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 오후, 한 스님이 졸음을 쫓고자 암자 길을 오르고 있었다. 땀을 식히려고 바위에 걸터앉는데, 숲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뭔가 해서 숲 속을 들여다 보는 순간, 눈길이 마주친 사내는 아랫마을에 사는 착하고 예의바른 총각이었다.

그 청년이 아가씨를 뉘어놓고 주무르고 입술을 더듬고 있는 것이었다. 못 볼 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내려오는데, 등 뒤에서 허겁지겁 총각이 쫓아와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산에 나무를 하러 왔다가 목맨 처녀를 보고서는 인공호흡을 시키고 있던 중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청년의 몸짓을 달리 생각했던 것이다. 석용산 스님의 에세이,'여보게 저승갈 때 뭘 가지고 가지'에 나오는 얘기다. 이렇듯 한 사물에 대해 사람의 보고 들음이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사례 하나를 더 들어보자.
 
일본 아오모리 지방은 우리나라 대구처럼 사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어느 해였다. 열심히 가꿔서 사과가 가지마다 탐스럽게 열렸다. 수확을 눈앞에 둔 어느날 태풍이 몰아닥쳐 그 금쪽같은 사과가 거의 다 떨어지고 말았다. "올해 농사는 망쳤다"고 동네 사람들은 망연자실 했다. 그런데 한 농부는 달리 생각을 해냈다.

이 농부는 떨어진 사과보다, 매달려 있는 사과에 초점을 맞췄다. 이 농부는 대학입시와 사과를 연결해 "이 사과를 먹으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역발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떨어지지 않고 달려있는 사과들을 '합격'이라고 예쁘게 포장해서 아주 비싼 값으로 팔아 대박(?)을 터뜨렸다는 일화다.

이처럼 발상의 전환이 농부의 운명을 바꿔 놓은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은 사물을 보지만, 남들과 다르게 보고(Think Different),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Think Another), 긍정적으로 본다(Think Positive)고 한다.
 
며칠전 탤런트 안재환씨의 자살사건이 우리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인터넷 온라인상에는 온통 안씨의 사망과 관련한 얘기가 넘쳐나고 있다. 아직까지 자살이유야 뚜렷하지 않지만 생전에 소아암 환자를 돌보았던 선행 등으로 보아 그의 죽음이 매우 안타깝다.

안씨의 자살도 발상의 전환에 있어 작동이 잘못됨으로써 비롯됐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수 십억원의 빚도 문제라고 하지만 순간의 잘못이 이처럼 끔찍한 사건으로 치달을 줄이야 부인 정선희씨는 미처 생각이나 했을까 싶다.
 

우리의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타협의 정치, 협상의 정치가 실종된 지 오래다. 여야의 잘못이 크지만 새 정부도 정권을 새롭게 창출한 만큼 긴 안목을 가지고 큰 아량이 있었어야 했다. 꼭 정치분야 만이 아니다. 대북관계, 종교문제, 방송사 사장인사 문제, 전 정권에 대한 사정 등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이 엊그제 밤 국민과의 대화에서 "그동안 국민심정을 이해하는데 소홀했다"며 국민과의 소통을 다짐한 바 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포부도 빼놓지 않았다. 이번 국민과의 대화는 해명과 반박이 많아서 기대엔 미흡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앞으로 실천 여부가 관건이라 하겠다.
 
여하튼 지금은 강제한다든지 시건방을 떠는 시대는 지났다. 겸손과 아량이 절대 필요한 시기이다. 이기는 것은 지는 것이요, 지는 것이 이기는 시대가 된지 오래다. 요즘 우리 국민들은 고유가와 고물가에 치여 시름에 잠겨 있다. 웃어보인다고 웃는 것이 아니다. 사실 너와 나로 갈려 있을 때도 아니다. '너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라는 말도 지나간 선거 때나 나올법한 얘기다.
 
새 정부들어 사회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아직도 '분열의 시대'나 다름없다. 우리사회가 왜 이지경이 됐는지, 국민이라면 깊이 반성들을 해야 한다. 해결책도 없지만도 않다. 바로 모두에게'발상의 전환'이라는 미션을 줘야할 듯 싶다.
 
스님의 에세이 처럼, 사실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보고자 하는 이성과 판단이 절실한 시기다. 또한 자신의 환경이나 운명을 탓하기보단, 기발하게 창조력을 발휘했던 아오모리 지방의 농부처럼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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