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이념인 법관독립이 왜 법원 내부에서조차 무시당하고 있나.”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사법부 독립문제가 또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개입 의혹에 대해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결정이 나온 직후 일선 판사들의 격앙된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이 때문에 윤리위의 이같은 심의 결과는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 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처사라는 주장이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일 하루에만 7명의 판사가 법원 내부 통신망에 이번 사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내고 대법원장과 신 대법관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비록 판사들의 목소리 높낮이는 달랐지만 촛불 재판 개입 의혹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되며 이번 기회에 반드시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게 일치된 견해였다. 모든 법조인의 뿌리는 사법부에 두고 있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해석은 법원의 판례를 기초로 이뤄진다. 사법부의 신뢰가 모든 법조인에 대한 신뢰의 기초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 당시에 촛불집회 관련 재판의 내용과 진행에 관여하고 배당권한을 남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에 대해, "재판 관여로 인식되거나 오해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으므로 ‘경고 또는 주의 촉구’ 권고라는 솜방망이 결정에 대한 후배 판사들의 정면 반발로, 사법부의 상징이랄 수 있는 대법관은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한편에서는 신 대법관의 행동이 법원 내부적으로 오랫동안 용인되어 온 관행이라며 윤리위의 결정을 옹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평가는 엄혹하다. 4월 20일에 신 대법관 사태의 원인과 해결책 등을 논의하기 위해 6년 만에 개최된 전국 법관 워크숍에 참석한 법관들의 지배적인 의견보다도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받는다. 그래서 신 대법관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거나, 대법원장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거나 파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언론의 전망은 조심스럽다. 윤리위가 징계위 회부를 권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 대법관이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고 보도한다. 2월 23일에 최초의 관련 보도가 나온 이후 심각한 비판이 이어졌고, 진상조사단의 조사와 결과발표가 있었고, 윤리위에 회부되었음에도 신 대법관이 사퇴를 거부해 왔으니 그런 정치적인 전망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대법원규칙인 법관윤리강령에 선언되어 있다. 법관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정당한 권리행사를 보장함으로써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하여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하여야 한다. 법관은 이 같은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사법권의 독립과 법관의 명예를 굳게 지켜야 하며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법관은 공정하고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하며, 법관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갖추어야 한다.

법관의 독립을 해치는 것이 법원의 관행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법관과 법원에 대한 모독일 터이다.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내세워 자리를 보전하려고 하는 것은 적어도 대법관이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기회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대법관의 법조윤리를 유린해 온 잘못된 행태들을 말끔히 일소할 일이다.

사법의 권위는 그 구성원인 법조가 엄격한 법조윤리를 갖추고 있을 때만 인정될 수 있다. 권위는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근신하고 또 근신하라는 법조윤리의 명령은 그래서 지엄하다.

촛불세력으로 인해 타의로 대법관이 물러날 경우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의 리더십이 결국 훼손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개의 사건에 대해 독립적 판결을 해 온 법원이 신 대법관 문제에 조심스러워 하는 것은 자진 사퇴가 ‘외풍에 휘둘리지 않아야 할 법원이 촛불의 영향을 받고 말았다’는 안팎의 비난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초를 제공한 쪽은 법원 내부, 그것도 사법행정권을 잘못 이해한 신 대법관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크건 작건 대법관으로서 명예에 흠이 생겼고, 일부라고 하지만 판사들이 존경을 철회했다면 신 대법관으로서는 땅에 떨어진 사법부의 권위를 되찾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용단을 내리는 게 옳다. 흠결을 감춘 채 명판결을 남긴다고 한들 이미 잃은 명예와 존경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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