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전쟁이 끝났다. 한나라당의 완승이라는 게 정치 모니터들의 관전평이다.

이 판정의 결과에 속이 몹시 상하겠지만, 민주당은 달리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얻은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 법 표결 100일 유예라는 전과를 제외하곤 내놓을 것이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성과로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 100일이 지나서 합의 표결한다는 원칙이 명문화된 것도 아닌 마당에 다수당을 상대로 한 표결처리 합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한나라당의 박 대표가 사회적 합의기구를 평가절하 하면서 ‘맹탕 합의 론’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100일 유예 전과의 의미가 고작 이틀 만에 거품이 돼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국회 대첩의 전과를 국민 앞에 펼쳐 보이기도 전에 ‘사회적 합의기구’의 실효성을 지키는 일에 매달려야 할 상황이 됐다.

아무런 전략도 대안도 없이 미디어 법 저지에 매달리다 서민들의 민생에 직결된 사안일 수도 있는 여타 경제관련 법안들은 꼼꼼히 읽어볼 겨를도 없이 여당 뜻대로 일사천리 진행시켰다는 비난도 거세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지적임에 틀림없다. 금산분리 완화와 같은 법안은 실제로 민생에 끼칠 해독이 적지 않은 사안일 수도 있다. 꿩도 놓치고 매도 놓친 격이다.

어디 그뿐인가. 성과는 그렇다 치고 전쟁의 상처도 이만저만 깊은 게 아니다. 우선 당장 폭력국회의 주범으로 내몰렸다. 형사고발을 당하고 사법기관은 국회 폭력 또한 일반 시민의 폭력사건과 똑같이 다룰 방침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구겨진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MB정부 1년을 돌이켜보면 민주당의 무력증이 오늘의 일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소영 내각 파문, 미 쇠고기 촛불정국, 용산참사 등 국민적 반감이 극에 달한 숱한 정권의 위기가 잇따랐지만 민주당은 전혀 여론의 구심체 역할을 하지 못했다. MB의 지지율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었음에도 이 뺄셈이 민주당의 덧셈으로 작용하지 않았던 게 그 증거다. 대안 세력으로서의 기능을 못했음은 물론이요 때로는 어정쩡하게 여당의 경제위기론에 동조해 사태의 본질을 흐려놓거나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이 같은 민주당의 갈지자 행보에 대해 당원 조직 내부에서도 비판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당의 홈피 게시판이 욕설과 비난으로 도배질이 돼있는 실정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민주당 지도부는 재보선이 임박했음을 앞세우며 단결만 호소하고 있다. 이 인식의 격차에 가슴이 다 답답할 지경이다.

민주당에 우호적인 여론은 작금의 국면을 이념의 우향우 정도가 아닌, 민주주의 역사의 뒷걸음질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의 지도부는 여당이 통과시키려는 법안 일부의 독소를 빼는 역할 정도로 당의 정체성 규정을 하고 있으니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이 쳐놓은 정국 기조의 프레임에 옴짝달싹 할 수 없이 갇힌 꼴이다. 이렇듯 그물에 걸려든 상황에서 치르는 재보선의 결과는 불 보듯 빤하다.

비상구는 한 가지 뿐이다. 당의 지도부를 전격 교체해야 한다. 그것만이 민주당이 살길이다. MB에 반감을 가진 여론에 은근 슬쩍 기대어 재보선에서 성과를 거둔 후 당권을 지키겠다는 궁리는 ‘100일 유예 후 표결’이라는 맹탕 구상과 다를 바가 없다. 정치적 품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지금 국민들은 지도부의 자질은 물론 품성의 결함까지 묻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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