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 결심을 ‘풀’님께서 흔쾌히 함께 해주신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는 이야기와 토론, 이해와 배려, 서로의 삶에 대한 깊은 믿음, 반드시 대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야 하는 당위성, 그리고 풀님의 맑고 깨끗한 심성과 영혼이 그 갈등을 풀고 지금까지의 삶을 누리게 하였던 것이지요.

©뒷산을 버섯 농장(?)으로 가꿔 놨다.
사실 그때 저는 자연 속에서 씨뿌리는 삶에 대한 확신이 풀님이 함께 가지 못하면 혼자서라도 그 삶을 살겠다고 하였을 정도였지요.

자연어머니 품안에서 씨 뿌리며 사는 삶은 모두가 함께하고 함께 가야하는 길이지만, 지금 돈이 주인인 사회에서는 홀로 가는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속 삶은 처자식도 부모형제도 벗들도 이해 못해줄 정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 삶이 바르고 참되다고 생각하신다면 혼자서라도 가시겠다는 큰 용기와 결단을 내셔야 합니다.
이것이 아내, 부모형제, 벗과의 관계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하지 않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최상의 모습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다정스럽게 손 맞잡고 함께 가는 길임은 너무도 분명하겠지요.
그리고 애들 교육문제는, 저는 사실 애초부터 학교를 보내지 않을 생각 이었습니다.
진정한 학교는 자연마당이고 참스승은 천지만물이라고 생각하여 소위 제도교육을 시키지 않을려고 하였지요.

이렇게 확신하기 까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을 여러 각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에서 비추어보고 검토해서 우리 애들만이라도 그런 교육을 받지 말도록 해야겠다고 내린 결론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 생각처럼 쉬운 일입니까?

©가지런히 정돈된 농기구들
저희 칠남매 중에서 넷째인 제가 제도교육의 혜택을 제일 많이 받았는데 애들 학교를 보내지 않는다고 하니까 집안 난리가 난겁니다.

“네 녀석은 못배운 한(恨)을 아느냐?” 이 한마디 말씀에 그냥 항복, 두손들고 아이들 학교에 보냈습니다. 단 아이들에게 ‘학교를 놀이터 삼아서 가거라’고 하였지요.

저녁에 애들에게 아버지가 왜 너희들에게 꼴등나라고 한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두녀석다 이구동성으로 “생명에는 등급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허허~ 좋을시고! 지화자~ 좋을시고! 이것이 아이들 교육문제에 나름대로 대처해온 저희 부부의 이야기 올습니다.

©여기에 군불을 지피면 3일이 간다고 한다.
이야기가 너무 장황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같은 경우가 모든 분에게 통하지는 않겠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겨자씨만큼 이라도 참고가 된다면 고맙고 고마울 뿐입니다.

제가 느낀 것이 하나 있는데, 자기 삶의 긍정적 해답이랄까 존재의 근원적 문제를 푸는 열쇠랄까 하는 문제를 가지고 이사람 저사람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지만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가난하여 차비도 없고 아이들 먹여 살려야 되고 또 어디를 이리저리 싸돌아 다니는 성질도 아니어서 그래보지를 못하고 딱 한분만 만나 뵈었습니다만, 이도인 저도사, 이마음 수련단체 저생태공통체 돌아다녀본들 머리만 커지고 헷갈리기만 할 뿐인 것(주위 분들을 보니까) 같았습니다.

이미 ‘우리 삶 속에 더도 덜도 말게 온전히 갖추어져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갖추어져 있는 것을 누리기만하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하는 것이 부족하지만 제가 얻은 결론입니다.

©수확의 끝은 지금도 이 풍구로 마무리 한다.
참사람은 머물고 서있는 자리가 최상의 명당이겠지요. 사실 우리 부부의 삶은 이 아름다운 초록 녹색의 지구별에서 누리기도 벅찰 지경입니다.

삶이 날마다 잔치요 축제요 해저 무는 줄 모르는 신나는 소꿉놀이지요. 너무 허풍이 심하다구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원래 허풍이 심해서 우리 ‘풀’님께 늘 얻어듣습니다.
좀 겸손하라고...

그래도 미칠 것 같이 좋은 이 자연의 삶, 씨 뿌리는 농사꾼의 삶을 떠들지 않고 어쩌겠습니까? 좋구나, 일생청춘 일생농부(일생신혼) 일생감동의 삶이여!

©변소 내부
참고로 제가 제일 깊은 감명과 감동을 받은 책은 최성현 형님이 번역한 후쿠오까 마사노부선생의 ‘생명의 농업’(정신세계사) 입니다.

이책을 밑줄 그으면서 대여섯번 읽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씩 보고 있답니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역시 최성현 형님의 번역, 후쿠오까 선생의 저서, 한살림)도 꼭 읽어 보시기를 바라고, 역시 최성현 형님의 번역 가와구치 선생지음 ‘신비한 밭에 서서(들녘)’도 정독 또 정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다음에는 저희 부부의 구체적인 농사이야기 - 땅을 갈지 않음, 풀과 함께 비료, 농약 않치는 -를 해드리겠습니다. 군데군데 제가 느끼고 깨우친 것이 들어가더라도 너그럽게 보아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또 이 이야기하가 엉뚱하게 저 이야기를 지껄이더라도 원체 글 솜씨 말솜씨 없는 농사꾼이라 생각하시고 읽어 주셨으면 그 또한 고맙고 고맙겠습니다.

※본란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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