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역사의 갈림길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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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영화의 심연 또는 신화와 역사의 갈림길

 

 트로이는 소아시아 서북부 해안, 에게해와 흑해를 잇는 헬레스폰투스(현재의 다르다넬스 해협)입구에 자리 잡고 있었던 고대도시국가이다. 호머의 대서사시 <일리아드>를 통해서 신화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트로이전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1870년대 인류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유적 발굴’에 의해 처음으로 신화로부터 역사의 무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슐리만의 주장에 따르면 트로이전쟁은 약 B.C. 1200년경에 실제 벌어졌던 두 나라간의 전쟁임이 유력한다. 하지만 트로이 전쟁에 관한 많은 부분들이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고 이야기의 대부분은 신화와 역사가 뒤엉킨 호머의 <일리아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울프강 피터슨 감독은 영화 <트로이> 세트 제작에 있어 가능한 철저한 고증에 입각해 최대한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서사적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하지만 제작진 스스로 고백하듯이 영화의 모든 것들은 일괄적으로 ‘큰’ 방향으로 과장되게 재현되었다. 물론 그것은 실제 발굴된 트로이 유적의 예상 밖의 소박하고 아담한 규모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가로 180미터, 세로 135미터짜리의 아담한 트로이성의 외관의 규모는 상당 부분 부풀려 져야 했다. 3미터짜리 동상은 12미터짜리 동상으로, 소박한 기둥들과 벽화들은 다양한 고대문화에서 취합한 육중하고 화려한 양식의 기둥들과 벽화들로 대체하게 되었다.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스펙타클해야 한다는 헐리웃의 공식이 여기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아카이아 연합군의 배의 규모가 총 1069척에 이른다는 호머의 언급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트로이전쟁의 거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고 그 정도의 과장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그 전까지 신화로만 알려진 트로이가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영화의 과장법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큰’ 방향으로 설계되고 재현되었던 영화의 미장센이 유독 장례식 장면에서는 오히려 축소되고 작아져 버린다.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묘사된 패트로클로스의 장례장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방 100피트 높이의 화장단을 쌓고 그 위에 패트로클로스의 시체를 올려놓는다. 그 앞에서 많은 양의 소와 양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토막을 쳐서 그것들로 시체에 덮는다. 괴로워하는 말 네 필을 산 채로 장작더미에 올리고 패트로클로스가 친히 기르던 아홉 마리 개중에서 두 마리의 목을 베어 그의 옆에 놓고, 트로이군 12명도 사정없이 베어 장작더미에 함께 올리고 불을 지폈다.” 그런데 정작 영화에서는 장작더미위의 패트로클로스 시체의 양 눈두렁에 하데스궁으로 가는 노잣돈으로 은화 두 닢을 올려놓는 뜬금없는 소박함을 보여준다.

©영화는 트로이의 고고학적 증거를 무시하고 훨씬 더 방대하고 화려해졌다.

© 영화의 규모는 거대해졌지만 CG로 처리된 전투장면은 차갑기 그지없다.           

<일리아드>에서 호머가 노리는 효과가 단순히 영웅들의 잔학무도한 무용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유한성에 도전하며 자신들의 노력으로 버텨가는 영웅적 삶의 존엄성(특히 아킬레스에게는 반신반인으로서의 정체성의 모순적 상황을 극복해가는 일)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장례식 장면(패트로클로스와 헥토르)은 이야기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비추어 볼 때 영화의 장례식 장면은 너무 오늘날의 시각으로 각색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것 역시 취사선택의 문제인가?

신들 없는 전쟁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의 파리스왕자의 스파르타 왕비 헬레나 납치로부터 트로이왕국의 몰락에 이르기까지 10여 년간에 걸쳐 일어난 전쟁이다. 영화속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수십일 정도로 압축되어 나온다. 영화가 참조하고 있는 호머의 <일리아드>는 아카이아연합군이 트로이를 포위하여 9년 동안 승산 없이 보내고 전쟁의 10년째 되던 어느 지점에서 시작된다.

호머의 <일리아드>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아가멤논과 아킬레스의 자존심 대결’과 ‘아카이아연합과 트로이와의 전쟁’이라는 두 개의 큰 이야기 축이다. 영화 <트로이>에서도 이 두 축은 씨줄과 날줄처럼 영화 전반에 걸쳐서 극에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마지막 순간까지 세련된 균형을 유지해간다. 특히 영화에서는 <라이언일병구하기>의 오마하 전투장면을 연상케 하는 고대 해변 전투장면을 삽입하여 관객들의 부족한 상상력을 충족시켜주고 있으며, 불탄 배의 파편으로 직접 제작한 12미터에 이르는 트로이목마의 위용도 눈여겨볼만 하다. 무엇보다도 화려하게 부활한 트로이성을 배경으로 12만 5천명의 CG군인들이 일사분란하게 보여주는 장대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은 차갑긴 하지만 칭찬받을 만하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대서사시의 장대함 뿐만 아니라 섬세함도 놓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문양의 고대의상들과 세간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경을 쓴 고민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 호머의 이야기와는 달리 영화에서 신들의 개입이 사라지자 영웅들의 무공은 액션활극이 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이야기 속에서 전혀 신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신인 아킬레스의 어머니 테티스마저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면 그저 한 인간의 어머니처럼 보일뿐이다.) 여신들의 미모대결이라는 트로이 전쟁의 발단에서부터 그 전개과정, 그리고 결말에 이르기까지 영웅들의 세세한 행위들까지 간섭하던 신들의 존재가 영화 속에서는 말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영화의 특성상, 신들 없는 영웅들만의 활약상이 자연스러워 보일지도 모를 일이나 그렇게 함으로써 이야기 자체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버린다. 영화에서 신들의 관여가 생략됨으로써, 다시 말해 원작에서 드러났던 신들의 복잡한 인과관계가 무시됨으로써 이야기의 핵심인 아킬레스의 분노도 관객들에게는 그저 그의 타고난 비뚤어진 성품으로 보여 진다거나 잘해봤자 젊은이의 ‘이유 없는 반항’ 정도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피터 오툴이 분한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

호머의 서사시에 따르면, 전리품(여사제 브리세이스)을 두고 아가멤논과 아킬레스가 서로 다툼을 벌리는 장면에서도 분노를 못 이기고 아가멤논을 향해 칼을 뽑아드려는 아킬레스를 단념시키는 것은 포로 브리세이스의 충고(그러므로 아킬레스의 브리세이스에 대한 연정)가 아니라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온 아테네 여신의 예언이다. (아킬레스에게만 나타나 보이는) 여신은 아킬레스에게 헤라여신의 분부라며 칼을 거둘 것을 명하며 지금의 모욕에 대한 세 곱절의 보상을 예언한다. 또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헥토르와 아킬레스의 또 다른 앞선 대결에서 트로이의 수호신 아폴론은 헥토르를 아킬레스의 죽음의 손길로부터 네 번이나 구해준다. 패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기화로 폭발해버린 아킬레스의 분노는 표면적으로는 패트로클로스를 죽인 적장 헥토르를 향한 것이지만 그 내면에는 아폴론을 비롯하여 아킬레스 자신을 자주 곤경에 빠트리는 여러 신들에 대한 항의와 보상심리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카이아연합군과 트로이와의 전쟁은 포세이돈과 아폴론으로 대변되는 신들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마지막 대결에 이르러 발견되는 것은 영웅들의 위력 넘치는 승부가 아니라 세세한 점까지 신비스럽게 관리되는 복잡한 일련의 사건들” 이라는 혹자의 말은 트로이전쟁의 본질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호머의 대서사시를 관통하는 정신, 즉 트로이 전쟁은 한마디로 신과 인간이 어지럽게 뒤엉켜 싸우는 신비한 전쟁이며 거기서 인간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유한함 속에서도 삶의 존엄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시종일관 부단한 경주를 펼친다는 것이다. 트로이 전쟁신화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은 그들이 해결사의 모습으로 등장할 때조차도 단순한 기계장치의 신(deus ex machina)은 아니다. 인간사에 폭넓게 개입하는 신들의 다양한 모습과 그로인해 복잡하게 전개되는 세상사는 판타지의 단순한 부대효과가 아니라 그들이 바라보는 진정한 세계의 본질에 가깝다.

© 아킬레스의 신들을 향한 분노의 원인을 모르는 관객들에게 그의 행동은 '이유없는 반항'으로 보일뿐이다.

<트로이>가 반드시 호머의 정신을 따를 필요는 없겠지만, 영화에서 원작에 나타난 신들의 관여가 완전히 제거됨으로써 영화 속 많은 역동적인 장면들이 맥 빠진 영웅액션활극에 머물고 말며, 감동적이어야 할 장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영화에서 아킬레스가 진노하며 아폴론 동상의 머리를 내려칠 때도 다소 철없고 엉뚱한 행동으로 보이며, 막사에서 브리세이스에게 “신들도 인간을 질투 한다”며 유한한 인간 운명의 아름다움에 대해 속삭일 때조차도 그의 고백이 빈말처럼 들리는 것은 다 그런 연유로 이해될 수 있다.

© "클수록 좋다" 라는 규칙의 일관성을 지키지 못한 장례식 장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트로이>가 <일리아드>의 미덕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아들 헥토르의 시체를 찾아 밤중에 아킬레스의 막사로 잠입하여 시체를 돌려줄 것을 탄원하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정중히 적의 왕을 대접하고 그 아들의 시체를 돌려주며 장례를 약속하는 아킬레스의 장면은 이야기 전체를 통해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피터 오툴이 분한 프리아모스왕의 위품 있고 섬세한 감정변화의 연기는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비록 전쟁이 낭만적이고 매력적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전쟁을 찬양하기 보다는 전쟁의 비극적 무상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트로이>는 호머의 <일리아드>에 동의하는 것 같다. 전쟁의 영광 사이사이에 찾아오는 장례의 기나긴 애도의 시간이 이를 잘 대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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