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어두운 시대에 살았던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꿈 속에서 파시즘의 폭정에 운명을 달리했던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었나 보다. 그는 슬픔에 잠겨 그 꿈을 몇 줄 시로 옮겨 적었다.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전문,  베르톨트 브레히트

2009년 5월 23일, 이른 아침에 들려온 청천벽력같은, 마치 꿈과 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보에 비탄에 잠긴 국민들의 망연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소식은 고인이 늘 얘기하고 추구했던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정권교체 단 1년 여 만에 송두리째 붕괴되어버린 작금의 현실에서 보면 더욱 더 애석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비극의 발단이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들의 통과제의와도 같은 친인척비리와 정권의 정치적 알력싸움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에서 그 비극성이 더한다. 생전에 그가 권위주의와 권력형 부패 타파의 최전선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비리의 고리를 완전히 끊지 못함이 애석할 따름이다.

하지만 상반된 평가가 오가는 대통령 재임기간의 시끌벅적했던 영욕의 시간을 차치하더라도 ‘노무현’ 이라는 이름 석자에는 쉽게 평가하거나 가늠하기 힘든 어떤 존재의 무게와 상징성이 들어가 있다. 후대의 역사가 고인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알 수 없겠으나 최소한 지금 분명한 것은 그는 우리들의 기억에 언제나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대한 희망과 상징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 노무현 보다는 인간 노무현에게 더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인권변호사 출신이었던 그가 5공 청문회에서 똑 부러진 언변으로 스타가 되었을 때, 3당 합당을 야합이라며 맹비난하고 기나 긴 고난의 길을 선택했을 때, 그리고 지역주의 타파를 주장하며 백의종군 했을 때, 우리 국민들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인간 노무현, 우직하게 한 길만을 걷는 바보 노무현의 진가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영광의 시간보다는 고통의 나날이 길었을 대통령 재임 기간이 끝나고, 자연인 노무현으로 고향에 돌아오자 국민들은 인간 노무현에 다시 매료되었고 열광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호 아저씨(호치민)처럼, 친근하고 소박한 옆집 아저씨 같은 노 전 대통령은 고향으로 돌아가 ‘촌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며 생태농업과 지역경제에 대한 희망을 노래했고 국민들은 인간 노무현의 가치를 재삼 확인한 것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이례적이고 폭발적인 인기과 환호를 하늘에서 시기라도 하는 듯, 기막힌 타이밍에 후폭풍처럼 대통령의 친인척비리가 터져 나왔고 검찰이 확정되지 않은 정보들을 연일 매체에 흘리며 지리멸렬하게 사건을 키우는 동안 보수언론들도 이에 보조를 맞춰 각종 의혹들을 확대재생산해냈다. 최고지도층에 있었기 때문에 도덕적 잣대가 엄밀해야한다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나 역사적 전례들과 비교해 보아도 그 사건의 진행과정들이 너무도 편협하고 가혹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랜 시간의 고뇌 끝에 최후의 결단을 내렸을 때, 결국 이 모든 소란을 끝내고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자 했을 때, 고인의 마음 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고인이 유언을 통해 말한 ‘운명’이라는 단어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사자(死者)들의 역설적인 함성이 묘하게 뒤엉키면서 더욱 끈질기게 귓가에 공명하는 2009년의 이 뜨거운 늦봄, 우리 살아남은 자들에게 그의 존재는 어떻게 다가오는가?

어느 비주류 대통령의 죽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인간 노무현의 가치와 상징은 훨씬 더 원대하고 장대하다. 우리들은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인간 노무현을 잃어 슬픈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 비판을 가할망정 결코 미워하거나 내다 버릴 수는 없는 애정이 깃든 오래된 그 무엇을 잃은 것이다. 우리들이 잠시 방심하는 사이, 역사와 정의는 수십 년을 뒷걸음치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 그저 망자(忘者)의 추억에 그치는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참담한 비극의 한 페이지로 인용되고 말 것이다. 긴 애도의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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