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모든 사람들 축복받는 성탄 되길

주변은 조용하고 분위기는 평화롭습니다. 한가롭기까지 한 조용함에 마음이 차분해지고, 넘쳐나는 평화로움에 마음까지 경건해 집니다. 이따금 공격당하듯 경험하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란 전도 한마디 없었어도 저절로 마음에 평화가 찾아드는 거룩한 분위기입니다.

산길을 걷고 고갯마루를 넘어서 찾아가야하는 심산유곡 산중에 자리하고 있는 산사가 아닙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농촌 마을, 높지는 않았지만 공동주택인 아파트와 이웃하며 펑퍼짐한 농촌 들녘에 구릉을 이루고 있는 야트막한 솔동산입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다 당진 IC를 나와 32번 국도를 따라 예산∙합덕 방향으로 30~40 리 길을 가다 잠시 들를 수 있는 세외성지(世外聖地), 솔뫼성지에 다녀왔습니다.

세외성지, 솔뫼성지를 찾아 가다

'솔 동산' 이거나 '소나무 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솔뫼'에서 알 수 있듯 솔뫼성지는 낙락장송의 소나무들이 동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불그스레한 홍조 빛과 거무튀튀함이 어우러진 소나무껍질은 야박하지 않을 만큼 푸근해 보였지만 굳건한 모습입니다.

대나무처럼 쪽 곧지는 않았으나 굴곡을 이루며 부드럽게 자랐으니 여유가 있었고, 휘휘 늘어트린 가지 끝마다 쪽쪽 뻗어있는 솔잎에서는 변하지 않을 지조와 청빈함이 엿보입니다.

비질이라도 해 놓은 듯 나뒹구는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주차장도 깨끗합니다. 휑하니 넓지도 않고, 옹색하리 만큼 좁지 않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솔 동산을 서성입니다.

솔동산, 솔뫼 마을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출생지이기도하지만 김대건 신부의 조상들이 일상을 살아 온 생활 터전이기도 합니다. 김대건 신부의 조상 모두는 서학인 천주교를 믿고 증언하다 순교하였습니다.
1821년 8월 21일 이곳에서 출생한 김대건 신부는 7살까지 이곳 솔뫼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박해를 염려한 할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1846년 9월 16일, 젊다고 하기에도 너무 이른 25살이라는 나이에 순교를 한 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학 유학자, 조선전도제작자, 조선 최장거리 항로 개척자, 여행자, 다국어 번역∙통역자이기도 합니다.

25년이라는 일생을 오롯이 전도만을 위해 살다 순교한 김대건 신부는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하였던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어 전세계 가톨릭의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인 김대건 신부의 유적지임을 알리는 안내 글을 모두 읽고 성지 안으로 들어섭니다.

안으로 들어서도 역시 조용하고 평화롭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복원된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왼쪽에 있습니다. 팔작지붕으로 인 기와지붕, 황토 빛 벽,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대청마루, 벽에 내걸린 채반, 처마 밑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장작더미, 양지바른 곳에 놓여있는 장독은 물론 어느 것 하나 깨끗하지 않거나 흐트러진 것이 없습니다.

매일매일 쓸고 닦았음이 느껴지지만 발걸음을 꺼리게 할 만큼 거부감 이는 깔끔함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은은한 깨끗함입니다. 지금이야 성지가 되어있지만 순진무구하기만 한 한 명의 아동, 꼬마 김재복(김대건 신부)이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 쬐는 이 마당에서 까르르 거리며 뛰어 놀았을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봅니다.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표정의 모자상

생가를 나와 몇 걸음 안쪽으로 들어가니 백색의 모자상이 나옵니다. 치마저고리를 입었고, 머리는 비녀로 쪽 지은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의 자태며 천진난만한 아가의 모습으로 김대건 신부와 그 어머니를 형상화한 듯합니다. 엄마의 품에 안겨있는 아가의 표정은 평화로움이고, 아가를 안고 있는 엄마의 표정은 사랑스러움입니다.

모자상을 우측으로 끼고 도니 솔동산입니다. 파란색 하늘을 배경으로 융단이라도 깔아 놓은 듯 잘 정리된 잔디밭을 바탕으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구릉입니다.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소나무 향이 후두둑 떨어지고, 다가서기라도 하면 푸른빛이 물들 것 같은 소나무 숲입니다.

소나무 숲 한쪽으로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청년의 모습, 반듯한 몸매와 가지런한 옷매무시는 근현대사에서 볼 수 있던 선비의 절개이며 선구자의 기풍입니다.

가슴에 얹은 왼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고, 함성을 외치듯 치켜 올린 오른손에는 나라를 걱정하고, 천주의 가르침을 전파하고자 하는 기개와 구구절절함이 뭉툭합니다.

동상에서 조금 걸어 내려오니 솔동산을 에둘러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나오고, 산책로 주변에는 산사에서 볼 수 있는 팔상도, 부처의 일생을 여덟 폭의 그림으로 그려놓은 팔상도처럼 예수님의 일생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그림들이 줄지어 놓여있습니다.

솔동산을 에둘러 걷고 있다 보니 저만치에서 한가롭게 걷고 있는 수녀 두 분이 눈에 띕니다. 기도를 하다, 묵상에 잠겨있다 잠시 시간을 내 걷기운동이라도 하는 듯 사색 가득하고 다소곳한 발걸음입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복장, 고개를 떨구듯 조금 앞으로 숙인 머리조차도 다소곳하고, 발걸음까지도 고요하니 정적을 깰지도 모를 셔터소리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릴없이, 정말 하릴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고요해지고 마음은 평화로워졌습니다.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누구하나 '예수님'를 말하는 사람 없었어도 저절로 천주님을 생각해 보게 하고, 누구하나 성경을 말하지 않았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궁금해 하기에 충분한 분위기였습니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찾아간 성지였고, 흘러가는 물결처럼 다녀온 솔뫼 성지였지만 성인 김대건 신부의 생가를 통해 손가락질을 해 대듯 다가서는 귀찮은 전도 없이 예수의 일생을 눈여겨보고 성경 한 구절을 외게 되었습니다.

전도 없는 전도라서 전도의 웅변 돼

윽박지르듯, 공갈협박을 하듯 들이미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란 허구보다는 마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성지 한 곳이 훨씬 더 진지한 전도의 웅변이 되어 가슴을 적셔옵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추위, 온정의 손길조차 움츠러들게 하는 경제적 곤궁함, 구조조정의 당사자이거나 일괄사표를 내야하는 처지라면 마치 연쇄 살인으로 느껴질 만큼 분위기 살벌한 연말, 이래저래 마음까지 흉흉해지는 연말일지언정 성탄전야는 다가오고 성탄의 아침은 밝아 올 것입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뼛속까지 아프고, 펄떡거리는 심장에 고드름이 달릴 만큼 시대의 추위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모든 사람들에게 솔뫼 성지 모자상에서 보았던 아가의 평화로움과 엄마의 사랑스러움이 넘치는 그런 성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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