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년에 아이들은 배 터져 죽고 어른들은 배곯아 죽는다는 옛말이 있다.

모두가 배고프기 마련인 흉년을 두고 아이와 어른의 처지가 엇갈리는 극단의 대비가 현실감이 없긴 하지만, 한국인들의 거의 맹목적인 자식사랑 풍속을 떠올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이 비유에서처럼 환난이 닥쳤다 해서 모두가 힘든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기초체력이 바닥나 견딜힘이 없는 사회 취약계층이 가장 큰 고통을 겪게 마련이다.

최근 몇 달 동안 큰 파문을 일으킨 미 쇠고기 수입사태만 해도 그렇다. 광우병 공포에서 벗어나 안전한 먹거리를 먹고 싶은 마음이야 똑 같겠지만, 생존 현실 속에서 그 욕망은 서로 엇갈린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고급 한우고기에 비해 10배 가까이 값싼 미 수입쇠고기의 소비는 어차피 사회 최하위 계층의 몫이 되고 만다. 국산 특등 육을 사먹을 수 있는 계층이야 애초부터 광우병 공포 따위는 남의 일이다. 사먹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미 쇠고기 수입 문제는 결국 온전히 값싼 수입육을 사먹어야 하는 영세민들의 고민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미 쇠고기 수입결정은 영세민을 위한 정책이기도 하면서, 정책시행의 불안전성을 영세민들에게만 떠안기는 불공정한 조치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엊그제 발표한 대책만 해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은행을 통해 금융시장에 엄청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이번 대책의 골자다. 기업의 자금 유동성 위기국면에 숨통을 트여주자는 취지에서다. 기업에 직접 지원을 해주는 방침도 잇따라 발표됐다.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정부가 매입해주기로 한 것이다. 그 규모도 6조원 대에 이른다. 10년 전 IMF 환란 때의 매입 규모가 2조 6천억 원이었으니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치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금융권과 기업에 성의를 보일만큼 충분히 보인 셈이다. 물론 불가피한 지원책이라 볼 수 있다. 이미 국내 금융시장에 파급이 밀어닥친 세계적 금융위기가 민생에 직결된 실물경제에 까지 전이되는 것을 차단코자 하는 고육지책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 보다는 통증의 원인이 되는 중요한 혈도를 찾아 침을 꽂는 행위와 마찬가지의 논리다.

그 이치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멀리서 댄 윗물이 아랫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서민들의 처지는 여전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민생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개선의 기미가 요원한 상황이다. 샐러리맨들이 점심 사먹기가 두려울 정도로 지갑은 헐렁해져만 가고 있다. 일상의 소비재인 공산품은 물론 식료품 물가마저 오를 대로 올라 생계형 음식점을 운영하는 영세 상인들도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다.

밑바닥 사람들의 짠한 얘길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금융시장 안정시켰다고 허리띠 풀지 말라는 주문이다. 그리고 그게 어디 화투판에서 딴 공돈인가.

어차피 국민 혈세를 쓰는 일이 아닌가. 돈 쓰는 일에도 선후가 있는 법인지라 정부의 이번 조치를 탓할 일은 아니지만 혹여 윗물에 댄 물이 아랫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심보 나쁜 논 주인이라도 있다면 논둑 틀어막고 제 논의 벼 살찌울 일만 생각하는 얌체들이 없다 할 수도 없다.

부자 나리들이 쌀농사 직불금도 해쳐먹었듯이 벼룩의 간을 빼 먹는 세상 아니던가. 싸움 중에 제일 큰 싸움이 물꼬 싸움이란 것을 정부는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환난에 버는 놈 따로 있고 지갑 터는 놈 따로 있으면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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