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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위기 핵심은 이명박 '리더십 소통 부재'
윤승병/논설위원  |  webmaster@n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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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3.13  10: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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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수장, 즉 리더는 영광스럽고 화려한만큼 외롭고 고독한 자리다. 특히 조직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결부된 막중한 책임감 앞에 능력발휘에 대한 압박감으로 긴장속에 살아야 하는게 리더의 운명이다. 이러한 역할에 따른 책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리더는 리더로서의 능력과 자질, 덕목을 갖추어야 하는 건 필연이다. 즉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비전과 상상력, 분석적 사고에 바탕한 판단력,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통찰력, 창조적 결단력, 돌발!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뛰어난 위기 관리력, 자신감과 용기, 조직전반을 관통하는 전문성, 과감한 추진력, 화합과 통합력, 도덕성에 바탕한 인간적 자질이 요구된다.

리더의 능력과 자질, 덕목은 기업, 군대, 정부사회 각급기관 등 모든 조직의 장에게 해당되지만 특히 정치 지도자의 경우 리더십에 관한한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늘 가다듬어야 하는게 리더십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인간사회를 유지함에 있어 최고의 상위개념으로 천차만별, 각양각색의 인간을 상대해야하는 점에서 그러하다.더불어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살아있는 생물의 속성을 지닌 종합예술로서 국민의 안위(安危)와 나라의 운명(運命)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차대함 때문에 대통령이든 정당 대표든 정치지도자는 신분에 걸맞는 뛰어난 지도력을 갖추어야 하고 그러한 지도력을 갖춘 사람에게 국가와 정당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 이에대한 해답은 멀리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역사를 살필 필요없이 현대 한국 정치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전쟁 상황이 아닌 평시 국력과 국가운명은 민주적 정치 안정과 발전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의 지속성에 좌우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민주적, 국민통합적 리더십은 부족했지만 강력한 경제적 리더십에 의한 경제발전으로 보릿고개를 벗어나게 했다. 이에 반해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무능한 경제 리더십으로 외환위기를 불러 국민과 나라를 미증유(未曾有)의 도탄속으로 몰아 넣었다. 이러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결정적으로 대비되는 지도자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가 물려준 외환위기를 과감한 구조조정, 벤처기업 육성, 시대를 내다본 IT집중 투자등 뛰어난 경제 ! 리더십, 금모으기 등등의 국민통합 리더십으로 환란극복과 함께 경제를 재도약 시키고 평화적 리더십을 발휘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이렇게 되살려 놓은 경제가 요즈음 총체적 국난상황을 맞고 있다. 망국전야를 방불케 하는 국난사태는 미국발 금융대란이 지구촌을 덮으면서 발생한 글로벌 경제불황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치명적인 요인은 현직 국가 지도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능력과 자질, 리더십, 부재 때문이라는 걸 알만한 국민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칭 경제전문가를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취임후 1년동안 보여준것은 사기극으로 끝난 747공약, 지리멸렬 갈짓자 뒷북치기 대처, 고환율 외화거덜로 대표되는 경제 망치기, 망경제(亡經濟)리더십으로 기업은 하루앞 운명을 알 수 없는 지옥경영, 자영업은 망하는게 정상, 일자리없는 백수천국 등 외환위기를 능가하는 경제파탄을 불러 민생과 국가가 도탄에 빠질 지경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망경제 리더십에다 취임초기부터 국민적 지탄을 받은 고소영, 강부자, 오사영인사등 구태인사를 극대화시킨 영남 향우회 패권독식 인사 망치기 망인사(亡人事)리더십에 민주주의를 망치는 MB악법 강행 등 20~30년전 역주행 망민주(亡民主) 리더십,대북 강경책과 맹탕 기다리기 전략에 의한 남북관계 파탄 망평화(亡平和) 리더십 등 4망(四亡) 리더십으로 국가운명은 이제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을만큼 망국전야의 위기에 처하였다.

후보시절 문제가 되었던 위법, 탈세, 위장전입, 건강보험료 누락, 부동산 투기의혹 등 도덕적 자질, 덕목도 그렇지만 국민을 섬기고 정치를 하겠다는 말과 달리 가진자를 받드는 감세, 교육개혁, 법과질서를 운운하며 용산참사식 서민죽이기형 반국민적 양극화정치로 한가닥 기대와 희망마저 접게 만들고 있다.

이명박정부는 그동안 국정무능과 경제정책 실패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만의하나 있을지 모르는 제2환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쌓아놓은 피같은 외화를 600억달러나 탕진해 버렸다. 거액의 달러를 쏟아붓고도 환율은 1500원대를 넘어섰고 동유럽 국가들의 외환위기까지 겹쳐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는 이때 한푼의 달러라도 벌어 들여야 할 처지에 전략부재, 낙하산 인사, 아랍무시, 안이한 대응으로 미래동력 산업인 항공산업 발전에 찬물을 끼얹고 25~30억 달러라는 거액의 외화수익을 이탈리아에 뺏기는 禹를 범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이명박 정권의 반국가적 국정무능은 국민적 심판은 물론 지탄을 받아도 시원찮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과 국가야 어떻게 되든 말든 집단적 이익과 패권만 장악하면 된다는 패거리 의식을 버리지 않는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싱가포르, 폴란드와 추진중인 T-50수출이 성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아랍 에미리트 수출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쉽지 않을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한다.

만약 싱가포르, 폴란드 등 기타 다른 나라에 대한 수출마저 실패 한다면 이명박 정권은 국가 반역정권으로 지탄받아도 할 말이 없을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대내외적 총체적 국정무능을 보노라면 분통이 터져 견딜 수 없다는 국민적 통탄이 금수강산을 뒤덮고 있음을 이명박 정권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부터라도 정성을 다하여 국민을 섬기는 민주 정치로 감동을 주는 지도력을 발휘한다면 국민들은 경제국난을 감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구국적 희생과 고통분담에 적극 나설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통합 리더십의 기본인 섬김을 통한 감동정치를 말이아닌 행동으로 보여줄것인지 그럴 자신이 없으면 국민과 국가, 민족을 위해 책임있는 결단을 내리는게 옳다고 본다. 대통령이 책임있는 결단을 주저할 경우 국민 스스로와 국가와 민족을 위해 '4망 리더십'에 지도자의 진퇴와 관련한 최후의 결단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요즘처럼 소통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사회적 소통이 그만큼 제대로 안 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다면 누가 소통을 이렇게 자주 논하겠는가? 소통이 자주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벌어지면서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국민과의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사과하면서 부터다. 부랴부랴 청와대에서는 국민소통비서관이라는 직책을 도입하였으며, 인터넷의 국민여론 등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했다. 늦었지만 청와대가 '국민과의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에 국민들은 안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렇게 만들어진 국민소통비서관은 결국 용산철거민사망사건을 연쇄살인범 사건으로 덮으라는 이메일을 경찰청에 보내는 일을 하다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국민과의 소통이 안 되어 청와대에 자리까지 만들어 사람을 앉혔더니, 바로 그 사람이 국민과의 소통은 커녕 사실상 언론조작의 지침을 하달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국민과의 소통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일방적으로 라디오 연설만을 지속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TV토론도 일방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민과의 소통을 화두로 삼았지만, 소통의 기본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소통의 예의범절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소통에도 예절, 즉 예의범절(禮儀凡節)이 있다. 소통은 한자 뜻으로 보면 트일 소(疏)와 통할 통(通)이 결합된 단어이다. 막힌 것이 트이고 서로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통은 일방향이 아니고, 쌍방향(雙方向)이 되어야 한다. 소통에서 '통하다'는 것은 숨이 통하다는 말처럼 들고나는 것이 자유로운 상태이다. 숨이 들고나야 생명이 유지될 수 있는 것처럼 소통도 쌍방향이 되어야 생명력을 갖게 된다. 판소리에서 소리꾼의 소리와 관객의 추임새가 쌍방향의 소통을 이룰 때 제대로 판이 구성되는 것처럼, 정부와 국민도 쌍방향의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가 일단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서 정책을 만들었더라도 그것의 집행과정에서 국민적 반응! 을 살펴야 한다. 판소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추임새가 없고 관객들이 시큰둥하다면 뭔가 전달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판소리의 내용과 형식을 조금 바꿔서라도 관객에 호응해야한다. 그래야 판이 제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을 한마디 더 첨언한다면 소통만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과의 소통은 무엇보다 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특정집단의 이익만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소통은 단순하게 정책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콘텐츠가 들어있어야 한다.

소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감을 못 얻어 낸다면 그것은 소통의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책의 내용이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면 소통은 반쪽짜리 소통이 되고 말 것이다.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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