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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권 ‘연쇄살인범’ 과 ‘집단살인범’의 차이- ‘사이코패스’들을 위한 재개발의 ‘욕망’
윤승병/논설위원  |  webmaster@n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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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2.17  11: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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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는 말이 있다. 말과 글의 길이 끊어졌다는 뜻이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말도 있다. 단어를 몇 개 이어 붙여보지만 이야기로 연결이 안 된다는 뜻이다. 요즘 대한민국 사? 맙?딱 들어맞는다. 공권력, 정의, 진상 규명, 법, 질서 따위 단어들이 정부와 시민사회 사이에 완전히 상반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경찰특공대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진짜 민주경찰이 맞을까? 재개발 상가지역 철거민들의 농성을 진압하다가 6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친 '용산참사'에 국민들이 치를 떨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경찰특공대의 생생한 진압작전 동영상이 그 날의 참극을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정초부터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연쇄살인사건과 용산재개발지역 참사 사건은 참으로 비통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언론매체들은 한결같이 이구동성으로 연쇄살인범 강 씨의 얼굴을 공개하고 강 씨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그런데 헷갈린다. “야, 이 살인마야 우리 엄마 살려 내!” 이거 누구 보고 하는 소릴까? 강 씨인가, 아니면 이 명박 정권일까?

강 씨가 죽인 사람들과 용산 참사로 죽은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경기도 일대에서 죽은 사람은 강 씨 개인이 죽인 것이고 용산에서 죽은 사람은 국가와 재개발업자들이 죽인 것이다. 중요한 차이가 하나 더 있다. 경기도 일대 살인사건이 강 씨에 의한 연쇄살인이라면 용산 참사 사건은 국가에 의한 집단살인이다. 물론 두 가지 사건 다 자연사가 아닌 다음에야 죽지 않았어도 되었을 죽음, ‘사회적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의도가 있든 없든 간에 강 씨의 연쇄살인사건이 용산 참사 사건을 국민들의 기억과 의식에서 밀어내고 있다. 국가에 의한 집단살인이 분명한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과연 강 씨 만이 사이코패스(psychopath)인가 하는 것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싸이코패스의 문제는 강 씨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연쇄살인범의 원조 격인 김대두, 살인일지까지 썼던 온보현, 정두영, 유영철만이 과연 싸이코패스인가? 5억에 가까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연쇄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은 강 씨나 개발이익 5억3000천만 원을 챙기기 위해 용산 참사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용산 재개발 조합원,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서울시 개발 및 재개발을 통해 서울 시장 자리를 한 번 더 해 먹으려는 오세훈 서울시장 권력자나,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 명박 대통령은 살을 에는 그 추운 겨울에 멀쩡한 사람들을 난데없이 죽음으로 몰고 간 용산의 집단살인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라고 묻고 싶다.

6명의 고귀한 인명이 희생된 용산참사는 우리들에게 국가권력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우리 헌법은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정(民主共和政)이 국체임을 선언하고 있다. 또한 우리 헌법은 우리 나라가 법치국가(法治國家)임을 확인하고 있고,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임을 선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산참사 과정에서 드러난 현실은 우리 나라가 과연 위와 같은 헌법의 내용이 구현되고 있는 국가인지를 의심하게 한다.

강 씨의 연쇄살인과 용산의 집단살인을 보면서 필자는 강 씨든 오세훈 서울시장이든 이명박 대통령이든 심지어는 필자 자신이든 대한민국 전체가 송두리째 싸이코패스에 걸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싸이코패스가 인면수심의 이중인격을 가진 자라면 국가와 경찰, 그리고 검찰은 폭력 운운하며 용산철거민들을 수심을 가진 인간들로 몰고 가고 재개발업자에게는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들로 파악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국가 자체가 싸이코패스 아닌가? 도대체 집단살인과 연쇄살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단정적으로 말하지만 그 차이는 제로다.

필자는 싸이코패스의 그 철저한 단절감을 강부자 정권인 이명박 정권에게서 발견한다. 용산 참사에서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것에 반에 한 예를 보자.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당일 구성된 서울중앙지검 용산참사 수사본부. 검찰은 27명의 검사와 100여 명이 넘는 수사인력을 2주 동안 동원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철거민이 던진 화염병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다"는 '주장' 뿐이다. 이마저도 증거도 없다. 검찰이 수사하는 방향에선 뾰족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매번 언론과 진상조사단, 야당 국회의원이 증거를 들이밀면 그때서야 "조사해 보겠다"고, 그 다음엔 "조사해 봤는데 별거 없다"는 식이다. 과연 검찰의 존재 이유가 뭘까. 검찰은 모두의 예상에 호응하며, 용산 참화의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법리적 해석과 현행? 萱?한계, 거기에 일반의 법 감정, 간과하지 못할 정치적 압력 속에서 검찰의 판단은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봉합이 되었다.

철거민들이 산화한 자리에 이제 곧 높은 빌딩이 들어설 것이다. 그 자리에 들어설 빌딩을 떠올리니 문득, 또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30년 전 광주에서 도청을 사수하기 위해 시민적 용기를 보였던 이들의 피와 절규가 선연한 518 시민군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던 당시의 공수부대가 오버랩 된다. 그들 모두 시민적, 민주적, 소통적 공익의 실현을 거부하려는 정신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매 일반이지 않나. 그리고 우리를 더욱 화나게 하다 못 해 슬프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러한 모든 '제도적 인프라'가 결여된 상태에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벌이는 사회적 약자들의 '방어적 폭력'을 아무런 맥락적 성찰없이, 폭도로 매도하는 '아메바(amoeba)적인 언론 폭력'이 바로 그것이란걸 깨달아야 할 것이다.

타인의 감정, 정서,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거짓말로 사태를 모면하려는 것이 싸이코패스의 일반적인 특징이라면 강부자 내각으로 일컬어지는 이명박 정권 또한 타인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정권이다. 작년 촛불 집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을 뉘우쳤다고 믿을 수 있는가? 사태가 정권을 위협할 정도로 급박해졌으니 거짓말로 사태를 모면하려고 한 것일 뿐이다. 용산 참사를 두고 ‘가슴이 아프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 SBS 인터뷰에서 용산 참사 사건에 대해 에둘러 피해가지 않았는가? 이명박 정권은 용산 유가족들의 아픔, 빈민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강부자 정권이다. 강부자 정권 또한 연쇄살인범의 모자처럼 국민들의 고통과 철저하게 단절된 정권이다. 이거야말로 ‘반사? 맛岵科?행동인 것이다.

연쇄살인범 강 씨는 살해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 대상이 부녀자든 회사원이든 여대생이든 자기의 성적인 욕망, 살인의 욕망을 채울 수 있으면 아무 것도 개의치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재개발도 마찬가지다. 개발이익만 채울 수 있다면 개발의 욕망만 채울 수 있다면 철거민이 누구든 상관없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과의 연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도대체가 철거민, 서민, 민중, 비정규직 노동자 등의 삶에 대해 아무런 ‘깜’이 없는 정권이다. 한마디로 말해 ‘무감(無感)’ 그 자체다. 이윤을 증식시키는 자본의 욕망만 채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강 씨 개인과 국가, 어쩌면 이렇게 쌍둥이 같을까?

세계 경제가 공황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이명박 정권은 또 다시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내년에 다른 나라는 어렵겠지만 한국 경제는 회복된다’, ‘긍정의 바이러스를 퍼뜨려 달라’, ‘플러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등 주가 3000 거짓말도 모자라는 모양이다. 싸이코패스가 사람을 유인해 성폭행 후 죽이고 암매장 하듯이 이명박 정권과 재개발은 민중들을 암매장하고 있다. 죽지 않았어도 될 사람들을 생매장시키는 이 아수라, 언제 끝날 것인가? 또 누가 다음 집단살인의 희생자가 될 것인가? 강부자 정권, 재개발업자, 조합원들에게만 천국일 이 ‘지옥의 재개발’ 속에서 강 씨 사건으로 호신용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추세라고 한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채 하늘로 올라가는 타워 크레인의 거대한 침묵. 그 침묵은 연쇄살인범의 침묵보다 더 섬뜩하다. 언제 또 집단살인이, 철거민이든 노동자든 누구든 살인진압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 그 공포에 질려 퍼렇게 변한 하늘에 걸린 그 끝 모를 침묵을 바라보며 국민들은 호신용품을 찾는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모든 생명을 고귀하게 여기어 생명을 앗아가는 어떤 행위도 결코 가볍게 처리하지 않았다. 고위 관리나 목민관이라 하더라도 백성들의 생명을 실수로라도 빼앗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왔고 그것이 통치의 기본이었다. 이제라도 이 명박 정권은 사람의 생명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과 역사를 회복해야 한다. 또한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가치를 함부로 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뒤집혀 생태계를 파괴하고 4대강을 망치고 그 속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죽이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인정되면 그 사회에서 사람의 생명도 이익을 위해 쉽게 희생당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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