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한 커플씩 벗겨지던 박 연차 게이트가 막바지에 다다른 느낌이다. 각급 미디어가 추측했던 대로 종착점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울한 모습으로 마지막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이미 문은 열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들과 조카사위, 그리고 노 대통령 본인은 물론 한때 영부인이라 불렸던 권 양숙 여사까지 검찰 나들이를 해야 할 처지다. 정치권 검은 커넥션의 계주 박 연차의 입에서 불거진 600만 불의 행방이 전직 대통령과 그 일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된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돈을 받았다는 사건은 세인들에게 특별히 충격적이다. 그이는 정계입문에 앞서 가난한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가진 자들의 횡포에 맞선 인권변호사였다. 이를 토양으로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변함없이 사회정의의 기치를 내세우고 독재 권력을 향해 거침없이 삿대질을 해댄 청문회 스타였다. 한때 ‘바보 노무현’이라는 닉네임이 붙여졌을 정도로 현실정치의 이해타산을 역류한 우직한 한국정치의 파이어니어 였다. 이 남다른 정치역정을 발판으로 그는 참여정부라는 한국의 첫 진보정권 탄생의 신화를 일궈냈다.

그랬던 그 마저 검찰에 불려가게 된 것이다. 이 때문인지 그에게 쏟아지는 돌팔매질은 유독 가혹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분노다. 폭발하는 분노 속에는 그에 대한 애증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할 수 있다. 우파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의 공세는 더욱 가열 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악의 위선자로 규정됐다.

비극이다. 그이의 극적인 추락이 예고 되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남다른 생각을 가졌던 차별화된 정치인이 차별화를 지켜내지 못한 도중하차가 참담한 까닭이다. 왜냐하면 최고의 권력자가 정치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은 비단 그이만의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형무소를 가게 될 것이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정면으로 독설을 퍼부은 김 영삼 전 대통령 역시 재임 중에 아들을 형무소에 보낸 전력이 있다.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역대 최고 권력자들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고위 정치인들 또한 마찬가지다. ‘돈 없이 정치할 수 없다’는 인식이 국민 대다수의 의식 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을 정도로 일반론이 되다시피 한 한국적 정치 풍토를 이 땅에 고착시킨 주인공들이 누굴 향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한국의 정치인들 모두가 살얼음을 밟으며 누군가가 장치한 게이트를 통과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얼음의 두께는 그들의 운명에 다를 바 없다.

박 연차 게이트는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 변화를 분명히 주문하고 있다. 더 이상 이런 당혹스런 일들이 반복 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표를 구하는 정치인과 표를 던지는 유권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책무다. 이 변화의 틀은 결코 복잡한 게 아니다. 정치인들이 소수의 가진 자와 비즈니스를 하는 게 아니라 국민과 비즈니스를 하는 시스템을 함께 구축하자는 얘기다.

정치인들은 정책이라는 상품을 내놓고 다수의 지지자들에게 구매를 요청해야 한다. 지지자들 또한 그 정책의 상품성을 면밀히 검토한 후 긍정의 평가가 내려진다면 그를 후원해야 한다. 정책실명제 국회의원 후원회를 꾸리자는 얘기다. 첨단 디지털 소통의 시대에 어울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할 때만이 정치인들은 비로소 박 연차 게이트가 아닌 ‘국민 게이트’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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