼을 갈라놓은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정치의 이단아였던 바보 노무현은 恨 많은 세상을 뒤로하고 역사 속으로 떠나가셨다. 삶과 업적은 역사가 기록 하리라. 잘 잘못도 역사가 기록 하리라. 한 생명이 죽음 앞에 무슨 말이 있겠는가. 그저 허망하다. 잘한 것은 땅에 두고, 잘못한 것은 하늘로 갖고 가시라. 죽음 앞에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나라의 민주주의 현주소, 나라의 정치 개혁의 현주소를 죽음으로 쓰고 가신 것이다.

갑작스러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만큼 우리를 처연하게 한다. 고통을 끌어안은 채 삶을 마감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우선 우리 사회는 유족의 아픔을 달래고 최대의 예우를 갖춰 노 전 대통령을 안장(安葬)해야 한다. 그러곤 그가 남긴 공과(功過)의 유산을 차분하게 정리해, 이어갈 것은 이어가고 고칠 것은 고쳐나가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계승이며 사회의 연속성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의 불행한 사회상을 극명하게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보수와 진보라는 양극화된 정치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사건일 수 있다. 때문에 그의 비운은 국가적 비극을 의미한다. 모두가 자성해야 한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갈등 국면을 해소해야 한다. 정의와 인권, 이해와 화해 등 소중한 가치가 반영되는 민주국가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다.

정치권의 환골탈태를 당부하게 된다. 각종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우리의 후진적 정치문화를 개선해야 이러한 국가적 아픔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중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부분 하야, 시해, 측근 구속, 검찰 수사 등 수난과 비운을 겪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사회의 일대 반성이 필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더 이상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노 전대통령의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라는 화두를 남겼다. 어떻게 보면 체념적이고, 어떻게 보면 해탈의 면목을 지녔다. 시간의 생존의미를 철학적 생존가치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래서 “마을 주변에 비석 하나를 세우라”고 유언을 남긴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의 철학적 가치를 담은 비석을 국민적 애도로 고운 정성으로 세우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면 이제 평안히 쉬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한 고민도 이제 잊어야 한다. 왜냐하면 죽음은 사람에게 사색의 공간을 던진다고 하지 않는가? 대통령을 지낸 나라의 큰 어른이 끝까지 나라와 국민에게 큰 혼란의 짐을 지우고 떠났다는 원망도 접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노 전 대통령은 한때 많은 시민들의 희망이었다. 신선한 바람과 함께 등장한 정치인 노무현의 시대적 의의는 결코 작지 않았다. 현실정치의 지평을 서민의 눈높이에 맞춘 건 큰 공적이다. 그의 치세는 명암이 교차했지만 현대정치사 전체를 볼 때 참여정부는 우리 사회가 통과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한 시절이기도 할 것이다.

예컨데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자연인 노무현에게 너무 무거운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제왕적 대통령제인 한국정치 지형에서 그는 제왕의 권능 가운데 많은 부분을 스스로 포기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민주주의의 진전을 말할 때 참여정부가 응분의 평가를 받아야 할 주요 이유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그 공백을 메울 헤게모니, 즉 다수 시민들의 자발적 지지를 창출하지 못했다. 정치적 명분과 열혈 추종자들을 가졌지만 보통사람에게서 솟아나는 폴로어십(followership)을 만들어 내지 못함으로써 좌초하고 말았던 것이다. 취약한 정치 리더십의 딜레마는 고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勢)와 정당성을 함께 얻는 일은 현재 진행형의 정치 과업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최후는 결코 최후의 사태가 아니며 중대한 전환의 시작일 공산이 크다. 그의 죽음에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누군가는 끊어야 한다. 현실정치는 냉혹한 권력게임을 수반하지만 정치투쟁의 승자와 패자 모두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여기서 필자인 나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이 진즉 역사의 장(場)에 진입한 존재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는 더 이상 현실적 정치주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2008 촛불'에 놀란 나머지 노무현 진영을 너무 압박한 이명박 정부의 행보는 '오버'였던 셈이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우리 문화의 치부를 폭로한다. 그의 생애는 논란과 설화의 연속이기도 했지만 감동과 공감을 동반하기도 했다. 모두가 그렇듯이 노무현도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 모순적 존재였다. 그러나 진영논리에 입각한 선악의 이분법에 빠진 한국사회는 그를 입맛대로 추켜 올리거나 깎아내리는 데 바빴을 뿐이다.

진영사고에 명분론과 순수성에 대한 집착이 더해질 때 상황은 더 나빠진다. 정파성이 신념에 대한 헌신으로 미화되며 입장이 다른 상대방의 장점은 무시되고 단점은 부풀려진다. 이런 관행은 적대감의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전방위적 조롱과 의혹의 눈길을 견딜 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으므로 사태는 갈수록 악화된다. 성난 얼굴로 남의 허물을 들추는 세상은 피폐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지 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의 주장대로 '잃어버린' 역사라고 생각한다면 같은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되겠다는 교훈을, 반대로 '희망을 준' 역사라고 간주한다면 이를 본받아야겠다는 교훈을 각각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통령직은 교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소중한 자산이 분명한데, 우리 사회는 이를 잃어버리는 국가적 손실을 겪은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잃어 모두 커다란 슬픔에 젖어 있지만, 정작 지금부터 필요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치의식을 발휘하여 슬픔을 승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모든 계층이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면서 배려와 포용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손가락질 한다면 이는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의미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체제를 보다 공고히 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때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은 한층 더 소중한 것으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노 전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이 원망과 상호비난의 흐름을 가속화할지, 아니면 반성의 계기가 될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분노와 규탄의 회오리 대신 자성과 절제의 불씨로 이어지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일 것이다. 짧은 유서를 남긴 노 전 대통령은 글의 끝을 맺지 않았다. 극적이었던 그의 삶을 완결시키지 않고 여백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망자(亡者) 앞에서 모든 살아있는 자는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빈 공간을 준열한 자기반성으로 채우는 게 민주 시민의 몫이다. 이것이 떠나가는 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살아남은 자의 예의일 터.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 그 무게는 저마다 다르다. 상고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사를 거쳐 인권변호사로 다시 태어났으며, 3당 합당에 반발해 가시밭길을 걸었으며 끝내 ‘바보’에서 대통령으로 거듭나는 신화를 창조했던, 그리고 퇴임 후 봉하 마을의 촌로가 되고자 했지만 파란만장한 일생만큼이나 공과도 많았을 것이고 그 평가도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잘못이 무엇이었건 검찰의 수사 행태가 철저하게 ‘정치인 노무현’의 ‘정치적 목숨’을 겨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임채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 전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기 "검찰과 경찰 조직은 안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다음 정권에서도 임기를 채울만한 사람으로 앉히고 물러나야 한다"며 주변의 우려를 외면한 채 임채진 총장과 어청수 전 경찰청장으로 '이명박 코드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결국 임채진 총장의 검찰이 휘두르는 칼에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흔히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한다. 심하게 말하면 노 전 대통령은 발가벗겨져 털리고 말았다. 그것도 떡고물 묻은 제 옷은 한 번도 털어본 적 없는 자들에게 말이다. MB정권 들어서서 '검찰'과 '개혁'은 한 기사 안에서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검찰 권력 견제나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쏙 들어갔다. 검찰은 구조와 태생 자체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지만 과거 공안통들이 부활하며 '철권통치'의 첨병으로 부활하는 모양새다.

검찰은 물론 법원까지 우리 사회가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거대한 권력임에 틀림없다. 특히 민주화가 진전되고 '법치'가 더욱 강조되며 그들의 칼날은 점점 더 예리해지고 있다. 그러나 어수룩한 칼잡이는 제 손을 베이고 마는 법이다. 또한 다시 한 번 화두를 던져야 한다. 검찰에게 칼 쥐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민심의 바다가 출렁이고 당신을 겨눈 칼끝이 도리어 칼자루를 잡았던 자들에게 부메랑처럼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국민 모두는 정치적 이해관계나 이념적 노선을 떠나 상호 비방을 자제하고,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고, 국민의 충격과 아픔을 달랠 국민대통합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유서를 통해 본 노 전 대통령은 생사일여(生死一如)의 모습을 보여줬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마지막 글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불의가 판치고 어지러운 세상을 준엄하게 꾸짖었고 7000만 민족의 염원인 통일의 다리를 놓는 등불로서의 모습도 보여줬다. 평가는 엇갈리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다시는 노 전 대통령의 활달하게 웃는 모습도, 바보 노무현의 모습도, 용기와 소신의 발언도 듣거나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풍운아 노무현, 정치의 이단아 바보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 자가 천지를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살아생전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무수히 기대를 걸었던 이들은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대통령직에 있던 당신과 싸우기도 적지 않게 했습니다. 비난과 비판과 매도가 뒤섞인 채 서로에게 교전상태의 탄환처럼 오간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또한 모두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일어난 일이었을 뿐, 이렇게 흉포한 권력이 백주에 활보하고 있는 시대와는 엄연히 달랐습니다. 이런 시대가 등장하지 않게 하려고 모두 그렇게 진력을 다했건만 결국 이 포악한 권력은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담긴 한 시대의 모든 가치를 전부 말살시키려 하다가 당신의 목숨까지 겨냥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이 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진보를 지향하는 시대 전체에 대한 ‘살해’라는 것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습니다. 자살이란 방식이 그렇다는 것일 뿐, 그 맥락은 엄연히 타살입니다. 민심은 당신의 자살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타살당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가져온 자들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 분노는 조만간 역사의 심판으로 번질 기세입니다.

지금 흐르고 있는 민초들의 눈물은 허무한 탄식이 아닙니다. 절망의 강이 아닙니다. 끝 간 데 모르는 슬픔이 도달한 고독한 섬이 아닙니다. 그건 도리어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이 담긴 결의가 되고 있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자들에 대한 투지가 되고 있으며 어떤 권력도 끌 수 없는 가슴의 촛불이 되고 있습니다. 짧은 유서에 모두 담아내지 못한 당신의 목소리를 온통 듣고 있는 민초들의 견고한 힘이 되고 있는 겁니다.

이건 당신이 이 세상에 남기신 가장 소중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일은 이렇게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역사의 비밀입니다. 당신의 죽음을 우리 모두가 나누어지고 있고, 당신의 유산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추모의 행렬 깊은 곳에 숨길 수 없이 드러나고 있는 이 시대의 육성이 있습니다. 때로 미워했지만 그래도 사랑을 더 많이 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민심의 진실이 가리키는 바가 있습니다. 희망과 생명을 짓밟는 권력과 세력에 대해 더는 침묵하고 당하며 살지 말라고 하는 집단적 각성의 불꽃이 바로 그것입니다. 촛불은 그렇게 해서 회생할 겁니다. 역사는 모순에 차 있는 듯하지만, 기묘한 섭리가 있어서 이미 죽은 것처럼 여겼지만 생환해야 할 것은 반드시 생환하게 합니다.

이 슬픔 마침내 딛고 일어서렵니다. 그걸 당신도 원하시는 것 아닙니까? 생전에 못다 이룬 꿈, 그 희망과 목표가 다시 이 시대의 의지가 되어갈 겁니다. 서러운 5월이 지나고 이제 6월이 곧 옵니다. 추모의 마음을 가슴에 깊이 부여잡고 6월의 광장에 나서려는 이들이 늘어날 겁니다. 역사는 격동할 것이며, 민주주의는 새로운 기력을 차리고 이 흉포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제의를 펼쳐낼 겁니다. 당신을 그토록 괴롭히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힘들이 무릎을 꿇는 그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니 슬퍼하지 마시고 부디 저 세상에서 편히 지내시기를 빕니다. 삼가 명복을 빌며 이 시대의 눈물이 귀한 위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유가족들 모두에게도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역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귀중한 존재로 기억해 낼 것입니다. 영전에 국화 한 송이 바치며, 옷깃을 여미고 고개 숙입니다. 부디, 이승의 恨과 고민을 접고 고이 잠드시기를 다시한번 진심으로 기구(祈求) 드리나이다.

끝으로 대한민국을 앞으로 잘 보듬어 나가라는 것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던지고 간 함축적 메시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이 땅에 남겨진 우리들이 고인이 남겨 준 고민을 잘 해결해 나갈 차례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시급히 고민해야 할 역사적 책무는 바로 권력의 부패사슬 척결, 사회적 가치통합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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