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히 미 공화당 대선 후보 매케인의 후보지명 수락연설을 듣게 됐다.

꽤 시간이 지난 일이고, 고백하건대 필자는 오바마가 후보로 나선 민주당의 노선을 내심 지지하는 사람이지만, 오래도록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미국의 보수는 그래도 보수답다는 생각을 했던 게 각인의 동기가 아니었나 싶다.

매케인은 연설의 말미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월남전 참전 등 자신이 미국을 위한 의무를 충실히 치른 사람이라는 점을 은연중 내세우면서 ‘국민의 의무’를 강조했다.

가난한 이들의 의료비를 줄여주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자.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자. 직업이 없는 이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를 고민하자. 등등의 주문을 제시한 후 미 국민들 모두가 이런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당장 실천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미국을 위한 미 국민의 의무 실천을 강조하는 이 같은 대선 후보들의 연설은 J.F. 케네디 이후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볼 수도 있지만 그때마다 늘 새롭게 느껴지곤 한다. 우리나라 대선 후보들의 경우 어느 정당을 가릴 것 없이 대부분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자’가 아닌 ‘내가 잘 살게 해줄 수 있다’는 식으로 연설 내용이 가득 채워지는 까닭이다.

이렇듯 미국을 위한 전통적인 애국심이 미 공화당의 기저라면, 한국의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의 핵심 정체성은 무엇일까? 그들 스스로가 굳이 망각과 단절을 원하는 군부독재세력이라는 오래 전의 정체성, 그리고 지난 10년의 족적이 없기에 최근에 드러난 경향들만을 본다면 ‘북한과 거리두기’, ‘반 좌파’, ‘경제 성장주의’, ‘규제 풀기’…그리고 ‘부르조아 편들기’ 정도로 축약해 볼 수 있을 듯 싶다.

특히 부자 편들기는 남미의 친미 말기정권이 연상될 정도로 한국 보수 여당의 강렬한 트레이드마크로 떠오른 형국이다. 최근 파문을 일으킨 종부세 감세정책이 그 전형적인 사례다. 정부 공시를 보면 올 들어 5월 말까지 신축된 공동주택 가운데 종부세 기준인 6억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의 99.7%가 수도권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에서 6억원이 넘는 공동주택은 고작 6채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쉽게 접근해보자면 종부세 완화로 혜택을 보는 지방민은 6명 남짓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한 국가의 세제 개편이 이 같은 기형적인 수혜구조를 갖는 경우는 근대국가 성립 이후 세계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징벌 형 과세 폐지론을 운운하지만 국민 공동체인 국가가 차원 높은 공동체 가치 실현을 위해 개인의 사유재산 행사를 규제하는 사례는 종부 세 뿐만이 아니다. 예컨대 농민의 경우를 들어보자. 낮은 수익구조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자신 소유의 재산인 농지를 농사 이외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식량수급 안정이라는 국민적 필요에 의해 국가가 토지의 용도전환을 강력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징벌 운운하자면 농민들처럼 가혹한 재산권 침해의 징벌을 당하는 계층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규제의 사례는 우리들 주변에 너무도 수두룩하게 널려있는 게 사실이다.

‘부자들을 편드는 정치세력’이라는 부정적인 여론을 극복하지 않고선 한국 보수 정당의 미래는 없을 게 당연하다. 우선 감성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느낌을 주면서 국민 정서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정치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보수의 철학’부터 장착해야 한다. ‘영혼이 없는 정치집단’이라는 세간의 냉소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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