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 비빌 언덕 보며 기댄다. 최근 대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문득 그런 세태어가 떠오른다. 이 정권 들어 갑자기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이 체면을 팽개치고 마구잡이 돈 사냥에 나선 듯 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신세계 이마트가 얼마 전 슈퍼마켓 사업에 본격 진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슈퍼슈퍼마켓(SSM)이라 불리는 신종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선언이다. SSM은 100평 안팎의 점포를 운영하는 매장으로 대형 마트와는 달리 소규모의 부지에서도 개점이 가능한 까닭에 영세한 골목 상권에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SSM은 신세계 이마트가 첫 사례는 아니다. 이미 롯데쇼핑, GS마켓, 홈 플러스 등 대기업들이 수년 전부터 400개 이상의 슈퍼마켓을 열고 경쟁체제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골목상권에 끼치는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동네 슈퍼는 물론 일반 상점, 정육점, 채소가게, 청과물 가게 등 지역 영세 상인들이 막심한 피해를 보고 있는 중이다. 기업형 SSM이 들어 선 이후 주변의 기존 업소들 매출이 평균 1/3, 1/4 수준으로 뚝 떨어진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당연한 결과다. 대기업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싼값에 물건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골목가게들이 당해 낼 재간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SSM이라는 신종 유통업을 개발한 심사도 얄팍하다. 지역 영세 상인들의 반발을 거부할 수 없어 대형 마트의 진입을 제한하는 지자체의 조치들을 교묘하게 피해 100평 안팎의 소규모 점포 전략을 구가한 것이다.

생계형 점포들의 포식자 노릇에 나선 이 같은 대기업들의 사업행태를 보면서도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을 뿐이어서 더욱 화가 난다. 헌법에 보장된 영업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게 당국의 해명이다. 선거 때만 되면 재래시장과 영세 상인을 보호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현재 기업 형 슈퍼마켓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7개나 국회에 입법 발의돼 있지만 언제 제정될 수 있을지 요원하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그 누구하나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가 적어지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규제 완화로 얻어지는 자유를 약자를 침해하는 데 사용한다면 그 자유는 굳이 지켜져야 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규제완화가 곧 선이라는 이름으로 포식성이 그악스런 육식 공룡까지 철장에서 풀어낼 수는 없다는 얘기다.

MB정권은 출범 초부터 ‘기업 프렌들리’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재벌 옹호정책을 펼쳤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대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향상시켜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성장을 이끌자는 취지에서다. 이 명분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파정권의 이 같은 기업 프렌들리가 대기업들이 영세한 골목상권의 포식에 거침없이 나서는 행태의 밑자리를 만들어주는 격이 됐다면, 기업 프렌들리는 약자를 짓밟는 위선의 경제철학으로 그 가치가 전락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장애인이 출연하는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각급 언론에 사진뉴스로 보도된 적이 있다. 필자는 이 대통령의 그 눈물의 진실성을 의심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 눈물이 최소한 신정권의 정책 안에는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범례를 찾아볼 수 없이 독특한 눈물샘 없는 우파 보수정권…이를 ‘한국형 우파 보수’라고나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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